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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박 Jul 31. 2020

여성교수 할당제로 성평등 해질까

국립대 여성교수 비율 할당제 논란을 보며


https://images.app.goo.gl/aRXPGPPK1g7cfp8n9

임용 시즌이라 최근 들어 자주 들르는 모 교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국립대 여성교수 비율 할당제와 관련한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 것을 보았다. (최근 교육부는 교육공무원임용령 개정안을 통해 2030년까지 국립대 전체 대학 교원의 특정 성별 비율이 75%를 넘지 못하도록 구체적인 연도별 목표비율을 정했다)




해당 커뮤니티 안에서 읽은 국립대 여성교수 할당제에 대한 여러 주장들은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1. 윗세대의 성차별 관행이 빚어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젊은 남성 연구자들이 역차별을 당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기에 불합리하다.

2. 제도의 불합리성은 다소 있지만 교수사회의 양성평등을 억지로라도 추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

3. 여성 할당제는 임용된 여성 학자들이 해당 제도 때문에 임용되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결국 여성 학자들의 지위를 더욱 약화시킬 것이다.




세 개의 주장 중 굳이 내 생각과 비슷한 것을 고르라면 3번인 것 같다. 여성 교수 비율이 낮은 것은 분명 성차별의 근원이 되는 사회/문화적 편견과 차별 때문이지만, 이와 같은 제도가 정작 여성 교수들의 삶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상의 임용 시나리오를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해볼까 한다. 단편적인 개인의 상상이니 그냥 참고만 해주시길 바란다.


(1) 여성할당제도가 있는 환경에서 남녀 경쟁이 있었고 1순위로 임용된 여성의 경우


X 국립대학의 교수 임용에 지원한 여성 지원자 A는 연구실적과 교육경력, 기타 경력, 학부와 석/박사 학부 순위 등을 종합하는 1차 서류심사 과정부터 2차 공개강의까지 가장 높은 점수로 임용후보 1순위가 되었고, 그 해 해당 국립대에 임용된다.


그런데 마침, 그 시기는 전국 국립대의 '여성교수 할당제'가 적극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때다.


A는 해당 제도와 상관없이 전체 지원자 중 1순위였지만, 일을 시작하는 순간 '운 좋게 여성이어서 뽑혔다'는 시선에 둘러싸인다. 이 시선은 학교뿐만 아니라 학교 사정을 전혀 모르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서도 마찬가지다.


A는 원래도 1순위였던 자신에 대해 '여자여서 뽑혔다'는 시선이 싫고 자존심이 상한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자신이 뛰어나고 일을 잘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증명하기 위해 무리하게 일을 하기 시작한다.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학교 안에서의 소소한 인간관계 만들기의 여유는 찾기 어려워진다.


A는 결혼을 했고 아이도 있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원래도 필요했지만, 일이 많아지면서 집안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에 신경을 쓰는 것이 어려워진다.


몇 년이 지난 후, 다행히 그녀는 주위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았고, 학교나 외부에서 맡는 일과 책임질 것들은 많아진다. 그와 동시에 A는 가족으로부터, 친구들로부터, 그리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이 멀어져 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한편으로는 '독한' 사람, 한편으로는 일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어떻게든 그 바닥에서 버티려 아등바등 살아간다. 무엇을 위해서? 스스로가 실력을 갖춘 연구자이자 교육자임을 인정받기 위해서다.


인정은 누가 해주는 것인가?

여성 교원들이 '운이 좋아서' 뽑혔다고 평가했던,
오래도록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져 온 '남성 중심 문화'를 계속 유지하는 교수 사회다.


(2) 여성지원자만 받는 채용공고에서 임용된 경우


Z 국립대학은 B학과의 교수 채용 공고를 내면서 "여성지원자에 한해서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을 명시했다.

여성만 지원할 수 있었기에, 여성 지원자들만 서류를 냈다.


