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This America

21세기 민권운동은 어디로 가고 있나

by 김태희

2018년 5월 5일, 올해의 최고의 뮤직비디오가 발표되었다. 차일디시 감비노(Childish Gambino)의 “This is America"가 그것이다. 이 뮤직비디오를 직접 연출, 연기한 그는 미국의 흑인 인종차별 현실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발표된 지 일주일 만에 Youtube 1억 뷰를 찍은 이 곡은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달성한 것은 물론, 미국 전역을 넘어서 전 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그의 곡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은 그가 뮤직비디오에 엄청난 은유와 상징을 숨겨놓은 덕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미국 흑인인권’의 현 주소를 꼬집었고 이를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흑인인권의 문제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이야기이며,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닌 전세계의 이야기이다.

흑인 인권의 문제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이야기이며,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닌 전 세계의 이야기이다.


본격적인 흑인인권 운동이 시작된 것은 1950-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대 미국은 흑인들을 상대로 투표권을 제한했고, 공공시설의 출입 및 사용을 제한하는 것과 같은 인종차별이 만연했다. 1955년 12월 앨라배마(Alabama)주 몽고메리(Montgomery) 시에서 로자 파크스(Rosa Parks)라는 흑인 여성이 버스 안에서 흑인 전용 칸으로 옮기기를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체포된 후, 흑인들은 이에 반발하여 ‘몽고메리 버스 승차 거부운동’을 시작하였다. 흑인교회 목사들을 중심으로 몽고메리 개선협회(Montgomery Improvement Association)이 구성되었고 협회의 의장은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이었다. 시 당국 백인 지도부들은 흑인들의 이러한 요구를 무시하였고, 오히려 강경책을 선언하여 흑인들을 억압하는 공식적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연방 지방 법원은 위헌 판결을 내렸을 뿐 아니라, 미합중국 대법원 역시 같은 판결을 내렸고 정책적 흑인 억압이 공식적으로 금지될 뿐만 아니라 버스의 백인 전용 칸과 흑인 전용 칸을 폐지하였다. 이 운동을 계기로 흑인들은 인권과 자유를 찾기 위한 조직적 대중시위를 보다 적극적으로 시행하게 되었다.

흑인인권 운동이 1960년대에 조직적이고 단결된 형태로 진행되는 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는 사람 중에는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맬컴 엑스(Malcom X)가 있다. 둘 다 1960년대에 흑인인권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지만 주장한 운동의 방향성에서는 그 결을 달리 한다. 마틴 루터 킹인종통합(racial integration)을 주장한 반면, 맬컴 엑스인종 분리주의(racial separatism)을 주장했다.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Jr)


마틴 루터 킹(이하 킹 목사)은 ‘비폭력 시위’와 ‘직접 행동’을 주장했다. 그는 직접적인 공격을 받더라도 소극적인 저항으로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접근방식은 인도의 민족주의자였던 간디의 가르침과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 시민 불복종 원리, 그리고 기독교 교리를 근거로 하였다.


맬컴 엑스(Malcom X)

반면, 맬컴 엑스 극단주의자에 속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흑인민족주의를 주장하며, 백인들을 ‘적’으로 규정했다. 또한 백인들과 저항하는 자신들과의 대치 상황에 대해서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그들을 ‘증오’해야 할 세력으로 치부했다. 이 같은 극단적인 그의 ‘흑인민족주의’는 마틴 루터 킹과 같은 온건 노선에 흥미를 잃은 많은 흑인들의 이목을 끌었고, 그들 사이에서는 백인들을 대상으로 이기기 위해서는 과격한 행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점차 퍼져나갔다. 그는 ‘백인적’인 것을 모두 부정하기 때문에 기독교까지 부정하기도 했으며, 실제로 그는 이슬람교도로 일라이자 무하마드와 함께 ‘흑인 회교도(Black Muslims)'을 이끌기도 했다.


흑인에 대한 노골적인 인종 분리는 마틴 루터 킹과 맬컴 엑스와 같이 1960년대 흑인인권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로 인해 어느 정도 끝맺음되는 듯했다. 1964년 민권법안이 채택된 후 공공시설에서는 흑백 분리가 금지되었고, 학교에서는 흑인과 백인간의 통합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고용에서의 차별은 금지되었다. 1965년에는 흑인들에게 투표권이 부여되면서 정치적으로도 평등에 가까워지는 듯했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에서는 마틴 루터 킹이 "I have a dream."을 외치던 때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은 모습들이 목격된다. 아직도 인종편견에 따른 공권력의 차별이 존재하며, 경제적 측면에서도 문제는 다르지 않다. 2011년 오바마 대통령 임기 당시조차도 흑인 가정의 연평균 소득액은 백인 가정의 연평균 소득액보다 2만 7000달러나 적었으며, 백인 빈곤층은 10%인 반면 흑인은 28%나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계층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교육조차 흑인들은 백인에 비해서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다. 더 이상 제도적인 분리는 없다고 하지만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이에 저항하는 흑인인권 운동 역시 역사가 아닌 현실이다.

timeinc.net

그러던 최근 1960년대 이후 제 2의 흑인인권 운동이라고 평가받은 사건이 발생했다.

