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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박 Dec 16. 2020

논문 좀 같이 낼까요?

교신저자는 누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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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학술 논문에 대한 여러 논란들이 뉴스거리가 되곤 한다. 한동안 가장 흔한 문제는 표절이었는데, 이 부분은 오랜 시간 동안 문제제기가 되어 오면서 나름대로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었던 건 교수들이 자녀의 이름을 논문 공저자로 넣어 대학 입시를 위한 허위 경력을 만들어주는 암묵적 관행이었다. 선거기간 동안 유명 정치인의 자녀가 대학 교수 논문의 공동 저자, 심지어 제1저자, 교신저자로 이름을 올린 일들이 알려졌었다. 그 이후 많은 대학교수들이 자녀들의 이름을 자신의 논문 공저자로 올렸다는 사실이 덩달아 밝혀지며 큰 파문이 일기도 했다.


물론 이런 일은 뉴스 밖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어느 학회를 가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C교수가 어느 날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고등학교 딸아이의 이름을 국제전문학술지 교신저자로 올린 것이 발각되어 모든 외부 활동을 중단했다고 한다. C교수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정년트랙 정교수 자리를 잘 유지하고 있다. 예전만큼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자녀들의 입시 성공을 위해 자신의 논문에 이름을 끼워 넣는 일은 그래도 양심적이다. 타인이 쓴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달라는 요청보다는 말이다.


며칠 전. 막 퇴근을 하려는 찰나에 H교수에게 전화가 왔다. 통화가 되는지 문자로 확인하는 절차를 생략하는 그는 학과의 1번 교수다. (교수들에게는 번호 붙이기 문화가 있다. 법칙은 간단하다. 가장 먼저 학과에 임용된 순서대로 번호가 붙는다. 전통성 있는 학과이거나 여러 학과의 통폐합으로 만들어진 학과일 경우, 1번 교수는 퇴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노교수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학과라면 1번 교수라 해도 나이 차가 얼마 나지 않을 때가 많다)


1번 교수라기엔 비교적 젊은 편인 아직 정교수 승진을 하지 못했다.


"네 교수님."

"라교수님, 아직 퇴근 안 하셨죠? 우리 저녁이나 같이 하면 어떨까요? 할 말도 있고."


코로나로 식사 모임을 자제하라는 정부의 권고가 H교수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주변 교수들과 사업비 카드로 회식을 벌이고 있다는 걸 익히 알고 있다.


"제가 오늘 집에 일이 있어 일찍 들어가 봐야 해서요. 무슨 일이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 그럼 제가 잠깐 연구실로 가겠습니다."


저녁 7시 20분.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온 H 교수의 손에는 커피가 들려있었다. 난 6시 이후로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교수님 많이 바쁘시죠?"

"저야 뭐 늘 똑같죠. 무슨 일이세요?"

"네.. 뭐 다른 게 아니고요."


늘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H교수답지 않게 주저하는 모습이 불안했다. 겸연쩍은 미소를 보이며 그가 쏟아낸 말은 너무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라교수. 라교수 쪽 분야는 논문을 쉽게 쓰잖아요? 1년에도 보면 여러 편 내시던데.. 그렇죠?"

"......"

"제가 라교수 논문에 교신저자로 들어가면 어떤가 해서 말입니다. 딱히 피해 주는 일도 아니고 해서.. 부탁 좀 할게요. 라교수가 제1저자 하고 제가 교신하면 되지 않습니까?"


정적이 흘렀다.


이런 요구를 교수가 대학원생에게 한다는 말은 수없이 들었지만, 교수가 교수에게, 공동작업을 하지 않은 연구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달라는 이야기를 버젓이 하다니.


"..... 죄송합니다 교수님. 연구에 같이 참여를 안 하셨고, 전공이 달라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래도 같은 학과 교순데, 교신저자로 올라가는 거 크게 상관없지 않나요?"

"죄송합니다. 힘들 것 같습니다."

"허허허..... 잘 알겠습니다."


멋쩍은 미소를 짓던 H교수는 금세 정색을 했고, 약속이 있다며 연구실을 급히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자니 왠지 모를 수치심에 몸이 떨려왔다.


그 후 H교수는 학과의 다른 교수들에게 비슷한 부탁을 한 모양이었고, 모두에게 (다행히) 거절을 당한 것 같았다. 학과 회의가 열릴 때마다 일그러져 있는 H교수의 표정이 그 사실을 말해주었다.


학술지 논문에는 제1저자, 공동저자, 교신저자라는 개념이 있다. 혼자 연구를 하고 논문을 다 써서 제출할 때에는 제1저자(단독)이자 교신저자로 논문을 게재하게 된다. 여러 명이 함께 쓰게 된다면, 그 안에서 기여도에 따라 이름의 순서를 정하게 되는데, 보통 제일 먼저 쓰인 이름이 제1저자, 그다음에 적힌 이름들은 '공동저자'가 된다. 교신저자는 의미상으로는 학술지 편집자와 연락을 취하는 저자(corresponding author)이기에, 연구의 책임자 이름이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어떤 저자로 이름을 올렸느냐가 논문 게재 실적에 대한 점수를 결정하게 되는데, 제1저자이자 교신저자로 혼자 단독 논문을 냈을 때에는 논문 실적 점수 전체를 자신이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학진 등재지 논문 1편당 업적 점수 100점을 준다면, 단독 저자일 경우 100점을 다 받을 수 있다.


공동저자가 여러 명인 논문인 경우, 제1저자와 공동저자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실적 점수를 100/n 해서 받아가게 되고, 교신저자로 이름을 올린 사람은 100점을 받게 된다.(산정기준은 학교/기관마다 다를 수 있다) 만약 두 사람이  공동연구를 했고, A를 제1저자, B를 교신저자로 올리게 되면, A와 B 둘 다 각각 100점을 받게 된다.


이런 시스템 때문에 대학원생들의 논문에 교수의 이름을 교신저자로 올리도록 강요하고, 학생들의 성과물을 교수의 업적으로 평가받게 하는 관행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선배 교수가 후배 교수에게 무턱대고 교신저자 자리를 요구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전혀 모르는 분야의 논문에 '교신저자'로 이름을 넣어달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그의 표정과 뻔뻔한 입 모양새가 쉬이 잊히지 않는다. 그날은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 처음으로 부끄럽게 느껴진 날이기도 했다.


그는 교신저자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는 있는 것일까. 


'쉽게' 쓴다는 논문이나 쓰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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