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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혁 Mar 02. 2022

고양이 알레르기

헤어진 여자친구와 2년 만에 다시 만났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나는 휴대전화에 떠오른 번호를 보자마자 그녀를 생각했다. 덩달아 많은 것들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오래 고민해봤다. 결론은 심플했다. 그것은 그저 쓱 지나쳐버리는 우연에 불과하리라.

통화를 하고 나서 며칠 뒤에 우리는 광화문의 스타벅스에서 만났다. 그곳은 우리가 4년 전, 소개팅으로 처음 만난 장소였다. 우리는 마치 어제 헤어졌다가 오늘 다시 만난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눴다. 실제로 2년 동안 우리는 달라진 게 별로 없었다. 예전과 같은 집에 살고, 같은 직장에 다니고, 여전히 혼자였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나서 우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동시에 할 말을 잃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카페를 둘러봤다. 느린 템포의 재즈 음악이 흐르고,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감정이 말을 타고 둥둥 떠다녔다. 나는 정적이 지겨워졌다. 그래서 최근에 다니는 모임에 대해서 말했다.

“요즘 모임에 다녀.”

그녀가 물었다. “무슨 모임?”

“다양하게. 전시회, 볼링, 독서, 글쓰기... 뒤풀이는 빠지지 않고 참석해. 갈 때마다 적어도 한 명 정도는 꼭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더라.”

“흐응. 그래?” 그녀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말이 통한 거야? 마음이 통한 거야?”

글쎄. 그런 건 나도 잘 모르겠다. 나이가 들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지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지 않고 그냥 웃었다. 우리는 또 한동안 침묵했다. 갈수록 할 말이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요즘 고양이를 찾아다녀.” 갑자기 생각난 듯 그녀가 말했다.

“고양이?” 나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응, 고양이.”

그녀는 고양이를 좋아했다. 적당히 좋아한 게 아니라 정말 진심을 다해서 특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심했다.

어린 시절의 그녀는 그걸 알면서도 고양이를 만졌다고 한다. 친구 집에 놀러 가서 고양이와 실컷 놀고는 돌아와 며칠을 끙끙 앓았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심하게 났다. 간지럼을 참지 못해 피가 날 정도로 긁은 적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고통스러울 걸 알면서도 다 낫고 나면 또다시 반복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서 변했다. 이런저런 일을 경험하면서 사람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다. 나와 사귀었던 이십 대 중반 즈음엔 고양이를 좋아하는 마음을 완전히 끊어냈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우연히 고양이를 마주치면 마치 죽은 쥐라도 본 것처럼 깜짝 놀라며 피했었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어. 갑자기 알레르기가 사라졌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배시시 웃었다. 정말 기분이 좋을 때만 그런 미소를 짓는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아니, 저절로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기억을 잠시 잊을 수는 있지만 지울 수는 없는 법이다.

“주말이면 간식을 한 꾸러미 들고 산책을 해. 우리 집 알지? 거기서 초등학교 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골목이 많은 동네 있잖아. 보통 그 주위를 다녀. 짧으면 한 시간, 길면 대여섯 시간까지.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면 못해도 한 마리 정도는 마주치게 돼.” 그녀는 신이 난 듯 말했다. “고양이는 경계가 심하니까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해. 절대 빨리 움직이면 안 돼. 가만히 앉아서 오랫동안 눈을 마주치지. 그리고 눈을 천천히 깜빡, 깜빡거려. 나는 너를 공격할 생각이 없다. 친하게 지내자는 사인 같은 거야.”

그러면 고양이 쪽에서도 반응을 한다. 휙 도망쳐버리거나 똑같이 눈을 깜빡거린다. 도망치면 어쩔 수 없고 눈을 깜박거리면 천천히 다가가서 간식을 준다. 너무 가까이만 가지 않으면 대체로 받아먹는다. 그러나 실제로 쓰다듬기까지 허락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건 아주 특별한 일이야.”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아주 드물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나도 모르게 저번 모임에서 만났던 여자를 떠올렸다. 그 여자의 이름이 뭐였더라? 잠깐 궁리해봤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애쉬그레이 색의 단발머리만 떠오를 뿐이었다.     

뒤풀이에서 단발과 나는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다. 당시만 해도 우리는 서로의 깊은 속마음까지 속속들이 이해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오랜만에 무척 낭만적인 기분에 취해있었다.

뒤풀이 2차가 끝나고 단발과 나는 같은 택시를 탔다.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았던 탓이다. 나는 적당히 기분 좋을 만큼만 마셨고 단발은 취해있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데 말을 걸면 이상한 대답을 하는 식이었다. 나는 뭔가 골치 아픈 일을 떠맡는 것 같아 따로 가려고 했지만 단발이 완강해서 어쩔 수 없었다.

“택시비가 얼만데.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이유였다. 아무튼 나는 단발이 내릴 때 같이 내렸다. 그리고 부축해서 집까지 바래다줬다. 집 앞에서 단발은 내게 맥주나 한잔 하고 가라고 권했다. 나는 거절했다. 그러자 단발이 말했다.

“아까 하던 얘기 마저 해야죠. 나는 더 얘기하고 싶은데. 아니에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랑은 다르잖아요. 당신도 그거 알죠? 이런 마음이 드는 건 진짜 드문 일인데.”

그 순간 나는 모든 것들이 지긋지긋해졌다. 그저 집으로 돌아가 씻고 편하게 잠들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집으로 들어가 맥주를 마시고 그녀와 같이 잤다. 새벽에 온수 매트가 너무 뜨거워 땀을 뻘뻘 흘리며 깼다. 창으로 비치는 푸르스름한 새벽빛에 단발의 허리와 엉덩이의 곡선이 비쳤다. 그러나 그게 아름답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옷을 챙겨 입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모임은 두 번 다시 나가지 않았다.     

“맞아, 드문 일이지.” 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커피를 홀짝였다. “드물고 말고.”

그녀는 이후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는 이야기를 듣고 종종 맞장구를 쳤으며 내 의견을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은 하나도 듣지 않았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도 대답을 할 수 있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나는 속으로 고양이를 생각했다. 어쩌면 내게도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었을지 모른다. 너무 어릴 때의 일이라 그저 기억하지 못할 뿐. 어쩌면 그 시절의 나는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도리 없이 고양이를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특별한 일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일어나니까. 그러나 결국 그런 것들은 모두 다 지나간다. 고양이든 알레르기든 뭐든... 모두 시간의 퇴적에 묻혀 오래된 고대의 도시 속으로 가라앉아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결국 박물관의 유물처럼, 아주 멀리 떨어진 채 그것을 구경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그녀와 헤어질 때까지 대충 그런 생각들을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그녀의 전화번호를 차단했다. 모임 같은 것도 이제 다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나 모임 어플을 지우려는 순간, 이것도 아니면 내게 대체 무엇이 남아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갑자기 몹시 두려워졌다.

다음 역은 옥수, 옥수 역입니다. 지하철이 잠시 멈춘 사이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또 탔다. 어두운 밤의 그늘 너머 멀리,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 불빛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아주 큰 강이 흐르고 있다. 문이 닫히고 열차는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다. 나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그리고 아무런 생각 없이 창 밖의 풍경을 쳐다봤다.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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