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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박 Nov 16. 2019

교수의 부탁

학계 노동 착취에 대한 단상

https://expat-press.com/the-fifty-shades-of-igen-how-to-say-yes-in-hungarian/


학위를 막 받고 돌아와 '박사'라고 불러주는 호칭에 으쓱하던 시절. 관련 학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교수들을 조금씩 알게 되고, 누구에게든 나를 알리려 애쓰던 때가 있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무조건 받았고, 부탁이 들어오면 무엇이든 잘 해내고자 했다. 무슨 활동이든 이어가려면 그 바닥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포지셔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울 외곽의 한 전문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날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막 운전대를 잡으려는 찰나,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차 시동을 끄고, 별 고민 없이 전화를 받았다.


"라박사? 이OO교수라고 합니다"

"어머, 네 안녕하세요 교수님!"

"통화 가능해요?"

"네 그럼요! 말씀하세요!"


모든 말 끝에 밝은 느낌표를 붙인 듯 말하던 시절이었다. 이교수는 학계에서 꽤 권위가 있는 사람이었다. 관련 정부 기관의 정책 회의를 주도했고, 유명 학회들의 회장을 연달아 맡았다. 그런 그가 나에게 직접 전화를 하다니. 왠지 설레기 시작했다.

 

모 기관의 정책 용역 연구에서 공동연구원으로 같이 일하자는 제안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거절은 무슨. '부족한 저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넙죽 절을 해도 모자를 지경이었다. 학계 권위자가 나를 불러주다니,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첫 번째 연구 회의가 토요일 오후에 잡혔다.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다. 지하철로 1시간 거리. 아이를 남편에게 부탁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안녕하세요!"


총연구진은 6명이었다. PM이 1명, 공동연구원 4명, 연구 보조 1명. 나를 제외한 공동연구원은 PM인 이교수 밑에서 박사를 받은 제자들이었고, 연구 보조는 석사과정 학생이었다. 그 공간에서 나는 명확한 필요에 의해 불려유일한 이방인이었다.


게 맡겨진 과제는 '해외 사례 조사 및 분석'이었다. 영어권 국가에서 박사를 하고 돌아온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어떤 공동 연구든, 내게 맡겨지는 일은 거의 똑같았다. 영어로 된 자료를 보고 적당히 정리하고 번역하면 되는 일이었다. 내 전공 지식보다는, 구글(Google)신에게 의존해야 하는 일이다. 나로서는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인맥을 쌓는다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학계에서 자리를 잡을 때 도움이 되리라는 믿음으로, 그들이 원하는 일을 기꺼이, 성실하게 마무리해주며 신뢰를 쌓아가려 했다.


그 당시 4명의 공동연구원 중에서 용역 일을 통해 자기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사람은 아마도 나뿐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각자 해오기로 한 부분을 약속 시간에 맞추어 제대로 마무리해서 가지고 오는 이는 나밖에 없었다.  모두들 너무 천연덕스럽게, 연구 미팅에 매번 빈손으로 와서 진행과정을 말로만 설명하곤 했다. 잡담이 더 많았다. 모두가 거기에 익숙한지 회의 분위기는 늘 밝았지만 공허했다.


연구 중간보고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본격적인 원고 작성 일정이 시작되고, 내가 맡은 부분은 이미 정리가 끝난 지 오래였다.


이교수에게 전화가 왔다.


"라박사, 3장 맡은 서박사가 아무래도 힘든가 봐요. 자기 전공 분야가 아니기도 하고.. 이거 좀 도와줄 수 있겠어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의 부탁은 늘 오케이였다. 무리가 되더라도 기꺼이 하겠다고 얘기했다. 한국 학계 인맥이 전무했던 나였고, 이번 기회에 이교수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나의 부탁을 들어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부탁이 들어왔다. 매번 들어오는 부탁은 나의 다른 일과 일상에 무리를 줄만 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일상을 기꺼이 타협하고 이교수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연구가 종료되고 보고서가 마무리되었을 때, 150여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 중 70% 이상의 페이지는 내가 쓴 것이었다. 연구 최종보고가 있던 날. 이교수가 발표를 했지만, 발표 내용과 보고서의 내용이 따로 놀았다. 보고를 듣던 담당자 미간의 주름은 내내 사라지지 않았고, 질의응답 시간의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내가 해야 했다.


5개월간의 연구 참여를 통해 내가 받은 연구비는 80만 원이었다. 연구비 전체 총액은 2000만 원이었다.


하지만 난 고마워했다. 날 불러준 것에 대해, 나에게 이교수와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에 대해.


연구가 끝난 후로도 이교수의 이런저런 부탁은 속되었다. 나는 그에게 '급하게 연락해도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으로 자리 잡는 데 성공한 것 같았다. 당시  스스로에게 붙인 별명은 'Dr. Available'이었다. 늘 연락이 닿고, 늘 뭐든 가능한 해외 박사 인력.


내가 학계에 자리를 잡는 데에 이교수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혹시 모를 희망이 날 움직였고, 이교수는 내가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았다. 서로의 필요가 만들어낸 관계였다. 한쪽이 쏟아내는 온갖 요구를 들어줌으로써 유지되는, 이상하지만 학계에서는 흔하디 흔한 관계.


나의 직함이 '박사'에서 '교수'로 바뀐 후, 이교수의 연락은 끊겼다.


지금도 아마 그의 곁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나와 같은 바람을 가진 박사 노동자가, 지속적인 교수의 노동 착취에도 밝게 웃으며 기꺼이 모든 일을 해주고 있을 것이다. 쉬이 오지 않을 미래를 꿈꾸면서 말이다.




어제 오후, 엘리베이터 앞에서 선임 교수들을 만났다. 교수들 옆엔 학생들이 한 명씩 붙어있었다. 교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조하며 미래를 꿈꾸는 학생들이다.


그들은 교수들이 해야 하는 온갖 보고서 작성과 잡무를 도맡아서 한다. 연구실 청소부터 은행업무까지. 방학기간에 오랫동안 자리를 비울 때는 심지어 집 관리까지 시킨다고 들었다. 그런 일을 해내는 것으로, 학생들은 무엇을 얻고 있는 것일까.


그저 그들이 빨리 알아차리길 바랄 뿐이다. 희망을 볼모로 그들을 붙잡고 있는 교수들은 사실 그들의 성공에 크게 관심이 없음을. 제자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는 스승이라면, 그런 일들을 절대 시키지는 않을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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