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컴퓨터를 접한 것은 꽤 오래 전으로, 아마도 초등 (당시는 국민학교) 2학년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일 먼저 8비트 컴퓨터에 제믹스라는 게임기의 게임팩을 넣어 게임을 하거나 간단한 Basic 코딩을 했었다. 그 후 286 XT라는 컴퓨터 (흑백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를 장착한) 가 생겼고, 이 컴퓨터를 이용해 MS-DOS 운영체제 하에서 게임이나 GW-Basic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로 코딩을 해보기도 했다. 당시 Basic 코딩으로 처음 뭔가를 만들어보던 때가 초딩 2-3학년이었는데, 실은 그다지 변변한 것을 만들진 못했다. 그 때 이미 코딩은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던 것 같기도?
시간이 흘러 중학교 때였나 PC 통신 붐이 일었고, 나는 천리안에 가입했다가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나우누리로 갈아 탔는데 아마 나우누리가 당시 PC 통신 서비스 중 가장 규모가 컸던 것 같다. 그 당시 나우누리에서 ISF, 즉 인터넷 스터디 포럼이라는 동호회 활동을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부터 온라인 게시판 글 올리는 것에 매력을 느꼈는데, 그 시절 열심히 활동해서 그래픽 카드를 받았으니 그 그래픽 카드 이름이 Riva-TNT 였다. 제조사는 바로 nVidia. 그 때만 해도 엔비디아는 떠오르는 그래픽 카드 회사였고 AI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지만 당대 최고의 그래픽 카드 기술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때 동호회 사람들 중 누군가는 엔비디아 주식을 사서 지금까지 보유하고 있을까?
그 시절은 인터넷 회선도 안들어왔던 때라 인터넷을 모두 나우누리와 같이 PC 통신 서비스 업체에서 제공하는 전화접속 네트워크를 이용해 접속했다. 그 시절 모뎀 속도가 56Kbps 였나 그랬는데 지금 무선랜 기준 5G 속도가 대략 300-500Mbps 쯤 나오나? (물론 상황에 따라, 업체마다, 요금제마다 다르긴 하다) 암튼 그럼 참 답답했겠다 생각하기 쉽지만 그 시절 어차피 인터넷 홈페이지들은 몇 개 있지도 않았던 데다가 그마저도 상당부분이 텍스트와 저화질 그림과 사진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별로 느리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느린 인터넷 속도를 보완하기 위해 그림 파일을 모자이크처럼 보여줘서 점점 뚜렷하게 나타나게 하는 포맷도 있었고 jpeg보다 더 용량이 적은 gif 포맷을 쓰고 뭐 그랬던 것 같다. 여하간 그 때 나도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어서 지금은 사라진 야후! 에 올려서 등록시킨 적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저작권 뭐 그런 개념도 없던 때라 여기저기서 긁어 모은 최진실 사진들을 이용해 최진실 팬페이지를 만들었다. (최진실은 2008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 후로 인터넷 웹페이지 기술에는 여러가지가 나타났다 사라지거나 발전을 거듭해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Macromedia Flash라는 애니메이션 위주의 벡터 그래픽 툴이 있었는데 어느샌가 사라졌고, JAVA 가 많이 쓰였는데 그건 발전을 거듭해서 지금도 쓰이고 있다. JavaScript, CSS, HTML도 당연히 쓰이고 있고.. 그 외에도 수많은 플랫폼과 규약, 기술들이 개발되어서 이젠 뭐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실은 어린시절 컴퓨터를 처음 공부할 때 프로그래머를 잠깐 꿈 꾼 적도 있긴 했지만 워낙 빠른 변화와 발전 속도 때문에 내가 제대로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것을 일찍부터 직감했던 것 같다.
최근 Python 언어를 새로 공부하고 이걸로 웹페이지를 만드는 부분도 조금씩 보고 있다. 과거보다 코딩 방식은 점점 더 쉬워지고 있고 예전엔 외워야 했던 명령어들이나 알고리즘도 이제는 전부 AI에게 물어보거나 여기저기 따서 쓸 수 있게 되어 더 편리해지긴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그런지 코딩은 점점 더 나에겐 어려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애초부터 이런 것에 특화된 머리,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 같다. 대기업에서 코딩 관련 업무를 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애초에 코딩 분야 적성은 머리고 뭐고 그냥 하루종일 그것만 해도 즐거워하는가의 여부라고 하더라.
그래도 한 때 재밌게 갖고 놀았던 것이기도 하고 옛날 지식이긴 하지만 머리 속에 남아있는 것도 꽤 있어서 여전히 나는 컴퓨터나 타블렛PC 같은 것에 관심이 많다. 새로운 칩셋을 장착한 PC, 더 선명한 고화질의 모니터가 새로 나왔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사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솟아 오를 때도 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그런 것들로 더 뭘 할 것도 이젠 없더라. 기술이 너무 고도화되면서 이제는 전문가가 아닌 이상 굳이 더 좋은 기능을 갖춘 컴퓨터도 필요 없어져 버렸다. 지금 한창 양자컴퓨터 기술이 연구 단계에 있다는데 언제고 만약 양자컴퓨터가 나오면 세상이 얼마나 더 빨리 더 많이 변하게 될 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얼마 전 한국에서 열린 오픈소스서밋 코리아에 리눅스를 만든 리누스 토발즈가 왔다고 한다. 리눅스는 한 때 유닉스를 대체할 오픈소스 운영체제로서 각광을 받았고, 당시 리누스 토발즈를 비롯해 몇몇 프로그래머들이 GNU 였나 유료 소프트웨어에 대한 반발로 오픈 소스 운동을 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알고보면 프로그래밍 분야에서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이른바 진보 좌파 운동이 일어났던 셈이다. 그 시절 나도 하드를 파티션으로 둘로 나눠 하나엔 윈도우, 하나엔 리눅스를 설치해봤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결국 전문가용이라 나에겐 별 쓸모도 없었고.. 지금 생각해보니 그 당시 입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와 회피 때문에 컴퓨터에 몰두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서울대에 들어가자마자 컴퓨터에 대한 공부를 일체 중단했는데.. 확실히 도피처에 불과했던 게 맞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