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또 그 가족과 함께 그리는 크리스마스
‘별'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짧게 깎은 머리에는 회백색의 수술 흉터가 선연했다. 오른쪽 어깨는 앞으로 굽었고, 팔은 안쪽으로 말려 들어갔으며 - 이 반시계 방향의 호는 꽃술처럼 더욱 꼬부라진 오른손을 품고 엉성하게 끝났다. 제대로 씻지 못해 나는 체취와 난방용 휘발유가 뒤섞인 희한한 냄새를 풍기면서, 입을 오리처럼 길게 내밀고 토라진 채 앉아 있던 별.
별을 당시 내가 일하던 컨테이너 작업실까지 끌고 온 것은 퇴역 군인 출신의 활동지원사 선생님이었다. 별은 내가 사는 강원도 소도시의 어느 구석진 마을, 그중에서도 포장도로도 전깃줄도 제대로 이어져 있지 않은 오지에 살고 있다고 했다. 심심함을 달래줄 텔레비전이나, 어둠을 밝혀줄 전등도 없이 - 옛사람들처럼 해 떨어지면 자야 하는 곳에서 젊은 별 혼자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딱해 뭔가 배울만 한 것을 찾아보기로 했다는 것이 선생님의 말이었다. 인터넷에 무작정 장애, 춘천 같은 키워드로 검색을 해 이곳, 저곳 전화를 걸고, 들리기도 하다가 - 그중 한 곳에서 내 작업실을 소개받았다고 했다. 선생님께 몇 푼 유류비도 쥐어줄 수 없는 형편의 별을 데리고, 왕복하려면 두 시간은 족히 달려야만 하는 외딴곳을 물어물어 찾아온 그 뜻을 누가 가볍게 여길 수 있을까. 별은 사고로 인해 중증 뇌병변장애를 갖게 되었고, 우반신이 마비되어 자유로운 운동이 어려웠다. 오른손잡이였던 녀석의 오른손이 굳어버린 지 오래니, 선뜻 뭔가를 가르쳐보겠다고 나선 사람이 없었다며 물끄러미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빛에 - 내 경험의 부족이나, 예견되는 난감함은 제쳐 두고 알겠다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별은 미술을 배우러 온 것이었지만, 가느다랗게 달달 떨리는 선을 두고 몇 차례 씨름을 한 끝에, 시판 학습지로 한글을 먼저 가르치기로 했다. 별은 사고 전 온전히 읽을 수 있었던 글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그래서 책은 물론이고, 광고지나 제품 포장에 짤막하게 적힌 글씨 몇 줄, 심지어 거리의 간판을 보고서도 화를 내거나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미지의 대상과 마주하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공포를 준다. 하물며 이미 알고 체득한 세계가 미지로 말끔히 지워졌음을 깨달았을 때 - 별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사고 이후 수년을 고립에 가까운 환경에서 살아온 별은, 쓰기로 글씨를 조형할 수 있을 만큼의 소근육 힘을 지니고 있지 못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의적인 동작이 가능한 왼손을 사용해야 했는데, 자음과 모음의 조합은커녕 손가락 세 마디 길이의 짧은 선조차 바로 긋기 어려워했다. 무르고 진한 미술용 연필을 써야만 겨우 식별 가능한 선이 나왔기에, 쓰기 연습 노트는 늘 검은 흑연 자국이 너저분하게 번져 있었다.
지루하고 고된, 규칙적인 기능 재활에 가까운 활동에도 별은 쉽게 싫증을 내지 않았다. 별은 작업실 뜰의 꽃과 나무에 관심을 듬뿍 주었고, 아이들이 먹는 잡다한 간식거리를 신기해하며 별미처럼 즐겼다. 눈 맞춤이나 대화 교환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던 처음과 달리, 점차 자기 생각을 전하려고 애쓰거나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려는 태도가 보였다.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질문에 응답하지 못하는 일이 잦았던 별이었지만, 만나는 사람을 분별해 기억하고 각자의 기호나 습관을 예측하기 시작한 것은 고작 서너 달이 지나고서부터였다. 별 안에 잠들어 있던 예전의 모습들이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유머러스하고,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며 - 2000년 대 초반 노래방의 이름난 넘버는 모조리 기억할 정도로 참 잘 놀고 잘 웃는 이십 대 청년.
갑작스러운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그에 수반되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일은 더욱 고통스럽다. 참 오래도록 폐쇄적인 생활을 한 별이지만, 그때조차도 곁을 지킨 손길들이 있었다. 기꺼이 무료 진료를 제공하고 틀어진 턱과 이를 교정할 방안을 찾아주신 치과 의사 선생님과 직원들, 내가 아니면 봐줄 사람이 없다는 마음으로 덥석 일을 맡았다는 활동지원사 선생님, 외로움의 시간을 견뎌온 별의 가족을 묵묵히 지켜보며 격려해 준 친지들… 별은 이웃 별과 이어져야 자리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별자리가 또 다른 별과 맞닿는다. 별보다 두 살 어리지만 엄한 드럼 선생님, 만날 때마다 꼭 커피 한 잔을 사주는 재활 시설 동료, 별의 집을 지어주고자 수년을 발로 뛴 해비타트 직원들, 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작업실 동생들… 이제 별은 무수한 별무리 속에 있다. 이 땅의 누구라도, 그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