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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박 Nov 27. 2019

대학 교수에게 주인 의식은 있는가

*주의: 이 글은 라박의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작성되었으며, 모든 대학의 정년보장 교수를 일반화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닙니다.



백종원 대표가 직원의 주인 의식을 키워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질문에 '없어요'라고 명쾌하게 답을 하는 장면이 SNS에서 계속 회자되고 있는 것 같다. 우연히 아래 짤을 보고, 흥미로워서 관련된 글들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검색해보다가 '직원에게 주인의식을 기대하는 건 종신 계약이 있던 시절에나 가능한 이야기다'라는 댓글을 보았다.


정말 종신계약을 한 직원은 회사에 대해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을 할까?


https://images.app.goo.gl/1SgC2V7zXMufgXsN7


그나마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중인 교수사회는 적어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교수 사회에서 '종신 계약직'이라 할 수 있는 정년 보장 교수들에게서 학교나 학과에 대한 주인의식을 느낀 경우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년보장이 불가능한 계약으로 임용된 '비정년트랙' 교수들에 비한다면 정년 보장을 받은 교수들이 좀 더 큰 그림을 보며 학교와 학과의 발전에 대해 보탬이 되는 방향을 고민하는 것이 여러모로 자연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최근 정년 승진을 한 선배 교수들을 가까이 경험해 본 바로는 교수들에게 정년 승진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보장'쯤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많은 경우, 정년 보장을 받은 이후부터 교수들은 학과나 학교 행정과 관련된 일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는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후배 교수들이 알아서 아무것도 맡기지 않는다. 보직 교수가 아닐 경우에는 수업시간이 아니면 학교에서 얼굴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학과에서 작성해야 하는 대부분의 보고서 작업, 사업 계획서 작성, 기타 학과 행정 관련 일들 역시 비정년트랙의 교수, 또는 아직 승진심사가 많이 남은 정년트랙 조교수의 몫이다.


연차가 높은 정년 보장 교수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방대의 경우 정년트랙 교수들은 해당 지역 내에 거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학교들이 많다. 하지만 그 규칙은 그저 규칙일 뿐. 많은 교수들은 수업을 월-목으로 몰아놓고, 목요일 저녁이면 가족들이 있는 서울로 돌아간다. 정년보장 교수들 중에는 1억 이상의 연봉을 받는 이들도 적지 않은데, 그들이 학교에서 하는 실질적 업무는 강의뿐이다. 그리고 그 중 많은 강의는 매년 거의 동일하다. 같은 강의안으로 10년, 20년을 버티는 분도 봤다. 학생들의 강의 평가가 좀 나빠도 상관없다. 신경 쓰지 않으면 그뿐이니.


비정년트랙 교수들의 상황은 다르다. 최소한의 강의평가점수를 유지할 의무가 있다. 특히 나와 같은 강의중점교수들은 강의평가를 잘 못 받을 경우 재임용에 타격을 입는다. 대학의 조직 구조는 불안한 지위에 있는 교수들일수록 강의 준비는 물론, 학생 상담이나 취업에 더욱 열을 올릴 수밖에 없도록 종용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 본부에서 중요한 보고서 작업이나 사업 계획서 작업이 필요할 때 동원하려는 교수들은 70% 이상이 비정년트랙 교원으로 채워진다. '젊은 교수들의 신선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명목 아래, 길어야 2-3년짜리 연봉 계약으로 일하고 있는 비정년트랙 교수들에게 학교의 미래상과 혁신 사업 등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게 한다. 종신계약에 성공한, 실질적으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할 정년보장 교수들은 그 자리에 없다. 그 빈자리를 채워 학교의 청사진을 열심히 그리는 비정년 교수들은 그 청사진 속에 정작 자신이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어쩌면 정년 교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또는 계속해서 재임용 심사에 성공할지 모른다는 희망을 주인의식으로 가장할 뿐이다.


대학교는 모든 교수들이 주인의식을 갖기를 원한다. 학교와 학생의 발전을 열정적으로 이끌어주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주인의식을 갖고 싶은 이들에겐 주인의식이 허락되지 않고, 주인의식을 가져야 할 이들은 그 의무를 아주 쉽게 무시할 수 있다. 신기하게도 대학이란 조직은 이대로도 별일없이, 아주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


모두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을 꿈꾸는 시스템. 그 안에서 정말 미래의 인재를 키워낼 수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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