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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자마녀 Dec 16. 2024

통마늘을 먹고 응급실로 달리다

행사를 치른 다음 날은 유독 더 고단합니다. 더군다나 두 개의 행사에 연달아 참여하다 보니 중간중간 버퍼의 시간을 두고 에너지를 채워야 되는 저로서는 에너지 소진이 심했습니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의 가, 부가 결정되는 날이라 그랬을까 유독 더 많은 인파 속에 파묻혔던 하루였습니다. 


피로를 무릅쓰고, 일요일 아침 7시부터 있었던 일정을 잘 마무리했습니다. 성당에 다녀와서 모처럼 아이들과 여유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어요. 남편이 송년회에 가고 없었던 오후였기에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쉬나 싶었습니다. 저녁 먹은 상을 치우던 찰나, 통마늘 하나가 또르르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제가 서 있던 자리 언저리에서 저를 지켜보던 반려견 구름이가 냅다 달려와 물고 가네요. 손 쓸 새도 없이 후다닥. 어쩜 그리도 빠른지 미처 잡지 못했습니다. 사료로 유인하자 쪼르르 달려오는 구름이의 어깨는 개선장군의 그것과도 다르지 않더군요. 


입 안을 살펴봤건만 돌아오는 것은 마늘냄새뿐이었어요. 잽싸게 챗GPT를 켭니다. 물어보니 강아지에게 상당히 안 좋은 음식이더라고요. 






손가락이 달달 떨렸어요. 이미 수차례 경험이 있거든요. 이 녀석이 남편 고혈압약, 초콜릿, 샤인머스캣, 자일리톨껌에 최근에는 비누를 씹어먹어 치우기까지. 그때마다 응급실로 안고 뛰는 것은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저의 몫이었고요.


챗GPT의 답변을 보고서는 냉큼 근처 24시간 운영하는 동물병원에 전화를 했습니다. 언제 먹었는지 묻더니 바로 내원하라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부랴부랴 옷을 주워 입고서는 안고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걸어서 10분 거리의 동물병원, 평소에는 조금 수다 떨다 보면 나타나는 그곳이 오늘따라 유독 멀게만 느껴집니다. 제 다리는 제 마음처럼 빨리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도 여실히 알게 되었고 말이죠. 


병원에 도착하니 이미 여러 강아지들이 병원에 와 있었습니다. 접수를 하고 나니 대기하라고 하더군요. 구름이는 이미 잔뜩 긴장을 해서 제 무릎 위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습니다. 원래 다른 강아지들을 만나면 짖으면서 소란을 피우기 일쑤인데 속이 좋지 않은 것인지, 병원 자체가 무서운 것인지 그저 달달 떨기만 하네요. 




야간 주치의선생님이 나와서 대기실에 있는 다른 보호자분께 양해를 구합니다. 


마늘을 먹고 온 아이가 있어서 그 아이를 먼저 진료하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 말씀과 함께 구름이 이름을 부르는데 덜컥 겁이 더 나더군요. 순서를 바꿀 만큼 심각한가 싶어서요. 별 일 아닐 거라 생각한 제가 못났네요. 


밤 9시에 있을 돈무적워크숍에 차질이 없도록 코치님께 먼저 말씀을 드리고, 참여예정이던 독서모임에도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 


다행히 구토하게 하여 덜 소화된 듯한 마늘을 뱉어내게 했습니다. 다만, 일정 부분 소화된 것으로 보여 1주일 약도 처방받아왔어요. 




일요일 밤, 나름 여유 있게 일주일을 마무리하려던 저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강아지가 먹으면 안 되는 것들을 어찌나 알고 재빠르게 먹어치우는지, 그럴 때마다 응급실로 뛰어가고 오면서 반성합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저도, 아이들도 조심하지 못하고 똑같은 일이 반복되네요.


반성하고 나아지지 않으면 늘 같은 자리에 맴돌게 마련입니다. 반성을 했으면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실천방안도 세워놔야겠지요. 먹을 것, 못 먹을 것 구분하지 못하고 먹은 반려견보다는 보호자로서 그런 일을 만들지 않아야 할 책임이 저에게 있음을 다시금 상기시켜 봅니다. 


약을 먹을 때나 식사시간에는 구름이를 분리시켜 놓는 것이 우선이겠지요. 그리고 지속적인 훈련도 함께 해내야겠습니다.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면 실수는 더 이상 실수에 그치지 않고 결국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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