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에세이, '그 노래' 첫 번째 이야기
그는 젊은 날의 자신을 회상한다.
날카롭게 돋은 가시를 걷어내고
'어른'이 빨리 되고 싶다고.
그때가 되면 세상 끝
어디로 떠나고 싶었다고.
그리고 지금 어른이 된
한 명의 음악가는 이렇게 얘기한다.
* 고무라면의 음악 에세이. '그 노래', 그 첫 번째 글입니다.
** 지극히 개인적 취향을 바탕으로 사랑하는 뮤지션의 이야기, 그리고 음악에 대한 말랑말랑한 감상과 감성이 담긴 그런 에세이를 쓰고자 합니다(다시 말하면, 노래에 관한 것이라면 그 어떤 거라도 쓰겠다는 방향성 상실 선언입니다).
2012년의 봄, 4월의 어느 아름다운 주말.
군복을 입은 건장하지만 칙칙한 세 명의 사내들은 원주의 한 영화관에 들어선다. 모자와 가슴팍에는 작대기 네 개가 걸려들 있다.
... (중략) ...
그랬다. 세 명의 군인들은 아름답지만 가슴 저린 첫사랑 영화, 「건축학개론」을 마음으로 느끼고, (눈물까지 날 정도로) 감동받았던 것이다.
이 글의 도입을 보고 기시감(데자뷰)을 느꼈다면, 당신은 기억력이 뛰어난 독자이다. 윗글은 나의 에세이, 「나의 첫사랑에게」 의 도입부다. 동시에 고무라면의 음악에세이 [그 노래] 의 도입부이기도 하다. 노래와 음악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해놓고, 처음부터 왜 이런 뻘짓을 하느라 시간과 힘을 낭비하느냐고 묻는 독자가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한 나의 궁색한 변명은,
첫째. [그 노래] 란 꼭지는,
‘음악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이라면 아무것이라도 쓸 수 있는 공간’
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적어도 음악에 관해서만큼은 딱딱하게 다가가기 싫다는 점.
둘째, 위 사건이 가수 김동률의 노래를 좋아하는 한 사람과 뮤지션 김동률을 존경하는 진정한 팬을 나누는 분기점이 된 사건이었다는 점.
그리고 셋째, 지금 이 글은 술을 마시고 쓰고 있기에, 내 정신이 혼미하다는 점
(즉, 취중진담이다).
쯤 되겠다. 그럼,
고무라면의 (꼴에) 음악 에세이의 문을 살며시 열어보자.
우리나라 대중 음악계에서 장인으로 손꼽히는 가수 김동률. 아니, 나는 팬심을 더해 당연 독보적 뮤지션이라 호칭하고 싶다. 가수라는 타이틀은 그를 포괄하는 적절한 단어가 아닌 듯하다. 음악에 대한 열정, 한 땀 한 땀 완벽함을 추구하는 음악적 성향,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다룰 줄 아는 대중음악가, 대형 명품 콘서트를 직접 진두지휘하는 카리스마. 가히 마에스트로라 불릴 만한 한국의 몇 안 되는 뮤지션이라 하겠다.
나는 군인이었던 시절,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고, 휴가를 나와 전람회(93년 대학가요제 대상 및 특별상을 수상한 김동률과 그의 친구 서동욱의 듀오) 앨범 전집을 구매했다. 영화를 본 이는 기억할 것이다. 서울의 어느 나직한 건물 옥상에서 수지가 건넨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왔던 아련한 음악을.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여자 주인공과 제주도의 아름다운 배경으로 이 노래가 다시 흘러나온다. '기억의 습작 '. 첫사랑 영화로서의 「건축학개론」 1등 공신이자, 1994년 전람회의 1집 타이틀곡. 바로 김동률의 공식적인 뮤지션으로서의 시작을 알린 노래다.
