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저 책 제목을 들었을 때 '와 누군지 정말 잘 지었네' 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나 역시 대단히 우울한 기분이 자주 들고, 그 때마다 자극적인 떡볶이를 찾아 먹던 시절이었다. 서울 시내 유명하다는 떡볶이를 찾아 다니며 먹고, 새로운 장소에 새로 눈에 띄는 포장마차가 보이면 꼭 가서 떡볶이를 사먹었다. 하지만 항상 '아 이 맛이 아닌데' 하는 실망감만 이어졌다. 내가 가장 맛있게 먹었던 떡볶이는 어린 시절, 집 근처 마트에서 어떤 젊은 아주머니가 포장해서 팔던 떡볶이였다. 그 떡볶이를 집에 들고 와 좋아하는 만화책을 보며 맛있게 먹곤 했다. 아무런 걱정도 없었던 시절, 만화책 하나 던져주면 한없이 행복했던 그 때, 단짠매운 맛의 극치였던 떡볶이는 완벽한 행복의 마지막 퍼즐이었던 셈이다. 그 시절 그 떡볶이가 정말로 객관적으로도 내가 먹어본 모든 떡볶이 중 최고였을까? 알 수 없다.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은 걸지도.
백세희 작가의 그 책을 읽어보진 않았다. 그냥 주워들은 이야기로 기분부전장애를 겪는 작가의 솔직한 고백 같은 거란 소리만 들었을 뿐. 당시엔 아직 자기 스스로의 정신질환을 당당히 밝히는 일이 쉽지 않은 분위기여서 한편으로 용기 있다는 생각이 든 기억만 어렴풋이 난다. 그리고 한동한 잊고 있었는데..기사를 보고 좀 놀랐다.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뇌사라고 하는 것을 보니 대충 짐작이 가기로는.. 결국 끝내 견뎌내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더라. 5명에게 장기를 이식해주고 떠났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었지만, 생전 그녀의 바램은 아마 그 어떤 것보다 순간 순간을 행복하게 꽉 채우고 살다 가는 것이었으리라 짐작이 가기에.
나는 한 때 공감 가는 에세이나 내면 심리를 생동감 있게 표현한 소설을 즐겨 읽었다. 그런 글들이 비슷하게 마음이 여리고 예민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더이상 그런 글을 읽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런 글에서 보이는 공통적인 면들 - 허전함, 공허감 같은 감정을 나누고자 하지만 결국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애써 회피하고 감추려는 의지가 자꾸 읽혔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 타고난 기질에서 시작한다. 물론 그런 기질을 타고 나도 누구는 운이 좋아 덜 상처를 받고 더 많은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을테고, 누구는 운 나쁘게 남들보다 더 큰 상처와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자랐을 것이니 그에 따라 어떤 사람은 별 문제 없이 살지만 또 어떤 이는 끊임없이 고통 받으며 살 수 있다. 심지어 정말 운이 안좋은 경우는 아무리 부모가 사랑을 듬뿍 주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줘도 타고난 유전적 기질이 너무 강해 마음에 자리잡은 어둠의 거미줄을 끝끝내 걷어내지 못한 채 끈적거리는 우울과 불안 속에서 살기도 한다.
오랫동안 지켜보고 경험해보고 공부해온 바로는, 진화적인 이유에 의해 이런 성향의 유전자가 오늘 날까지 소수이지만 꽤 많이 생존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들에게 있어 정신건강의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생명체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인 번식 및 자손의 적자 생존은 인간도 피해갈 수 없는 과업인지라, 이들에게 있어 정신건강의 문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로켓과 로봇을 개발하고 AI와 신약을 개발하며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 문제만큼 중요할 수 있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그런 성향의 사람들은 소수이기 때문에 인간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땐 그다지 도움도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때로는 퇴행적으로 과거에 집착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당장 미래를 향해 기후 변화도 늦추고 화성도 개발하고 전쟁도 막아야 할 판인데 그렇게 내면의 건강에만 집착하는 것은 한심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인간종은 결국 개개인 모두 자기 자신의 생존과 번영만을 추구할 뿐이다.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 역시 깊숙한 내면에는 결국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유전자의 이기적 욕망, 자신이 퍼뜨린 유전자를 나눠가진 자식들이 더 번영하기 위한 방향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욕망이 담겨 있을 뿐이다. 우연히도 그것이 지금 시점에 전체 사회의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을 뿐, 무분별한 자원 개발과 기술 발전, 그로 인한 자연 파괴와 전쟁으로 얼룩진 지난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그런 사람들의 의지 역시 반드시 인류에게 유익했다고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정신건강을 최우선으로 삼는 삶은 자기 자신이나 후속 세대에게, 그리고 현실의 세계에 어떤 식으로 기여를 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인간은 결국 누구도 혼자 살 수 없는 존재고,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에게 의미를 전달하고 기여를 하고 인정을 받고 인간적인 정을 나누고 살아야 마음을 채우며 살 수 있다. 자기 자신과 유전적 친족들만을 위한 이기적 욕망도 결국 사회적 맥락 속에서 받아들여지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을 위한 최선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예민함, 자신의 상처와 트라우마,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부끄러워할 이유도, 숨겨야 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그것만 해결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을 살다 가는 것으로 볼 여지도 충분하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한편으로 축복받은 삶일 수도 있다. 가성비 넘치는 목표 아닌가. 실제로 그런 것만 연구하는 사람들 역시 알고 보면 비슷한 사람들일 뿐이다. 그런 마음의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에세이보다, 좀 더 실천적인 자기만의 방식을 개발하는 것, 그것이 이런 성향의 사람들이 살아야 할 존재의 이유, 삶의 목표, 그것도 매우 중요한 - AI와 로봇, 양자 컴퓨터를 개발하는 것만큼 - 일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어차피 다행히도(?) 모두에게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다. 자기 자신의 마음 하나만 다스리는 법을 익히고 개발하고 깨우치는 것만으로도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인생의 성취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요한 건 역시나 지치지 않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