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이스터의 '편안함의 습격'을 읽고
"여기, 계단과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당신은 무엇을 이용하겠는가.
실험 결과, 단 2%의 사람만이 계단을 오른다.
(중략)
계단이 경이로운 효율성을 자랑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에스컬레이터가 출현한 마당에 계단을 오르내릴 까닭은 무엇일까? 힘들게 얻은 살코기 한 점과 못생긴 감자 몇 알이 1년 중 가장 훌륭한 식사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설탕과 소금과 시럽의 완벽함을 제공하는 식당이 골목마다 들어선 판에 이 밋밋한 조합을 굳이 먹을 까닭은 또 무엇일까."
-마이클 이스터, 편안함의 습격 中
당신의 삶은 편안한가?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그 이유를 찾을 필요가 있다. 무엇이 당신을 불편하게 만들었는가? 돈이 없어 며칠째 밥을 굶었는가? 집이 없어 추운 겨울에 밖에서 노숙을 했는가? 멧돼지의 습격을 받아 복부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가? 마땅한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길에서 대변을 봤는가?
그게 아니라면 뭐 때문인가? 당신에게서 무엇이 편안함을 앗아갔는가? 직장 스트레스? 허리디스크? 친구의 험담? 이런 것들이 정말 당신의 편안함을 앗아갈 수 있는 존재들인가? 이 책을 읽고 나니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대 사회의 편안함이 우리를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는 이 편리한 불편함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은 미래를 내다보면서 과거에 생존에 도움이 되었던 정보를 추적하도록 진화했다. 예를 들면 다음 끼니가 어디서 올지 아는 것과 같은 정보 말이다. 하지만 이런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은 그 옛날 생존을 위협하던 경계를 넘어서서 미지의 상황으로까지 확장됐다. 이는 도니가 말하는 안전망 속에 우리를 가두는 일종의 '편안함에 의한 잠식' 현상이다." (마이클 이스터, 편안함의 습격 中)
자연은 필연적으로 불편함을 동반한다. 편법이 없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 간 태백에 위치한 '오대산국립공원'에 방문했다. 비로봉 등반을 위해 산을 올랐다. 가을 산새와 풀내음이 호흡을 정화시켜 줬지만, 동시에 산모기들의 습격이 시작됐다. 모기들은 약 30분을 계속해서 주위를 맴돌았다. 해발 약 1100m부터 해발 1400m까지 오르는 동안 급격한 경사가 계속됐고 다리는 점점 무거워졌다. 모기들의 습격과 두 다리의 과부하, 불편했지만 그래도 계속 산을 올랐다. 밟고 또 밟고 더 깊은 산으로 진입하니 산소가 부족해 숨까지 가빠왔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잡념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것저것 떠오르던 생각은 가라앉고 오직 정상과 내려갈 길에 대한 생각만 떠올랐다.
"지난 며칠 동안 기술 문명이 없는 알래스카 땅을 두 발로 누비다 보니 바이오필리아 이론이 옳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참호 속에 웅크리고 있던 외가 점점 깨어나는 느낌이 들면서, 마치 한 달 하안거를 마친 수도승의 뇌로 변모한 것 같았다.(나는 평소 내 뇌의 상태를 각성제 먹은 뻐꾸기가 미친 듯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모습에 비유하곤 했었다)" (마이클 이스터, 편안함의 습격 中)
저자가 한 달 동안 고립된 북극의 툰트라, 그 땅에는 아늑한 방과 샤워실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살 수 있는 그 흔한 카페와 편의점조차도 하나 없다. 그저 수천 년간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툰드라와 함박눈, 그리고 순록과 북극곰 등 야생 동물의 배설물과 발자국들이 전부다. 심지어 사냥꾼들은 그들의 배설물을 만져 그들의 위치와 상태를 파악하기도 한다. (물론 그 외에 아름다운 것들도 많다고 한다) 그 땅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편리함은 무엇인가? 현대의 도시와 비교하면 그 무엇도 바랄 수 없을 것이다.
신기한 점은 이상하게도 극한의 불편함 속에서 저자의 마음은 점점 편안해져 갔다는 것이다. 어쩌면 더 이상 편함을 추구할 수 없는 환경을 몸이 받아들여서 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몸은 편할수록 더 편한 것을 추구한다. 불편할수록 그 불편함을 이겨내기 위해 더 많이 활동할 수밖에 없다.
"다쇼는 모바일 기술이 부탄의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들이 팀푸와 파로를 비롯한 도시로 이주하는 경향이 늘어가는 현실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도시들조차 미국으로 치면 작은 스키 리조트 같은 느낌이며, 사람들은 여전히 자연 속에서 살고 일한다.
(중략)
자연과 접촉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오감을 전부 열고 자연을 매일 경험하면서 좋은 영향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숲에서 야생 멧돼지를 보고 "저 동물은 어떤 삶을 살까?" 하고 생각해 본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존재가 얼마나 치열한 생존 투쟁을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마이클 이스터, 편안함의 습격 中)
서울에서 아스팔트와 시멘트 위만 걷다 보면 종종 흙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풀내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강에서 러닝을 할 때면 일부로 포장이 되지 않은 둔치 아래의 흙길로 달리기도 한다. 물론 울퉁불퉁해서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만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고르지 않은 지형과 흙에 적응하기 위해 더 생각하게 되고 그럴 때면 한층 더 몸이 민첩하고 똑똑해지는 느낌이 든다.
평평한 아스팔트에서는 굳이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마치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 쇼츠 영상을 볼 때보다 책을 읽으며 주체적으로 생각할 때 뇌가 더 살아있다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문명 세계의 엄청난 안락함에 대해 새삼 가슴 깊은 곳에서 감사하는 마음이 들고 있다는 것이다. 돌아오고 나서 일주일 동안은 수도꼭지를 틀 때도, 차를 몰 때도, 비닐 팩에 들어 있는 재건조 음식이 아닌 진짜 음식을 먹을 때에도 계속 바보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편 더 깊은 차원에서는 '시간'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중략)
자연 속에서 더 많은 시간과 고요함을 찾으려 노력했다. 스크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였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은 사막으로 나가 러킹을 하면서 붉은 바위와 선인장들이 늘어선 길을 몇 킬로미터씩 달리며 명상 상태 비슷한 것을 경험했다. 아내의 말이 맞다. 나는 나의 현대 사회의 문제들이 사실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덕분에 나를 흔들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졌다. '인간을 더 오래 살게 만드는 요소'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서 나는 역설적으로 '더 쉽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마이클 이스터, 편안함의 습격 中)
나는 자연에서 살고 싶다. 물론 생계와 의식주, 사랑하는 가족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겠지만, 도시에서 필요한 만큼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와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온 수많은 자연인 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앞으로는 이해가 아니라 공감하고 싶다.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다. 아주 곰곰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