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한 일상 속에서
※이 이야기는 현실을 바탕으로 한 감성 소설입니다. Olafur Arnalds의 'Near Light'를 배경음악으로 틀어놓고, 천천히 감정을 따라가며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윤슬은 퇴근길 버스 창문에 이마를 기대고 지친 눈을 감았다. 하루 동안 그녀는 회사 업무와 육아, 생활비 걱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어깨 위에 지고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마음 한구석에서 시작되는 미묘한 불안과 압박감은 퇴근길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아침마다 알람 소리에 놀라 눈을 뜨는 순간부터 그녀의 하루는 긴장과 책임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침밥을 차리고 민호를 깨워 학교에 보내는 일은 이미 하루의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했다. 회사에 도착하면 또 다른 압박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밀린 서류들, 끝없이 울리는 전화벨, 상사의 날카로운 지적과 동료들의 시선 사이에서 그녀는 완벽함을 강요받았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그녀는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고, 언제나 완벽히 해내야 한다는 중압감은 매 순간 그녀를 짓눌렀다.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윤슬은 마음속 깊이 쌓인 긴장이 조금씩 금이 가는 것을 느꼈다. 집에 도착했지만 바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문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집이라는 공간은 휴식처가 아니라 또 하나의 전쟁터처럼 느껴졌다. 민호와의 갈등과 해결되지 않은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숨이 막혔다.
결국 무겁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예상대로 어질러진 거실과 소파 위에 늘어져 있는 민호가 보였다. 민호는 엄마의 등장에도 휴대폰 화면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민호야, 숙제 다 했어?” 윤슬의 목소리에는 피로감이 가득했다.
민호는 들리지 않는 듯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윤슬은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민호야, 엄마가 물어봤잖아. 숙제 했냐고.”
민호는 귀찮다는 듯 고개를 들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좀 이따 한다니까.”
윤슬은 하루 동안 참아왔던 피로와 분노가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맨날 나중에 한다고 하고 결국 안 하잖아. 지금 하면 안 돼?”
민호는 대놓고 짜증을 냈다. “알았다고 했잖아! 맨날 똑같은 소리만 해!”
윤슬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엄마가 왜 똑같은 소릴 하겠어? 네가 맨날 똑같이 행동하니까 그렇지!”
민호는 엄마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쾅 닫았다. 그 문 닫히는 소리는 윤슬의 마음을 더 깊이 흔들었다.
윤슬은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아버렸다. 집안의 정적은 점점 무겁고 차갑게 그녀를 짓눌렀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도 무겁게 느껴졌던 책임감과 압박감이 집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 위에 짊어진 삶의 무게는 점점 더 버거워졌고, 이 무게는 매일 그녀를 조금씩 깊은 수렁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윤슬은 문득 민호가 문을 닫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민호가 어릴 때, 그녀는 종종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민호를 심하게 다그친 적이 있었다. 당시엔 그저 조금이라도 더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지만, 지금은 그때의 행동들이 민호와의 거리를 더욱 멀게 만든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폭발했던 순간들이 민호의 마음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 것은 아닐지 두려웠다.
그녀는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고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무력감을 그대로 느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 끊임없이 요구되는 역할들 사이에서 그녀는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매일같이 반복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윤슬은 이 무거운 책임감과 압박감의 수렁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명확한 길은 보이지 않았다. 민호와의 관계를 풀어가는 방법이나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 그 어떤 것도 확신을 주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깊고 어두운 수렁 속에서 숨을 쉬는 법조차 잊은 채 매일 조금씩 더 깊게 빠져들고 있었다.
집안은 깊은 어둠 속으로 잠겨가고 있었다. 윤슬은 천천히 눈을 감고 지친 몸을 소파에 맡겼다. 그녀는 이 아슬아슬한 삶에서 벗어날 방법을 간절히 찾고 있었지만, 지금 당장은 작은 숨을 내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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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밀리의 서재에서도 연재를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과 밀어주기를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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