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많이 먹을 땐 파인트 사이즈를 연달아 나흘이나 사 먹기도 했다. 할인 마트에 가면 돼지바나 월드콘을 잔뜩 사서 냉동실을 가득 채웠다. 그러면 땅부자라도 된 듯 마음이 든든했다.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요즘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꼭 배가 아프다. 그래서 외출할 일이 없는 날에만 먹는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위장이 약해져서 그런가? 다들 아시다시피 나이가 들면 이래저래 고장 나는 게 많다. 몹시 슬픈 일이다... 아무튼, 아이스크림 이야기다.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아이스크림은 소다맛 쭈쭈바. 맛도 맛인데 색깔이랑 이름이 참 좋았다. 봄 하늘처럼 여리여리한 파란색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소다’라는 말이 주는 어감도 매력적이다. 소다, 소다, 소다. 무언가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이 든다. 소다가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탄산나트륨 맛이라면... 으, 입맛이 뚝 떨어진다). 얼음 알갱이가 남아있는 소다맛 쭈쭈바를 꿀꺽 마시면 마치 파도를 삼킨 것처럼 가슴이 시원해진다. 청량감이 말할 것도 없이 대단하다.
또 기억나는 건 투게더와 붕어싸만코. 미취업 아동의 취향이란 대체로 부모의 것을 따라간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퇴근길에 이런저런 간식거리를 사 왔는데, 아이스크림은 투게더 아니면 붕어싸만코였다(가끔 기분이 좋으실 때 셀렉션이나 엑설런트를 사 오셨지만 아주 드문 일이었다).
둥글고 묵직한 투게더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황금색도 탐욕스럽거나 강렬한 느낌이 아니라 마치 추수 직전의 들판처럼 느긋하고 넉넉한 느낌이다. 형과 나는 양쪽에서 달려들어 숟가락으로 신나게 퍼먹었다. 아버지는 우리를 흐뭇하게 지켜보며 혼자서 붕어싸만코를 드셨다. 나는 붕어싸만코를 싫어해서 거의 안 먹었다. 그런 걸 무슨 맛으로 먹나 싶었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갑자기 붕어싸만코가 맛있어지더라. 인생 그래프를 따라 혀의 감각이 일정하게 변하는 걸까? 신기한 일이다.
성인이 되고 돈을 벌면서부터는 배스킨 라빈스를 자주 갔다. 앞서 말했듯 무진장 먹은 시기도 있지만, 지금은 아주 가끔만 간다. 가장 좋아하는 맛은 ‘엄마는 외계인’. 보통 파인트로 주문하니까 세 가지 맛을 고르게 되는데, 나머지는 그때그때 다르다. 아무튼 ‘엄마는 외계인’이 빠진 적은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배스킨 라빈스는 ‘엄마는 외계인’을 먹기 위해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부드럽고 달콤한 초콜릿 아이스크림 사이에서 바삭, 하고 부서지는 초코볼의 달콤 짭짜름이란!
‘엄마는 외계인’ 이라는 이름은 1988년 작, 새엄마는 외계인이라는 (미국)영화 제목에서 따왔다고 한다. 밀크, 다크, 화이트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뒤섞인 모양을 우주로, 초코볼을 행성으로 상상하고 적당한 이름을 붙인 것 같다. 배스킨 라빈스는 영화 제목을 이용한 마케팅을 많이 한단다. 그러고 보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이상한 나라의 솜사탕’도 있었다.
2004년 출시 직후에 나오던 광고도 기억이 난다. 별이 빛나는 밤, 한 남자와 아이가 캠핑카 위에 앉아 있다. 아이가 묻는다. 아빠, 엄마 어디 있어? 남자는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흠칫, 하더니 손가락으로 밤하늘을 가리킨다. 그리고 타이틀. ‘엄마는 외계인.’ 그때는 그냥 이름이 이상하네, 하고 넘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꽤나 감성적인 광고였구나.
이름이 흥행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나는 이름이 너무 특이해서 잠깐 유행할 뿐, 금방 사라질 줄 알았다. 과도한 특수성은 발생 초기에만 힘을 쓰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러나 현실은 부동의 스테디셀러로 아직까지도 절찬 판매 중이다. 나 역시 맛을 보고 흠뻑 빠져서 한동안 엄청나게 먹어댔다. 지금도 최애 아이스크림이다. 죽기 직전에 아이스크림을 딱 하나만 먹을 수 있다면 망설임 없이 고를 것이다. 엄마는 외계인!
그건 그렇긴 한데... 이건 좀 뜬금없고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름을 바꾸면 좋겠다. 눈가는 시커멓고 수염은 거뭇거뭇한 아저씨가 ‘엄마는 외계인 주세요’라고 말하는 건 아무래도 좀 부끄럽다. 무난하게 믹스 초콜릿이나 트리플 초코 정도로 하면 안 될까요? 당연히 안 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