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페에 대한 예비신랑의 이런저런 생각들
참 편하다. 원하는 음식을 마음대로 가져와 담기만 하면 된다. 한식부터 양식과 중식까지. 평소엔 맛볼 수 없는 비싼 회와 대게까지. 모든 요리가 빠짐없이 나열돼 있다. 어쩌면 뷔페는 자본주의를 형상화한 가장 위대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흰 접시에 담긴 수십 가지의 요리는 우리의 욕망을 가장 잘 표현한 증표일지도 모른다.
왜 이런 생각을 했냐고? 뷔페에 갈 때마다 하는 생각이 이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예전엔 "이번에는 뭘 먹을까" 하는 생각에 들떴지만 요즘은 "이 많은 음식은 어디서 올까? 그리고 내가 맛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는 음식이 하나라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접시에 허겁지겁 퍼 담은 요리들을 2~3개 비우고 나면, 맛과 시간보다는 "양질의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는 알싸한 기분이 남는다. 약간의 더부룩한 느낌은 보너스다.
최근 결혼식을 앞두고 예식장 뷔페에 시식을 하러 갔다. 결혼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음식이다. 짧고 간단한 예식이 일반화된 요즘은 더욱 그렇다. 피로연, 폐백 같은 문화도 사라진 시대에 하객이 기대할 수 있는 건 음식이 전부이다. 사람들도 이젠 그런 문화에 더 익숙해졌다. 예비신부와 나도 예식장의 1순위로 음식의 맛을 가장 먼저 따졌다. 귀한 시간을 내어 와 주시는 감사한 분들에게 우리가 대접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아마 대다수의 손님들에게 우리의 뷔페는, '풍족했지만 뭘 먹었는지 당채 기억이 나지 않는' 스쳐간 수많은 뷔페 중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하나의 요리를 느끼기도 전에 또 하나의 음식이 입 안으로 들어오고, 또 다른 요리가 접시에 쌓인다. 그 많은 요리를 제한된 시간 안에 채워 넣어야 한다는 생각에 쫓긴다. 뭐, 이런 생각을 한 나조차도 또 뷔페에 가면 그러고 있을테니.
뷔페(Buffet)라는 단어는 프랑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서랍장이나 찬장 같은 큰 나무를 의미하는데, 그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각자 원하는 만큼 덜어가는 방식에서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그때의 의미는 서로 원하는 음식을 자유롭고 편하게 먹으며 대화를 이어가는 문화였는데 지금의 한국에서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자리를 잡았다.
개인적으로는 ▲'빨리 빨리' 먹는 식문화(15분 컷) ▲ 많은 손님을 적은 시간 안에 들여 이윤을 남겨야 한다는 사업성 ▲'대화'보다는 '먹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식문화 등이 결합된 형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의 뷔페에서는 모든 이들이 허겁지겁 음식을 흡입하고 부리나케 자리를 뜬다. 마치 폭풍이 지나간 언덕처럼 너저분한 접시들이 금새 쌓인다. 물론 이런 문화가 잘못됐다고 볼 순 없다. 한국에서 뷔페가 이렇게 자리 잡은 이유도 분명히 있을 테니까.
하지만 한편으론 궁금해진다. 이건 단순히 문화의 차이일까? 대화가 많아진다면 음식의 맛을 천천히 음미하며 먹고 있는 음식에 대한 얘기까지 나눌 여유가 생길까? 조금 오그라들 수도 있지만, 양질의 스몰 토크와 교양 있는 대화까지 나누는 상상을 해본다.
곧 신혼여행으로 떠나는 프랑스에 가면, 그들의 뷔페에 한 번 들러야겠다. 먼 나라에 사는 그들은 우리와 다르게 어떤 뷔페를 가지고 있을까. 좋든 싫든 그들의 뷔페는 무엇이 다를지 한 번 느껴보고 싶다.
p.s 미친놈처럼 보일 수도 있다. 뷔페에 가면 그냥 맛있게 먹으면 되지 "무슨 그런 생각을 하냐고?" 맞다. 그래서 이 글을 쓴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추적하기 위해서 말이다.
-글로 나아가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