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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박 Sep 28. 2021

최소 1명의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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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과 비교하면 요즘 들어 부쩍 이런저런 섭외 요청들이 많이 들어오는 것 같다. 주로 포럼, 심사, 자문, 세미나 등의 자리에서 '교수'라는 타이틀을 제공하며 어떤 결정에 권위를 더해주는 일들이다.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 상황은 크게 다름없음에도 체감할 만큼의 변화가 느껴지는 것은 많은 자리가 여성의 비율을 신경 쓰기 시작했기 때문인 것 같다.


참석했던 한 회의에서 우연히 자문위원 구성 규정을 본 적이 있는데 '최소한 1명의 여성을 포함할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최소 1명인 여성'의 자리를 내가 채우게 된 것을 알고 잠깐 멍해졌었다. 


난 여성이어서 그 자리에 불린 것일까, 정말 전문성을 인정받아 앉게 된 것일까... 그 이후로 여성이 나 혼자인 회의를 참석할 때마다 복잡한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동료 남교수와 차를 마시다 들은 이야기.


자신이 속한 한 위원회에서 유일한 여교수 멤버가 그만두게 되면서 나머지 남교수들 간에 토론이 벌어졌다고 한다. 토론의 주제는 후임 여교수로 누굴 섭외할 것인가였는데, 가장 많이 거론된 '덕목'은 분야 전문성이 아닌 '성격'이었다. 직설을 하거나 무섭거나(?), 사람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여교수 보다 나긋나긋하고 조용하고 싸우지 않는 이들을 선호한다고 입을 모았고, 실제로 그렇게 후임이 결정되었단다. 그렇게 섭외된 여교수는 자신이 그런 이유로 섭외된 것을 알면 어떤 기분일까.




어제 오후, 난 또다시 어딘가에서 10명 중 '최소 1명의 여성'이 되었다. 90%가 남성으로 채워진 중앙 테이블 옆의 책상에 앉아 회의 진행을 돕고 음료를 나눠주는 직원들은 100% 여성이었다. 그렇다고 중앙 테이블에 앉는데 성공한 '최소 1명의 여성'도 그 자리의 중심이 된 것은 아니었다. 회의 자료를 제대로 읽고 오지 않았다고 자신감 있게 말하며 시답잖은 농담이나 계속해서 늘어놓는 시니어 남교수가 분위기를 주도하는 가운데, 의미도 결론도 없는 회의는 끝나버렸다.


최소 1명의 여성이 된 것에 감사하며 그들이 원하는 온순한 여성 캐릭터를 맞춰주면, 언젠가 '최소 2명의 여성', '최소 3명의 여성', 나아가 '최소 50%의 여성'의 규정을 만드는 길에 일조할 수 있는 걸까?


더 많은 기회를 열기 위해 난 이 자리에서 순응해야 하는가, 불편한 누군가가 되어야 하는가. 


정말 쉽지 않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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