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가안보전략의 보수주의 기원

by 골목길 경제학자

미국 국가안보전략의 보수주의 기원


트럼프 행정부가 2025년 12월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이 논란이다. 33페이지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통적 국가안보전략에서는 볼 수 없던 문명과 문화에 대한 강조다.


보고서는 유럽 동맹국들의 "문명적 소멸(civilizational erasure)"을 경고하고 유럽이 이민을 막지 않으면 20년 내에 "알아볼 수 없게 될 것"이며, 미국의 "영적 건강(spiritual health)"과 "전통적 가족(traditional families)" 보호가 핵심 국가안보 과제라고 선언한다. 더 나아가 '유럽이 유럽으로 남기를(Europe to remain European)' 원하며, 유럽의 '문명적 자신감(civilizational self-confidence)' 회복을 목표로 제시한다.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의 토마스 프리드만(Thomas L. Friedman)은 2025년 12월 11일 칼럼 "Trump Isn't Interested in Fighting a New Cold War. He Wants a New Civilizational War"에서 이 보고서를 MAGA 매니페스토로 규정하며 비판했다. 그는 이 보고서가 민주주의 수호가 아니라 백인 기독교 민족주의(white Christian nationalism)를 추구한다고 진단한다. MAGA 운동이 유럽연합보다 푸틴의 러시아에 끌리는 이유는, "푸틴을 백인 기독교 민족주의와 전통적 가치의 수호자로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프리드만은 트럼프의 "문명론"을 인종과 종교에 기반한 배타적 정체성 정치로 읽으며, 이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본다.


하지만 프리드만의 비판은 중요한 구분을 놓친다. 트럼프 보고서가 담고 있는 문화적 우려를 단순히 포퓰리즘적 민족주의로만 환원할 수 없다. 그 저변에는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으로 대표되는 공동체 보수주의(Communitarian Conservatism) 전통이 깔려 있다. 이 전통은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레오 슈트라우스(Leo Strauss), 앨런 블룸(Allan Bloom)을 계승한다.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1996)에서 탈냉전 시대의 주요 갈등이 이념이 아니라 문명 간 충돌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Who Are We?』(2004)에서는 미국의 앵글로-프로테스탄트 문화적 핵심이 급격한 이민과 다문화주의로 침식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공동체 보수주의의 핵심 테제는 명확하다: 정치 공동체는 공유된 도덕적·문화적·종교적 기초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추상적 시민권이나 절차적 정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블룸은 상대주의가 학생들의 영혼을 공허하게 만들었다고 경고했고, 헌팅턴은 문화적 정체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같은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는 2025년 12월 12일 프리드만과의 대담 "Thomas L. Friedman Says We're in a New Epoch. David Brooks Has Questions"에서 공동체 보수주의 관점으로 반론을 제기한다. 논쟁의 핵심은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의 가치 다원주의에 대한 해석이다. 브룩스는 벌린을 인용해 "자유와 평등, 문화적 응집력과 다양성 사이에는 비극적 긴장이 있으며, 완벽한 양립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한다. 프리드만이 "both/and" 접근—"높은 벽과 큰 문", "다양성과 응집력을 동시에"—을 제시하지만, 브룩스는 이를 순진한 낙관론으로 본다. 현실에서는 트레이드오프가 필요하며, "다이얼을 조정"해야 한다. 다양성을 높이면 응집력은 약해질 수 있고, 개방을 늘리면 정체성은 희석될 수 있다. 완벽한 균형은 환상이며, 사회는 끊임없이 선택하고 조정해야 한다.


프리드만과 브룩스의 차이는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차이를 반영한다. 프리드만은 자유주의 국제주의자다. 글로벌 상호의존, 민주주의 가치의 확산, 보편적 시민권이 그의 세계관이다. 그에게 공동체의 기반은 추상적인 민주 가치—자유, 평등, 법치—여야 한다. 인종이나 종교적 정체성이 아니라,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정치 원칙이 공동체를 만든다.


반면 브룩스는 공동체 보수주의자다. 그의 저서들—"The Social Animal"(2011), "The Road to Character"(2015)—은 커뮤니티, 도덕, 덕성을 강조한다. 그는 시장주의자가 아니며, 순수한 경제적 자유나 개인 선택만으로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없다고 본다. 공동체에는 구체적인 전통, 관습, 신앙, 소속감이 필요하다.


트럼프 보고서를 이해하려면 현대 미국 보수주의의 복잡한 지형을 파악해야 한다. 미국 보수주의는 네 개의 주요 정파로 나뉜다.


①신자유주의(Neoliberalism): 자유시장, 작은 정부, 자유무역을 강조한다. 코크 형제(Koch Brothers), 케이토 연구소(Cato Institute)로 대표되며, 레이건(Reagan)-대처(Thatcher) 전통을 계승한다.


②네오콘(Neoconservatism): 민주주의 전파와 개입주의 외교를 옹호한다. 빌 크리스톨(Bill Kristol)과 네오콘 지식인들이 대표한다.


