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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Jan 01. 2022

박혜란,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책 리뷰

세 아들을 서울대에 합격시킨, 여성학자 박혜란님의 육아관이 담긴 책이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박혜란님의 육아관이 특별해서도 아니고, 여성학자로서의 명성이 높아서도 아니고, 세 아들이 전부 서울대에 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세 아들의 입시 결과로, 박혜란님의 육아관이 특별한 것이 되고, 강사로서의 박혜란님의 명성도 더 높아진 것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성공하는 방법 중 하나는 자식의 입시결과인 것이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강조되어온 여성의 역할(=자식을 잘 키우는 엄마)일 뿐만 아니라, 엄마가 되는 순간 본능적으로 생기는 모성애의 측면에서도 엄마로서 가장 이상적인 행복과 성공의 방법일 것이다.  


그래서 박혜란님이 책에서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는 그녀의 교육법과는 상관없이, 자식 입시에서 성공을 거두고 싶은 엄마들에 의해 이 책은 끊임없이 읽히게 될 것 같다. (해가 바뀌었으니 이제 7,5세가 된) 아직 꼬꼬마 아들 둘을 둔 나 역시 벌써부터 서울대를 보내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면 따라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첫째가 영유를 잠시 다니다가 그만두고 가정보육 중인데, 겉으로는 나는 아이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이런 결정을 내린 속내는 어릴 때 너무 지치게 하지 말자는 계산에서였다. 사실 이 책을 아이들 아주 어릴 때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영향을 받은 것인지도 모르겠고, 실제로 친척 중에 서울대를 간 오빠가 초등학교때는 꼴찌 근처였는데 중학교 때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는 말도 들었고, 남편도 공부를 잘한 편인데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공부했다기보다는 어느순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전력질주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에서 미취학인 아이를 놀리는 것이지, 내가 아이의 입시를 벌써 포기하고 놀리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니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 책을 통해 서울대 보내는 팁을 얻어볼까 하는 하는 속셈이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 팁을 충분히 잘 깨달았다. 다행히 내가 생각하는 나의 교육관이 맞을 것 같다는 안도감도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서울대를 보내는 목표 하에서 일면 박혜란님과 맞는 부분이고, 나와 박혜란님은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나는 아직 본격적으로 꺼내놓지는 못했지만 내 아이가 좋은 대학에 꼭 가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고, 박혜란님은 진심으로 아이들 대학은 아이들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하지만 그러기엔 박혜란님도 첫째아들이 서울대에 들어갔을 때 지나치게 좋아하신 걸 보면, 아닐지도 모르겠다). 즉 박혜란님은 아이의 인생 그 자체를 독립적으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진 분이고, 나는 아이의 인생을 내 인생의 일부로 생각하고 조종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인 것 같다. 아이를 독립된 그들의 삶으로 존중해주라는 것. 그리고 믿어주라는 것. 그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아이의 인생은 아이의 것이라고. 엄마의 인생이 아니라고. 엄마는 아이를 키울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키우라고. 아이는 아이는 자신의 인생을 살도록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주기만 하면 된다고. 아니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거라고. 그것이 바른 교육의 방법이라고 박혜란님은 말한다.





아이의 입시는, 오랜 시간 전통적으로 강요되어온 여성(엄마)의 역할이기도 하고, 특히 출산 후 모유를 줄 수 있는 엄마가 육아를 전담하게 되면서 경력단절을 겪고 진로에서 방황을 하다가 결국은 새로 선택하게(맡게) 되는 일이 되면서, 엄마들의 주된 관심사가 된다. 그리고 체계적인 고등교육을 받은 요즘의 젊은 엄마들은 그 이전 시대의 엄마들보다 더 정교하게 아이의 입시에 매달리게 된다.


유치원을 선택할 때도 엄마들의 그 능력은 발휘된다. 일단 나는 영유는 보내겠다는 의지가 있었고, 놀이식이어야 했고 둘째랑 같이 보낼 수 있는 곳, 시설이 좋고 선생님들이 좋다고 소문이 난 곳 정도가 기준이 되었는데, 정말로 모든 유치원 투어를 하고 꼼꼼하고 쳬계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비교해보고 선택하는 엄마들이 주위에 정말 많았다. 비꼬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존경했다. 그렇게 못하는 내가 한심하지 그 엄마들이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경험이 있는 이 시대의 엄마들은 이처럼 아주 체계적으로 아이의 교육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즉 고등교육을 받은 능력있는 요즘 엄마들은, 전통적으로 부과된 엄마의 역할과 현재 주어진 일을 충실히 잘 하자는 성실함까지 합쳐져, 지나칠 정도로 정교하게 자녀교육에 매달리고 있다. 하지만 박혜란님은 말한다. 조기교육 열품이 불어서 지금 유아기 때 제대로 교육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류의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그것은 조기교육종사자들에게만 좋은 일이지,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 말이 나로서는 참 반갑다.





박혜란님은 그 유치원 투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진정 능력을 발휘해야할 부분은 그런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앞에서도 말한, 아이의 인생을 내 인생과 독립해서 생각하라는 것. 그래서 아이의 인생을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하기보다는 따뜻하게 지켜봐주라는 것, 그리고 엄마는 엄마 자신을 키우라는 것이다. 이 핵심적인 내용과 함께 박혜란님이 제시하는 교육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아이의 인생을 조종하지 마라.