‘Black Lives Matter’(이하 BLM), 한국어로 ‘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는 뜻을 가진 이름의 이 운동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향한 폭력 및 제도적 인종주의에 반대하며 흑인에 대한 백인 경찰들의 과도한 공권력 사용에 항의한다. 2012년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17세 흑인 소년이 백인 자율 방범대원에 의해 무고한 죽음을 당한 사건을 계기로 발생했다. 백인 자율 방범대원이 정당방위로 무죄 판결을 받고나서 온라인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반발로 해시태그(hastag) ‘#BlackLivesMatter'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온라인과 각종 SNS 상의 해시태그 운동을 넘어서 2014년 8월 발생한 퍼거슨 사태 이후에는 오프라인 집회로도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usbacklash.org

하지만 문제는 이 시위들 이후에 일어난 ‘댈러스 사태’와 같은 상황이었다. 폭력적인 BLM운동에 대한 반발적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2016년 7월 댈러스에서 흑인 저격수에 의해 백인경찰 5명이 사망했고 2주 뒤 루이지아나주 배톤 루즈에서 다시 3명의 백인경찰이 저격수에 의해 사망하면서 흑인들의 BLM운동에 저항하는 ‘All Lives Matter'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운동이 발발했다. 공권력이 강력한 미국에서 경찰을 총살한 것이 공권력에 대한 도전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 각 입장 간에 대립각이 커지면서 지금도 미국에서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주요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다시 새로운 형태의 인권 운동이 발생한 현상에 따라 이 시대 흑인인권 운동의 방향성에 대해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의 해결점은 대립적 관계에서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마틴 루터 킹처럼 상생의 관계임을 받아들이고 차별을 당하더라도 폭력이 아닌 통합의 길을 제시할 것인지 혹은 맬컴 엑스처럼 불합리한 차별에 대해 저항하고 싸워 이겨서 쟁탈할 것인지 말이다. 제도적 평등 이면의 차별이 만연한 미국 현실에서 흑인들의 억울함과 간절함은 맬컴 엑스의 흑인 민족주의를 선택하게 만들지도 모르겠으나, 그들은 그 선택이 현명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현재 벌어지는 상황을 보더라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백인 경찰을 직접적으로 저격하여 총살한 ‘댈러스 사태’는 마치 1960년대 맬컴 엑스 같은 ‘흑인 민족주의자’들의 움직임을 연상시킨다. 이 사태에 동참한 이들은 극단적이고 폭력적이다. 백인 경찰들에 대해서 ‘적’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으며 백인을 이기기 위해서라면 폭력은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증오는 또 다른 증오를 낳는다. 백인 경찰에 대한 흑인들‘의’ 증오는 흑인들에 ‘대한’ 증오를 낳았다. 백인 경찰의 입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All Lives Matter'을 외치며 흑인들의 이러한 폭력적 운동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런 대립적 상황에서 ‘흑인인권 운동’이 킹 목사의 ‘인종통합’에 근거할 필요성이 더 대두된다. ‘증오’의 감정을 기반으로 현실변화를 촉구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킹 목사의 주장을 수용하되, 55년 전과 달라진 상황들에 대해서 21세기에 맞는 방식으로의 부분적 변화는 필요하다. 1960년대 킹 목사가 주장한 ’비폭력 시위‘의 목적은 물리적 폭력에 대한 무덤덤한 반응을 통해 백인 사회에 ‘충격’을 안겨주어 강제적으로 그들이 흑인들의 불만에 직면하는 것이었다. 그 때 당시는 흑인인권이 백인과 동등하게 중요하다는 ‘인식’ 자체가 부족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러한 충격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대에서 흑인인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든다. 현대의 '흑인인종차별'은 모르기 때문이 아닌,'알면서도 자행되는 편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흑인들이 겪고 있는 인종적 편견과 불합리한 차별대우에 대한 '끊임없는 사회쟁점화'가 필요하다.


Childish Gambino의 ‘This is America’ MV

이를테면, 앞서 언급했던 차일디시 감비노(Childish Gambino)의 “This is America"가 전 세계 사회에 미친 영향력을 생각해보자. 미국 내 흑인인종차별에 대한 ’의도적인 불편함‘을 전달한 이 곡에 대해 전 세계 많은 매체가 숨은 상징과 메타포를 찾는 칼럼을 쏟아냈고, 댓글이나 개인 SNS에서 일반 대중들 역시 영상과 곡에 숨겨진 함의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으며 ’흑인인권‘에 대한 주제 내용을 다시 ’재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때 ‘재생산’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재생산에 참여한 대중들 중에는 흑인도 있겠지만 백인이거나 아예 다른 인종도 다수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차일디시 감비노가 현대 미국 흑인인권의 현실에 대해 화두를 던진 후, 의미를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흑인인권’에 대한 인식 개선들은 자연스럽고 강제적이지 않으며 비폭력적이다. 하지만 그 영향력이 작다고 절대 말할 수 없다. 결국 현대의 다양한 매체들을 기반으로 흑인들이 겪고 있는 인종적 편견과 차별대우에 대한 ‘끊임없는 사회쟁점화’가 일어날 때 ‘흑인이 아닌 집단’이 그들의 불합리성을 공감하고 이해하게 되면, ’흑인인권‘의 문제가 아닌 ‘인권’ 문제로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있지 않을까.



Childish Gambino, ‘This is America’ MV

https://youtu.be/VYOjWnS4c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