③공동체 보수주의(Communitarian Conservatism): 새뮤얼 헌팅턴으로 대표되며, 버크-슈트라우스-블룸의 전통을 계승한다. 문화적 정체성, 문명적 기초, 전통과 덕성을 강조한다. 데이비드 브룩스가 현대의 대표적 논객이다.


④MAGA: 경제 민족주의, 반엘리트, 포퓰리즘을 특징으로 한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스티브 배넌(Steve Bannon), 터커 칼슨(Tucker Carlson)이 대표한다.


트럼프 보고서는 이 네 정파 중 ①신자유주의와 ②네오콘을 명확히 거부하고, ③공동체 보수주의와 ④MAGA를 반영한다.


보고서는 과거 미국 외교 엘리트들이 "세계 전체의 영구적 지배(permanent American domination of the entire world)"를 추구했으며, "세계화와 소위 자유무역(globalism and so-called 'free trade')에 잘못된 베팅"을 했다고 비판한다. "forever wars"라는 표현으로 네오콘의 개입주의를 거부한다. 대신 "비개입주의 성향(Predisposition to Non-Interventionism)"을 원칙으로 제시하며, "무역 균형(Balanced Trade)"과 "관세의 전략적 사용", "재산업화(Reindustrialization)"를 강조한다. "친미국 노동자(Pro-American Worker)" 원칙은 "단순히 성장 중심이 아니라 노동자 중심"이라고 명시한다.


동시에 보고서는 공동체 보수주의의 문명론을 적극 수용한다. 특히 유럽 장은 헌팅턴의 사상을 직접 반영한다. "문명적 소멸(civilizational erasure)", "유럽이 유럽으로 남기를(Europe to remain European)", "문명적 자신감(civilizational self-confidence)" 같은 표현은 『문명의 충돌』과 『Who Are We?』의 핵심 개념을 국가안보전략으로 번역한 것이다. 보고서는 유럽이 "이민 정책으로 대륙이 변모하고, 출산율이 급락하며, 국가 정체성과 자신감을 상실"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현재 추세가 지속되면 20년 이내에 유럽 대륙은 알아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브룩스가 프리드만을 비판한 것은 바로 이 공동체 보수주의의 관점을 대변하기 위해서다. 급격한 이민과 문화 변화가 공동체의 응집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는 진지하게 다뤄져야 할 정치철학적 주제다. 공유된 문화적 기초, 전통의 계승, 시민 덕성의 함양은 버크 이래 보수주의 사상의 핵심이며, 헌팅턴이 현대에 복원하려 한 통찰이다. 프리드만이 이를 단순히 "백인 기독교 민족주의"로 환원한 것은 현실의 복잡성을 놓친 것이다.


미국 보수주의를 이해하려면 이 네 정파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봐야 한다. 1980년대 레이건 연합은 ①신자유주의와 ②네오콘의 결합이었다. 경제적으로는 자유시장을, 외교적으로는 적극적 개입을 추구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 연합을 해체했다. ④MAGA는 ①의 자유무역을 배신으로 보고, ②를 엘리트 지식인으로 경멸한다. 대신 보호무역과 비개입주의를 내세우면서, ③공동체 보수주의의 문명 언어를 전유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는 결국 하나의 관점에서 평가하기 어렵다. 중국과의 경제·군사 경쟁이라는 전통적 지정학을 다루면서도, 유럽의 '문명적 소멸'과 미국의 '영적 건강'이라는 문화적 언어를 국가안보의 핵심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전례가 없다. 이 보고서는 ③공동체 보수주의와 ④MAGA의 복잡한 혼합을 보여준다. 헌팅턴의 문명론을 차용하면서도, 네오콘 개입주의를 거부하고 경제 민족주의를 옹호하는 MAGA의 특징을 담고 있다.


동시에 그것은 미국 보수주의 내부의 깊은 균열—신자유주의와 네오콘으로 대표되는 레이건 연합의 해체—을 드러낸다. 이 문서를 하나의 관점에서 조롱하거나 환영하는 것은 모두 오류다. 그것은 미국 정치의 복잡한 이념 지형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텍스트이며, 민주주의가 직면한 문화적·정치적 긴장을 응축하고 있는 논쟁적 문서다.



참고문헌

The White House. (2025, November).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https://www.whitehouse.gov/wp-content/uploads/2025/12/2025-National-Security-Strategy.pdf

Friedman, Thomas L. "Trump Isn't Interested in Fighting a New Cold War. He Wants a New Civilizational War." The New York Times, December 11, 2025.

https://www.nytimes.com/2025/12/11/opinion/trump-europe-security-strategy.html?smid=url-share

Brooks, David, and Thomas L. Friedman. "Thomas L. Friedman Says We're in a New Epoch. David Brooks Has Questions." The New York Times, December 12, 2025.

https://www.nytimes.com/2025/12/12/opinion/tom-friedman-david-brooks-polycene.html?smid=url-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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