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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박 Nov 14. 2019

'에타'와 대학, 그리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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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에게 <블라인드>가 있다면, 대학생들에겐 <에타>(에브리타임)가 있다. 이제 학생들은 직접 만난 교수의 한 마디보다, 지나가는 익명이 남긴 한 줄의 댓글을 더 신뢰하는 것 같다.


<에타>와 같은 익명 커뮤니티를 통해 대학생들이 과거에 쉽게 하지 못했던 대학 내 부조리에 대한 고발을 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린 것은 꽤 바람직한 일이다. 실제로 대학생들의 익명 커뮤니티는 미투 운동이 활발히 이어질 수 있도록 했던 중요한 기반이었다. 과거엔 조용히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학교에서 겪는 불합리한 일들이나 교수의 자질에 대한 문제들에 대해 어렵지 않게 공론화할 수 있게 되면서 교수 사회도 이젠 꽤나 긴장하게 된 것 같다.


학생들은 그곳에서 피해야 할 수업, 과제가 많은 수업, 교수들의 성향이나 성격, 학점을 주는 스타일 등에 대한 개인적 생각들을 익명의 힘을 빌어 과감하게 쏟아내고 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여러 정보들을 기꺼이 공유하는 데에는 학생들만 들어올 수 있도록 제한하는 가입 제한 시스템과 탁월한 보상시스템 체계가 한몫을 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에타>의 모든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재학생 인증 단계를 거쳐야 한다. 학교에 따라서 인증 방식은 상이하다. 학생증 사본을 제출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학생들만 사용하는 이메일 계정으로 인증을 하는 경우도 있다. 가입 단계에서 경험하는 1차적 필터링 덕분에 학생들은 <에타>에 본교 재학생이 아니면 들어올 수 없다고 강력하게 믿는 것 같다. 그 믿음은 운영자가 누구인지도 모를 한 기업에 개인 정보를 기꺼이 제공함으로써 쌓인 것이다.


시대가 아무리 변했다 해도 이제 막 사회를 맞닥뜨린 20대의 대학생들은 여전히 순진한 구석이 있다. 기업이 말하는 "공정성"과 "투명성"을 곧이곧대로 믿는다. <페이스북>이나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개인정보유출 사건이 터져 나와도, 왠지 <에타>는 안전할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학생들은 자신이 "익명"으로 넘긴 댓글이 정말 익명으로서 기능할 것이라 믿는다. 가입 과정에서 제공한 개인 정보에 대한 기억은 잊은 채로. 사용자들의 이런 믿음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아마도 <에타>가 길게 생존하는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재학생이 아니어도 <에타>의 사용자 인증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충분히 많다.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충분히 들여다볼 수 있다. <에타>가 특별히 '안전'하다고 믿는 학생들이 있다면, 조금은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많은 정보를 제공하도록 부추기는 두 번째 외적 동기로 <에타>의 획기적인 보상시스템을 꼽을 수 있다. <에타>는 쇼핑몰에서 상품 구매 후기를 올리면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것처럼,  이용자가 강의평가를 남기면 포인트를 적립해준다. 수업 과제 내용이나 시험 내용을 올리면 좀 더 많은 포인트를 적립해준다. 그렇게 적립한 포인트는 타 이용자가 올려 둔 특정 수업의 시험문제나 과제 내용 등을 보고 싶을 때 쓸 수 있다.


그야말로 좋은 학점을 받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욕망을 제대로 저격한 스마트한 보상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용자가 자발적으로 강의평가를 남길 수 있도록 유도하면서도, 특별한 유지비용을 들이지 않는 체계를 구축했. 보다 똑똑한 '강의 쇼핑'을 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남기는 강의평가의 내용은 고스란히 <에타>의 자산이 되며, 점점 더 많은 이용자들이 해당 사이트로 몰려들도록 하는 가치 있는 콘텐츠로 기능한다.


이 맥락 속에서 교수가 진행하는 수업과 교수자의 성향 및 정체성은 일종의 상품이 되었다. 학생들은 최대한 자신들을 괴롭히지 않을 강의를 쇼핑하기 위해, 누가 남긴 것인지도 알 수 없는 강의 평가에 주목하며 강의 쇼핑리스트를 작성하고, '꿀강'으로 포지셔닝한 강의를 듣기 위해 친구들과 경쟁한다.


포털사이트의 가격비교 시스템이 학생들의 강의 쇼핑 문화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일반적 쇼핑에서 가성비가 '지불한 돈에 비해 성능이 좋은 정도'를 뜻한다면, 수강 신청에서의 가성비는 '들이는 노력에 비해 좋은 학점을 받을 확률'이다. 이제 학생들에게 수강신청은 가성비를 충족하는 학점을 주는 강의를 찾는 과정으로, 실패해서는 안 되는 무언가로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덕분에 중고등학교 시절에 접하기 어려운, 대학에서 추구되어야 할 다양한 시선과 깊이 있는 지식에 대한 갈망은 현재의 캠퍼스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수업 역시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배우고 토론할 수 있는 학문과 성찰의 장으로 꾸며지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수업을 듣는 것은 학점을 따기 위한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에타>와 같은 커뮤니티의 등장은 더욱더 이와 같은 흐름을 부추기는 것 같다.


창작자들이 대중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고민하는 것처럼, 온라인 상에서 품평의 대상이 된 교수들은 강의의 대중성(인기도)과 퀄리티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온라인 상의 '좋은 강의' 기준은 지불한 학비와 들인 시간 및 에너지 양에 대비하여 좋은 학점을 주는 강의인 것 같다. 여기에 발맞추려 한다면 교수자는 최대한 쉬운 강의를 하면서도, 학생들에게 약간이라도 부담이 될 수 있는 과제나 시험을 시도해서는 안된다.


정말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그런 강의를 원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교수들은 이에 발맞추어, 예능프로그램에 버금가는 재미와 부담 없는 웃음을 선사하는 강의를 제공하기 위해 환골탈태해야 하는 것일까. 실제로 <에타>에서 꿀강이라는 평을 듣고 찾아온 학생들을 수업에서 직접 만나고 있는 당사자로서, 이에 대한 고민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무언가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과, 아무것도 배우고 싶지 않은 학생들(배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학생들)이 뒤섞여 있는 강의실에서, 나의 강의는 누굴 향해야 하는 것일까. 수업을 끝내고 돌아오는 발걸음엔 늘 찝찝한 뒷맛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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