24년이 지난 2018년 9월, 이미 거장이 된 그가 ‘두 번째’ 디지털 싱글을 발매했다. 제목은 '노래 '. 전람회 1집 앨범에서 공동 프로듀서였던 고(故) 신해철과 21세의 풋풋한 청년 김동률이 함께 부른 '세상의 문 앞에서' 라는 곡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대학가요제 선배이자 전람회 1집 프로듀서였던 고(故) 신해철은 어린 후배 가수에게 거친 세상에서, 너의 노래를 부르며 꿈꾸며 살아라 라 축복했고 김동률은 내가 택한 길을 후회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리고 24년 후, 김동률은 음악인의 삶을 정리한 자전적 노래인 ' 노래 '를 세상에 내놓는다.
끝없이 날이 서 있던
어릴 적 나의 소원은
내 몸에 돋은 가시들 털어내고
뭐든 다 괜찮아지는
어른이 빨리 되는 것.
모든 걸 안을 수 있고
혼자도 그럭저럭 괜찮은
그런 나이가 되면
불쑥 짐을 꾸려
세상 끝 어디로 떠나려 했지.
사람을 떠나보내고
시간을 떠나보내고
그렇게 걷다 보면 언젠가
홀가분해질 줄 알았네.
그래도 되는 나이가
어느덧 훌쩍 지나고.
웬만한 일엔 꿈쩍도
않을 수 있게 돼버렸지만
무난한 하루의 끝에
문득 그리워진 뾰족했던 나
그 반짝임이
사람을 떠나보내고
시간을 떠나보내고
그렇게 걷다 보니 이제야
나를 마주 보게 되었네.
울어 본 적이 언젠가
분노한 적이 언제였었던가,
살아 있다는 느낌에
벅차올랐던 게 언젠가.
둥글게 되지 말라고
울퉁불퉁했던
나를 사랑했던 너만큼이나
어쩌면 나도 그랬을까.
울어 본 적이 언젠가,
분노한 적이 언젠가.
살아 있다는 느낌 가득히
벅차올랐던 게 언젠가.
내 안의 움찔거리는
그게 뭔지는 몰라도, 적어도
더 이상 삼키지 않고
악을 쓰듯 노랠 부른다.
그는 젊은 날의 자신을 회상한다. 날카롭게 돋은 가시를 걷어내고 '어른' 이 빨리 되고 싶었다고. 그때가 되면 세상 끝 어디로 떠나고 싶었다고. 그리고 지금 어른이 된 한 명의 음악가는 이렇게 얘기한다.
" 이미 어른의 나이는 훌쩍 지났는데, 그때의 내가 문득 그리울 때가 있다. 순수했고, 겁 없었던 나. 뾰족하게 날이 서 있었지만 동시에 반짝 빛나던 그 시절의 나. 감정에 충실했던 한 젊은이는 어디 갔고, 살아있음을 느꼈던 게 언제였던가.
다시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때론 어른이란 굴레를 벗고, 나의 살아있는 감정을 묵히지 않고, 목 놓아 노래를 부르련다. 어린 시절 그때처럼. "
평생 음악인으로 살고 싶다 했던 그의 인터뷰가 아직 유효하다면, 김동률의 음악인생은 이제 막 반 언저리를 지났을 것이다. 이 곡으로 그는 본인의 음악 인생의 한 꼭지를 정리했다. 그렇기에 앞으로 있을 마에스트로의 또 다른 새로운 행보가 기대될 수밖에.
* [그 노래] 두 번째 이야기는, 뮤지션 김동률의 첫 디지털 싱글 ' 그럴 수밖에 '. 첫 에세이다 보니 이것저것 잡소리들이 많았는데, 두 번째 에세이부터는 인간 김동률과 그의 음악 세계를 (나름) 깊이 있게 들여다보도록 하겠다.
** 무념무상, 취중진담을 지향하는 [그 노래] 시리즈,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 이 글의 도입부는 최민석 작가가 YES24에 연재했던 영화 이야기 [영사기]의 한 에세이를 모티브로 작성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3pnrg2gBmM
https://www.youtube.com/watch?v=3OhLI2j-Gns
https://www.youtube.com/watch?v=51yavAtGM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