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주식과 채권
최근 수 년 사이 주식과 채권으로 개인들의 자금이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대규모로 이동하고 있다. 여기에는 과거보다 다양한 금융 상품들에 대한 접근성도 높아지고 관련 정보 교류도 활발해지고 있는 것도 한 몫 하겠지만, 최근의 주변 동향과 세계 경제의 변화를 볼 때 그보다 좀 더 깊은 근본적인 이유가 숨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앞으로의 세계 경제가 글로벌 기업들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으며 다수의 시민들이 어쩌면 기본소득처럼 그런 기업들이 벌어다주는 배당 소득으로 살아야 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상위 10대 기업들의 수출 집중도는 2023년 1분기 32%였던 것이 올해 3분기 기준 40%로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100대 기업으로 넓히면 수출액 비율이 전체의 67.6%를 차지한다. 또한 작년 5대 그룹의 매출은 GDP의 40%, 전체 대기업은 GDP의 80%를 차지했다. AI와 로봇 개발 등 지금과 판이하게 다른 미래 경제 변화가 예측되는 상황에서 점점 더 수출 기업과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기술의 발전이 조직과 팀 협업의 효율을 증가시키고 있는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앞으로 점점 더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를 할 수 있는 조직들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수 년간 적은 비용과 인력으로 유니콘 기업이 된 사례도 많지만 실은 openAI도 그렇고 새로 탄생한 신흥 대기업들은 모두 기존의 대기업으로부터 막대한 투자를 받은 기업들이라고 할 수 있다. 로봇이나 양자 컴퓨터, 바이오 신약 같은 경우는 여전히 엄청난 투자금이 필요한 산업이다.
이제는 개인들이 회사채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규모가 다를 뿐 기관 투자자와 투자 상품에 대한 접근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개인은 그냥 하나의 거대한 기관처럼 움직일 가능성이 높은데, 결국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개인들의 자금을 모두 동원해 기업들에 투자하고 그 배당과 분배금을 나눠 갖는 방식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국민들의 노후를 책임져야 하는 국민연금관리공단 역시 국내 최대 규모의 기관 투자자이고, 실은 개인들이 직접 투자하는 것이나 연금공단에 기대는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하겠다.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 등 관련 상품들이 각각 다른 이름으로 운용되고 있지만, 본질은 결국 똑같다. 개인들의 미래는 기업의 채권과 주식을 사는 데에 있다는 것.
장기적으로 볼 때 이는 부동산으로 모든 자금이 흘러가는 것보다는 훨씬 더 바람직한 현상이다. 주식이든 채권이든 은행이든 (어차피 은행으로 넘어간 돈은 다시 기업에 재투자되므로) 흘러들어간 돈들은 모두 여러가지 메커니즘으로 기존의 기업들이나 새로운 기업들에게 투자금의 형태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기업이 돈 빌릴 수 있는 시장 규모가 커질수록 새로운 사업들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어차피 한국인으로서 잘 살기 위해선 한국의 기업들이 잘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 요즘 인기 있다는 의료 서비스 시장이든 자영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공공기관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더 많은 개인 돈이 주식과 채권 시장으로 흘러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가 더 성장하는 데에 기여하게 된다. 다만 여기서 문제가 바로 배당 수익과 주식, 채권의 안전성 문제다.
미국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SEC 규정을 크게 강화했는데, 2010년 도드 프랭크 금융개혁법안 등 이와 관련된 새 규정들은 오늘날 미국 주식을 말 그대로 '정직'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돈을 잘 벌고 배당을 잘 주는 기업은 주가가 오르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어떤 식으로든 주가 장난을 치기 쉽지 않도록 효율화되었다는 의미다. 서학 개미라 해서 한국인들이 미국 주식을 대거 사들이고 있는데, 비록 엉뚱하게도 한국인들이 사는 미국 주식은 오히려 고평가 된 기술주들이 대부분이지만, 안정적인 배당과 성장을 유지하는 미국 기업이나 그런 기업들을 묶은 ETF들엔 그동안 미국인들을 비롯해 전세계에서 꾸준히 자금이 흘러들어왔다. 이는 미국 기업들에 끊임없이 재투자가 가능하도록 만들 뿐 아니라 투자자들에게도 안정적인 수익을 유지하게 해주는 장치가 되고 있다.
미리 예측을 해보자면 중간 중간 난관은 부딪힐 수 있어도 한국은 결국 금융시장 선진화에 언젠가는 성공할 것으로 보이고, 개인들 역시 지금보다 점점 더 채권과 주식으로 더 많은 돈을 쏟아 부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주식 투자는 과거의 주식투자와 달리 한탕 하고 매도해 차익을 실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말 그대로 국민연금처럼 여러 ETF에 투자하는 방식, 즉 대한민국 기업들을 골고루 포트폴리오로 삼는 방식으로 투자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결국 미국 따라하기 최적화된 한국인 만큼 미국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물론 중간중간 여전히 갑작스런 경기 불황이나 여러 문제들로 주식시장이 폭락할 가능성은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회복속도는 점점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쉽게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실은 부동산 가격도 조물주의 시선으로 보면 하루하루 폭락과 폭등을 거듭하고 있을지 모르며,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현금 역시 그 가치가 수시로 진동하듯 달라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여간 이같은 예상이 맞다면, 앞으로도 한국 경제 자체는 큰 무리 없이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기업 집중 현상으로 인한 양극화는 피할 수 없는 현상으로 보이는데, 실은 이제와서 중소기업 살리기에 올인하는 것도 큰 의미는 없다고 본다. 어차피 한국은 수출을 하지 않으면 원화 가치를 유지할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취업 시장에 적용해보면, 앞으로도 한국은 대기업을 비롯해 소위 고소득 직업들은 매우 적을 것이란 예상을 해볼 수 있겠다. 결국 장기적으로 다수의 사람들은 고소득으로 자산을 적극적으로 불리는 전략 보다는 차라리 버는 돈을 주식 채권에 투자해서 미래의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설계하는 전략을 택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한 때 기본소득 논의가 한창 있었다. 하지만 점점 그런 논의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데, 애초에 민주주의의 근간 자체가 그런 식의 배급받는 돈이 아닌, 스스로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과거보다 점점 더 평등한 위치에 서게 된 것은 스스로의 경제력을 입증했기 때문이고 러시아나 몇몇 동남아와 남미를 비롯한 수많은 독재국가들이 민주화가 될 수 없는 것은 나라의 부를 소수 독재세력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기본소득이 이렇다할 부가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결국 화폐 가치만을 추락시킬 뿐이다. 좀 더 진화한 새로운 조직 형태가 나타나지 않는 한 앞으로의 생산주체 역시 수많은 주식회사들이 담당할 것으로 본다면, 개인 입장에서 결국은 채권이나 주식으로 돈을 이동시키는 것이 자기만의 기본소득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