5, 4, 3, 2...
나는 예전부터 그런 쪽으로는 무던했다. 연말이라고 들뜨거나, 새해라고 색다른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평소처럼 하루가 지난 걸 뭐 새삼스레. 신년 카운트다운 같은 건 정말 귀찮다. 12시까지 깨어있어야 한다고? 10시부터 잠이 솔솔 쏟아지는데... 물론 분위기를 깨기 싫어 동참하긴 한다.
어쨌든 새로운 해가 시작됐다. 마음껏 자고 일어나 안부전화를 돌렸다.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형수님. 다들 무탈하시다. 귀여운 조카들과도 인사 아닌 인사를 나눈다. (조카들은 무척 활달하지만 전화 통화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나 혼자 하는 고요 속의 외침 같다.) 친구들은 귀찮으니까 간단하게 톡으로만. ‘복 받아라.’ 사실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는 아무런 복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새해 첫날부터 이런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겠죠? 그러니까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 삶을 1년 단위로 끊는 건 모두 계획 탓이다. 올해는 뭘 이루고, 내년에는 어떤 목표를 세우고. 나는 그런 사고방식이 어렵다. 그래서 새해가 남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2022년에는 나름대로 계획이란 걸 세웠다. 그래서인지 조금 긴장된다. 부담스럽기도, 설레기도 하다. 물론 계획이란 자고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이지. 나도 안다. 그럼에도 기대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올해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니, 어떤 일들이 남을까. 하루는, 한 달은 시간이 지나면 금세 흐려진다. 결국 나중에는 인생을 년 단위로 돌아본다. 지금 기억나는 건 2006년이다. 그때 나는 고향을 벗어나 독립했다. 대학에 갔고 월드컵이 열렸다. 감성에 흠뻑 젖은 밤과 말과 입김이 있었다. 그해엔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이 수두룩 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이제 다 지나가 버렸다. 아주 오래된 일들이다.
조금 지난 기억이지만, 이력서를 쓸 때도 년 단위로 돌아봤다. 1년 전에는 뭘 했고, 2년 전에는 뭘 했고, 3년 전에는 뭘 했고... 졸업 후 매년 놀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는 걸 어필하기 위해 짧은 일이라도 기록했다. 그러나 이력서에 담기지 않은 것들이 훨씬 더 많다. 아무튼 그런 건 그만하고 싶다. 내가 올해 원하는 단 한 가지는, 더 이상 이력서를 쓰지 않는 삶이다.
행성 충돌과 외계인 침략과 세계대전의 위협을 피해 2022년은 기어코 왔다. 동시에 나의 삶도 제 나름대로 굴러간다. 나는 무언갈 원하고 또 바란다. 지금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삶이라고 생각하지만 더 행복하고 싶은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2022년만큼은 무던하지 않게, 반갑게 맞고 싶다. 나중에, 10년, 20년 뒤에 기억할 수 있는 그런 2022년이 되길 바란다. 이렇게 쓰고 보니 아주 식상하고 지루한 신년 인사 같네.
...1, 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