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라박 Oct 15. 2021

당신은 누구십니까

학계 호칭의 법칙


https://images.app.goo.gl/fESzQtGLgaCrRVxz6

첫 직장 생활을 했던 때,  누군가 날 '○○씨'로 불러주는 게 참 좋았다.  취준생이라고 대놓고 무시당하던 시절이 드디어 끝나고 하나의 인격으로 비로소 존중받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호칭을 한 원로교수와의 통화에서 참 오랜만에 듣게 되었다. 한때 존중의 호칭이었던 '○○씨'를 듣는 순간, 어이러니하게도 깊은 모멸감을 느꼈다.


학계에 속한 이들끼리 호칭 붙이는 법에는 묘한 규칙이 있다. 나 역시 다른 곳에서 일할 땐 전혀 몰랐던 것이기도 하다.


박사를 따지 않았거나 약력을 잘 몰라서 어떻게 불러야 할지 애매할 때는 '선생님'.

박사 취득자에겐 '박사님'.

교수가 된 이후로는 '교수님'.

공공기관에서 한 번이라도 직책을 맡았다면 전직이더라도 '장관님', '원장님', '실장님', '대표님' 등으로 부른다.


학계에서 '○○씨'라는 호칭은 아는 교수의 제자들을 존중하며 부를 때, 또는 업계 실무자들 중에서도 사원급 정도 되는 이들에게 붙이는 것 같다. 사실상 거의 쓰지 않는다는 얘기다.


프레쉬 박사로 불리던 시절에 처음 만났던, 당시에도 원로교수였던 그는 날 여전히 '○○씨'라고 부름으로써 찍어 내렸다. 네가 아무리 어디서 교수라 불리고 있어도, 자신에겐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기도 할 테다.


재밌는 건 몇 주 전 그가 부탁 차 전화를 했을 때에는 날 '○○교수님'이라고 부르며 통화를 시작했었다는 것. 그때 그 호칭의 발음이 참 어색하다 싶었는데, 부탁을 위해 억지로 쥐어짜냈양이다. ○○씨라고 부를 땐 무척이나 자연스러웠으니.


뭐라고 부르든지 내버려두자 하다가도, 그들이 그토록 신경 쓰는 지점이기에 무척 거슬린다. 양희은 선생님의 책 제목처럼, '그러라 그래~' 하며 쿨하게 넘겨버리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되는 걸 보면 아직 수양이 덜 된 것 같다.


그저 최소한의 예의를 바랄 뿐이다. 같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공유해야 할 수준의 예의 말이다.

이전 19화 양말과 성별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교수엄마 라박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