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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박 Dec 24. 2019

선생님, 여기 내년에도 계시나요?

<블랙독>의 기간제 교사와 비정년트랙 교수

https://images.app.goo.gl/QHyPtHRtcxxVkGiX7


학기가 끝났다. 성적처리와 기타 행정 서류 작업, 보고서 마무리 작업 등등으로 정신없는 몇 주였다. 아직 많은 작업이 남았지만, 나를 위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조금 낼 수 있게 되었다.


올해는 이곳에 머문 시간들 중 학생들로부터 가장 많은 위로와 응원을 받았던 것 같다. 불쑥 내민 편지와 초콜릿 한 조각에 하루 종일 웃은 날도 있었고. 중간 강의 평가 의견란에 칭찬과 감사의 메시지가 가득 담겨 있는 것을 하나하나 읽어보며 감격한 날도 있었다. 종강하던 날, 한 학기 수업에 정말 감사드린다는 전화를 해준 학생도 있었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학생들의 사랑과 응원은 달콤하지만, 한편으로는 공허하다. 그들을 계속 볼 수 있을지 여부에 확신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클 것이다.


어제 새벽. 아이를 재우고 왠지 잠이 오지 않아 최근에 추천받은 드라마 <블랙독>을 연달아 보았다. 2화에서 한 학부모는 입시상담을 하러 학교에 왔다가 기간제 교사 고하늘(배우 서현진)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선생님, 여기 내년에도 계시나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는 주인공과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들.


그녀는 이곳의 나였다. 기간제 교사와 비정년트랙 교수는 같은 존재였다. '교사'라는 이름으로 담임까지 맡으며 모든 일을 도맡아 하지만 당장 내년이 완전히 보장되지 않는 기간제 교사. '전임 교원'의 이름으로 정년트랙 교수들보다 훨씬 더 많은 학사 업무를 떠맡지만 당장 내년이 보장되지 않는 비정년트랙 교수.


학생이나 학부모는 교사를 볼 때 정교사인지 기간제 교사인지 구분할 수 없다. 대학생들도 교수를 볼 때 비정년트랙 교수인지 정년트랙 교수인지를 구분하기 어렵다.


매 순간 스스로의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는 것은 교사나 교수 자신이다. 겉으로는 정교사인 것처럼 보이고, 실제 업무도 비슷하지만 사실상 기간제 교사라는 것, 정년트랙 교수인양 학생들에게 받아들여지지만 사실상 비정년트랙 교수이고, 언제 떠나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 상기될 때마다 마음이 헤집어진다.


기간제 교사와 비정년트랙 교수들을 지속적으로 열심히 일하게 하는 원동력에는 정교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또는 정년교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고문이다. 열심히 하면 보상이 돌아올 것이라는 허약한 희망.


다행히 나의 현실 속에는 그런 질문을 대놓고 하는 이들은 없다. 대신 난 그 질문을 스스로 계속 던지고 있다. "내가 내년에도 이 곳에 있을까?" 오늘도 연구실 책장을 보면서 생각한다. 떠나게 되면 책들은 어떻게 치워야 할까.


"정교사, 어떻게 하면 됩니까?"

<블랙독> 4화 예고의 마지막 대사다.


나도 묻고 싶다.


"정년트랙 교수, 어떻게 하면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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