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햇살이 든다. 사랑해야겠다.

by 글로 나아가는 이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시인, 폴발레리


언제 어디선가 들었던 문장이다. 어느 날 길에서 마주한 선선한 바람처럼, 평소엔 수백 번 지나쳐도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삶의 큰 의미'처럼 다가올 때가 있지 않은가. 자연이 주는 이유 없는 행복은 바로 그런 데서 오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인생이라는 열차가 빠르게 달려가는 순간엔 그런 행복을 느끼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가진 것들을 조금 내려놓고, 가지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마음을 잠시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면, 그런 이유 없는 행복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괜스레 그런 날이 있다. 아무런 할 일도 없는 날, 창가에 놓인 화분에 비친 햇살이 위로처럼 느껴지는 날. 어디서 오는 위로인지는 모르지만, 그 햇살이 사랑하는 사람의 곤히 잠든 모습만큼이나 포근하게 느껴진다. 마음에 약간의 빈틈이 생겨서인지, 그 사이에 겻든 햇살이 애처롭다. 누구든 사랑하고 싶게 만드는 에너지다. 이런 에너지로는 뭐를 하든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가을이 성큼성큼 발을 내딛으며 오고 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가 잊고 있는 순간에도, 계절은 온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한다. 아무리 힘든 시절도, 아무리 기쁜 시절도 결국은 지나가고 또 새로운 날들이 온다. 그렇기에 언제든 다시 시작하면 된다. 천고마비의 계절, 하늘은 높고 햇살이 따사롭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순간이다.


사랑하는 그녀가 내게 말했다. 요즘은 자신에 대한 글을 자주 쓰지 않는 것 같다고, 떠올려보니 정말 그랬던 것 같다. 한때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주 편지와 시(詩)를 썼었는데, 요 몇 년간 뜸했다. 그랬다. 그녀는 이미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아름답다. 다시금 그녀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쓰지 않은 한동안, 우리의 관계가 얼마나 더 깊어졌는지, 익어가는 저 벼들처럼 우리의 사랑도 결실을 맺을 때가 도래했는지, 지금 이 순간 내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건 무엇인지, 말이다.


햇살이 든다. 더 사랑해야겠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0화"책임은 무겁게, 인생은 가볍게" 의식이 이끄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