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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지공원의 외로운 할머니들

by 이브런

오후 2시 쌈지공원 벤치 곳곳에서 할머니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조금 이른 시간인지 놀이기구 있는 곳에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산책하는 아버지 따라 이곳에 들르다 보니 할머니들이 반갑게 수인사를 한다. 아버지는 이곳에서 허리돌리기와 지압운동기구 등을 잠깐 이용하고 있다. 아버지를 곁에서 지켜보는 내게 80대 중반의 할머니가 다가와 넌지시 말을 건넨다. "저분은 누구신지?" "연세가 어떻게?" "두 분은 어떤 사이?" 등등 느닷없는 질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부자지간'이라 답했다.


할머니는 90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산책하는 게 무척 궁금하고 신기했던 모양이다. 답변에 체증이 가셨다는 표정의 할머니는 우리가 자리를 뜨자 ”착한 일을 해 고맙다"라며 인사했다. 함께 있던 다른 할머니들도 내게 “수고한다”며 손짓했다. 실로 오랜만에 듣는 덕담이지만 나는 노쇠한 아버지가 운동을 겸해 동네 한 바퀴 도는 걸 함께 하는 것뿐인데 할머니들의 격려와 위로가 과분하기만 했다.


할머니들과 친숙해지자 어제는 이런저런 오가는 대화가 많았다. “할아버지가 연세에 비해 매우 정정하시다” “요즘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자식이 있다니 놀랍다” “이렇게 어르신을 매일 운동시키는 게 쉽지 않다” 등등 칭찬을 쏟아냈다. 내가 민망하니 그만하시라 해도 할머니들의 찬사는 계속됐다. 그러면서 할머니들은 묻지도 않은 집안 이야기도 들려줬다. 보행기를 앞세워 매일 쌈지공원에 오는 86세 할머니는 "자식들이 여럿 있어도 뭔 일이 바쁜지 얼굴 본 지 오래됐다 “며 푸념했다.


또 다른 할머니는 ”서로 오가는 것이 불편하다. 한때 같이 살았는데 자식들한테 눈치 보이고 괄시받기 싫어 혼자 살고 있다 “고 말했다. 병원 가기 힘들다는 할머니는 벤치에 아픈 두 다리를 올려놓고 "벌써 두 달째 한방병원을 다녀도 이렇게 쑤신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이 할머니들은 혼자 사는 불편함보다는 노년의 쓸쓸한 삶을 호소하고 있었다.


소일 삼아 공원에 모이는 80대 할머니들은 마치 우리를 매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우리가 도착하면 반가움을 감추지 않는다. 할머니들은 특히 나를 자신의 자식인양 허물없이 대하면서 자신들이 소외되거나 불쌍한 신세라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듣기에 다소 거북하지만 할머니들은 헤어져 살면서 자식들로부터 버림받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나 또한 좀 더 나이 들었을 때 곁에 함께 할 가족이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현실은 더 심각하다. 혼자 사는 노인들은 병원에 함께 가거나 함께 산보할 가족마저 거의 없는 외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자리를 가족 아닌 간병인과 봉사자 등 '타인들'이 대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더 낫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쌈지공원의 외로운 할머니들은 부모의 인생과 나의 입장 나아가 자녀세대의 미래를 투영하고 있었다.


아버지 세대와 뒤를 잇는 우리 세대가 함께한 '대가족' 시절이 있었다. 그땐 서로 지지고 볶더라도 외롭지 않았다. 부모님과 가족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절로 배웠다. 이제는 근황을 묻고 서로 오가며 지내는 가족들도 드물다니 왠지 서글프다. 부모들은 떨어져 살더라도 자식들을 생각하고 늘 기다리지만 영원히 기다려주지 않는 법이다. 쌈지공원 할머니들이 내게 보여준 여러 반응들은 자식과 가족들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을 에둘러 표현한 것일 터, 연로한 부모가 계시다면 자식들이 지금이라도 안부를 챙기고 시간을 내 찾아보길 권하고 싶다.


아버지가 쇠약하고 힘들어지자 나와 산책하는 시간은 되레 많아졌다.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이 귀하고 소중하다. 집에 도착해 귀가 어두운 아버지가 내게 묻는다. "아범, 공원에서 할머니들과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했어?” "네, 아버지 덕분에 오늘 '효자' 소리 들었습니다."(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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