세 아이의 적성 찾기 과정을 늘어놓다 보니 부모가 아이 인생을 설계해주겠다고 나서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 -중략-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이것은 곧 아이에게서 자기가 살아갈 인생을 빼앗는 일이 아닐까. 


적성과 창의성이 중시되는 시대를 맞아 젊은 부모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아이가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아낼 때까지 아이의 작은 몸짓,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아닐까.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이뜻대로' 사는 모습을 보려면 무엇보다 부모들의 '참을성'이 필요하다. 


'내 아이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 '자식은 내 뜻대로 안 되나봐'하고 변한다.



2) 조기 교육은 그다지 필요없다.


조기교육을 하지 않으면 천재가 둔재가 된다는 식으로 순진한 엄마들에게 겁을 주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천재란 아주 소수일 뿐이다, 또 창의력을 키워 준다면서 또 하나의 암기식 교육을 더 부과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분야에 따라서는 오히려 지나치게 빠른 교육이 아이들에게 해롭다는 이야기를 해줘라, 차라리 늦게 하는 편이 빠른 편보다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3) 소신을 지킨다.


올백을 목표로 공부하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일이다. 


모르는 건 끝까지 모른다고 해라.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사람처럼 바보는 없다.


옳지 않다고 생각되므로 하지 않기로.



4) 아이들 마음을 알아준다.


아이들이 외롭다고 호소할 때면, 나는 조그만 게 무슨 외로움이냐고 야단치는 대신 아이를 따뜻하게 꼭 껴안아 주었다.



5) 존재자체로 소중하다고 끊임없이 말해준다.


내가 전생에 무슨 복을 입어서 이렇게 좋은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나 싶다. 


남들이보면 세 아들 가운데 셋째 아들이지만, 엄마한테는 하나밖에 없는 셋째아들이잖아.



6) 아이 그 자체를 경이롭게 생각한다.

이렇게 내 아이를 발견해 가는 게 부모에게 부여된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닐까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지말고 궁금해하라



7)둔해져라.

아이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기 위해서는 부모들이 먼저 안정되어야 한다. 



8)스스로 도록 한다.

사전에 담긴 지식을 다 외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사전 찾는 법만 알고 있으면 된다. 더 좋은 방법은 아이들이 엄마에게 사전을 찾아달라고 부탁하기보다는 스스로 사전을 찾도록 버릇을 잡아주는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박혜란님에 대해 든 생각은, 기본적으로 무척 긍정적인 마인드에, 아이들을 참 좋아하는 분이고, 아이들에 대한 믿음이 아주 강한 분이라는 것이다. 즉 이 분 자체가 특별한 분이다.


그리고 부부가 서울대 출신이다. 그러니 좋은 머리를 물려받고, 좋은 성격을 물려받은 상황에서, 어머니가 긍정적이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양육된 아이들이라 결과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즉 어찌보면 좋은 결과가 예측되게 하는 자식과 어머니인 것이다.


즉 박혜란님의 세 아들이 모두 착하고 똑똑한 아이들이라서 그것이 가능하지 않았나싶기도 한데, 내 아이가 착하지 않고 똑똑하지 않더라도 저렇게 교육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박혜란님처럼 입시결과에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부모자식간의 관계는 좋을 것 같고, 그것만큼 자식교육에서 성공이 어디있겠는가 싶다.






엄마들에 대한 이야기도 너무 뜻깊었다. 아이를 키우려 말고 자신을 키우라는 말, 엄마가 없어도 집이 잘 돌아간다는 말, 육아를 하는 동안 엄마가 행복해야한다(행복한 엄마 밑에서 아이도 행복하다)는 말. 모두 잘 아는 말인데 한번더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엄마를 이해할 수만 있게 한다면, 아이들과의 관계가 좋을 것이라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엄마일까. 이건 삶 자체를 바르고 성실하게 살고 있느냐는 질문과도 같아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기도 하다.


그 연령의 여성들에게서 고3엄마노릇을 빼앗는다고 지금보다 더 행복하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만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에 숨어있는 시니컬한 어조를 감지했으리라.


전형적인 주부의 삶으로서 그 정도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뭔가 알맹이가 성글어 보인다.


엄마라는 이름에 나의 인생을 온통 옮겨 놓음으로써 아이들로 하여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느끼게 하지는 않았을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의 의미를 우리 세대의 여성들은 자기 인생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왔다. 아이를 키우면서 자기 자신도 키워 나가야 하는데, 우리는 자신을 철저하게 소진시켜야만 아이가 큰다고 믿어왔다. -중략-그것이 과연 잘한 일이었을까.




일단 이 책의 교육관은 나랑 너무 잘 맞아서 정말 좋았다. 예전에 읽은 책에서 내 육아관의 핵심으로 '사랑과 자율성'을 정했는데, 이 책에서도 그것이 핵심인 것 같다. 그래서 박혜란님의 책을 한 권 더 주문했다. 이 교육관을 내재화하고 싶다. 아이의 입시성공이 목표가 아니라, 나와 아이들간의 행복한 관계를 위해서. 나와 내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박혜란님의 말을 전하며 마친다.


잘 키우겠다고 너무 오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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