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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박 Nov 15. 2019

교수의 권위를 지키는 이상한 방식

https://images.app.goo.gl/E3NqRcBbYzmaBgmJ6


"어머, 교수님이 직접 들고 가세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노교수가 내 손에 들린 출장신청서를 보고 놀란 듯 말한다.


"네~ 나가는 길에 그냥 갖다 주려고요"


둘 사이에 잠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대학이란 공간 속에서 교수란 존재는 캠퍼스 내에서 걸어서 이동하는 거리가 짧을수록 권위를 인정받는다고 여겨지는 것 같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몇 년 간의 대학은 그랬다.


임용 첫해 겨울이었다. 연말 정산의 시즌이 시작되어 늘 그래 왔듯 서류를 준비했다. 온갖 카드 내역과 내 개인 정보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으니 당연히 내가 직접 제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준비한 서류를 들고 행정실에 도착했을 때, 처음에 직원은 내가 조교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방학 기간이라 옷을 캐주얼하게 입고 있기도 했었다. 그래도 그렇지. 정말 무례하기 짝이 없는 말투와 표정으로 날 쳐다보더니, 거기 두고 가라고 했다.


"서류 빠진 것 없는지 확인 안 해주시나요?"


황당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던 직원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것 같았다.


"아이고, 교수님이 직접 오셨어요? 조교 시키시지~~"

"아, 네 뭐..."


내가 뭘 잘못한 것일까. 뭔지 모르지만 나도 모르게 이 세계의 룰을 깨뜨려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직접 행정서류를 제출하려 캠퍼스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우리 학과 건물이 행정관 건물과 너무 멀기도 하고, 전임 교수 5명에 조교 한 명이 인력의 전부인데 사사로운 심부름을 시키기도 민망했다. 어쩌다 무언가 부탁할 때도 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해버렸다. 어차피 별일도 아니니.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교직원들이 그런 나의 행동을 상당히 불편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걸 명확하게 알게 된 것은 지난해 초였다.


교내 연구비를 받게 되어 연구진흥 부서에 서약서를 내러 갔다. 서약서를 써야 했던 이유는 내가 비정년 교수이기 때문이었다. 논문을 게재하지 못한 상황에서 재임용이 되지 않으면, 연구비를 반환하겠다는 서약서였다. 이성적으로는 이해를 하지만, 상당히 기분이 나쁜 절차였다. 다른 누군가에게 시키기엔 다소 치욕스럽기까지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나를 쳐다보는 직원들의 표정은 거부감, 그 자체였다. 담당 직원에게 서류를 넘겨주었을 때, 거의 뺏어 가듯이 서류를 챙기더니 쓰윽 보고 "됐습니다. 굳이 직접 안 오셔도 되는데요."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는데, 정말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특강비 요청 서류를 사업팀에 내고 온 날이었다. 마침 해당부서 사무실이 내가 수업을 하는 건물 근처여서 일부러 챙겨가서 제출했다.


그날 오후, 조교에게 카톡이 왔다. 해당 부서 직원이 우리 조교에게 전화를 해서 '왜 교수님이 직접 오시게 만드느냐'라고 볼멘소리를 했다며, 앞으로 서류제출 심부름 편하게 시키시라는 메시지였다.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던 나의 행동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그 불똥이 엉뚱한 사람에게 튀어버렸다.


그날부터였던 것 같다. 이제 나도 행정부서에 서류를 직접 가져다주러 다니지 않는다. 그럼 이제 나도 그들의 기준에서 교수의 권위를 조금은 갖게 된 것일까...


석사와 박사를 한국에서 하지 않아서 한국의 대학 문화, 특히 교수의 문화를 잘 몰랐던 것 같긴 하다. 나의 박사 지도교수는 온갖 프린트물을 직접 복사해서 스테이플러까지 손수 찍어 나눠주던 분이었다. 하루는 제자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셨었는데, 식사가 다 끝났을 때 교수님이 행주로 테이블을 닦기 시작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튀어나가서 행주를 낚아채려고 했다.


"제가 할게요"


그랬더니 그가 환하게 웃으며 이런 말을 했었다.


"그래, 너네 나라에선 이게 어색한 거지? 여기선 괜찮아"


나의 나라로 다시 돌아왔고,

교수의 권위를 지키는 이상한 방식에 결국 동참하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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