지원자 C는 여성이고, 해당 전공 박사로 지속적으로 교수 임용을 준비하고 있었다. C도 위의 A와 마찬가지로, 1차 서류심사 과정부터 2차 공개강의까지 가장 높은 점수로 임용후보 1순위가 되었고, 그 해 해당 국립대에 임용된다.


C의 연구실적과 교육경력, 기타 스펙이 객관적으로 어떤 수준인지에 대한 논의는 부재하다. C는 처음부터 '여성이어서' 지원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이었고, '여성들과만' 경쟁해서 이긴 1등 '여성'이다.


지원 순간부터 '여성'이었던 C가 해당 학교와 학과에서 수행해야 하는 첫 번째 역할도 '여성'이다. 여성으로 태어난 그녀의 몸이 해당 학교의 여성교원 비율을 올려주는데 가장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가 나쁘지 않은 연구 실력과 강의 실력을 갖추었다는 것은 그 후에 평가될 일이다.


좋은 실력을 갖추었다면 '다행'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어쨌든 '여성'이 뽑힘으로써 학교의 여성교원 할당 의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C는 어떤 생활을 하게 될까?


Z국립대의 경우 처음부터 대놓고 여성을 뽑겠다고 했기 때문에 A에 비해 C 교수는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받아야 한다는 압박이 다소 덜할 것이다. 반면, 연구자로서의 자신에 대한 무관심이나 기대 없음의 분위기와 싸워내야 할 확률이 높다. 이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 C는 A와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여성'일 뿐만 아니라, 동료 연구자와 교수로서 손색없는 인재임을  증명해내고 싶을 것이다.


그 뒤엔 A와 같은 수순을 밟게 될 확률이 높다.

무리해서 일을 하고, 인정받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인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된다.


'증명'에 어느 정도 성공한다면, C는 행복해질까?

아마도  '여자지만 인간관계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또다시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여성교원 비율 할당제도가 없는 현재의 상황과 위의 가상의 상황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도 그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임용이 되었기 때문에, '여자라서 뽑혔다'는 시선은 없는 것이 그나마 낫다면 나은 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임용된 이후 '여성이기 때문에' 증명해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은 동일하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여교수지만 까칠하지 않다.

- 여교수지만 주말이나 야간에도 급한 업무를 수월히 수행한다.

- 여교수지만 이기적이지 않다.

- 여교수지만 일이 우선이다. (6시 땡 하고 집에 가지 않는다)

- 여교수지만 술자리를 피하지 않는다.


여기에 '결혼' 요소가 더해지면 이야기는 좀 더 복잡해질 것이다.


특히 아이까지 있는 여성 교수라면, 일을 열심히 잘해도 문제 (가정에 소홀), 가정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도 문제(학과 일에 소홀)라는 양쪽 시선에 가로막힌다. (흥미롭게도 동료 여교수가 가정에 소홀해보이는 것에 대해 남성 동료 교수들이 문제를 지적하는 일은 매우 흔하게 일어난다)


많은 경우 워킹맘 교수들은 양쪽의 시선에 대해 '그렇지 않음'을 증명해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압박을 주는 주체는 결코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분명 거기에 있다.




할당 제도가 있든 없든, 여성 교수의 입장에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는 게 여성이며 교수인 나의 생각이다.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는 가능성도 크다. 해당 제도가 갖고 있는 가장 나쁜 점은 결과적으로 여성교수의 규모를 키우는 데 성공했다는 것만으로, 교수 사회가 '성평등' 해졌다고 홍보될 수 있는 가능성인 것 같다. 또는, 전체의 25%까지만 여성을 뽑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교수 시장으로 진입하고자 하는 젊은 학자들의 경쟁에서 여성 비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결정권과 책임이 있는 보직교수나 임원 등의 그룹에 대한 성비를 먼저 조율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결정권이 있는 그룹의 성비가 자연스레 균형이 맞추어진다면 교수사회 전체의 문화도 여성과 남성의 특정적 문화들이 자연스레 고루 섞이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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