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나라 10월호 인터뷰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라이프스타일이란 한순간 몰려왔다가 지나가는 트렌드가 아니고 산업사회의 물질중심주의적 가치에 대한 새로운 대안의 하나로 작동해왔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친환경, 웰빙, 채식 유기농, 스페셜티 커피, 슬로우 라이프, 미니멀리즘, 공동체 등도 결국 히피에서 시작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서 태동했다. 특히 스티브 잡스의 그 유명한 명언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계속 갈망하라, 계속 무모하라(Stay hungry, Stay foolish)”도 그 뿌리는 히피 문화에 기반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극명하게 분출되고 있다. 퇴사 열풍이나 ‘꼰대’와 ‘라떼’에 대한 문화적 격차, 페미니즘, 90년대생에 대한 담론 등이 사실은 ‘라이프스타일의 충돌’에서 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모종린 교수와 함께 우리 사회를 강력하게 추동하는 ‘라이프스타일 운동’의 실체를 들여다봤다.
서구문화에서 가장 큰 변화의 물줄기 중 하나는 바로 중세시대 봉건주의에 대항한 부르주아의 등장이었다. 그런데 부르주아가 득세해 그들의 경제적, 산업적, 물질적 가치가 주류를 이루자 이때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19세기 보헤미안이 주도한 ‘탈(脫)물질주의’ 운동이었다. 이것이 바로 라이프스타일 운동의 시발점이다.
역사적 의미에서의 라이프스타일은 1960년대부터 등장한 히피들의 삶의 지향점에서부터 그들이 만들어놓은 기업, 생활문화를 아우르며, 이러한 변화는 이후 보헤미안, 힙스터, 보보, 노마드 등으로 뿌리 깊게 확산, 발전되어왔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역시 과거 히피 세대가 만들어놓은 새로운 산업이며, 스타벅스, 나이키, 벤엔제리스 아이스크림 등의 기업들 역시 이러한 히피 이후의 세대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서구에서는 이런 변화가 근 200년에 걸쳐서 일어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마저도 20~3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퇴사 열풍이나 ‘꼰대와 라떼’에 대한 문화적 격차, 페미니즘, 90년대생에 대한 담론 등이 사실은 ‘라이프스타일의 충돌’에서 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변화는 기업인들도 매우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이는 소비 트렌드의 변화뿐만 아니라 기업의 역할과 인재양성이라는 부분에서도 색다른 통찰을 주기 때문이다.
Q) 탈물질주의 가치는 어떤 것이 있는지, 그것이 어떤 라이프스타일과 연결되어 등장, 확산했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탈물질주의라고 해서 물질로부터의 완전한 이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전통적으로 탈물질주의자들은 대개 교육수준이 높고, 경제력으로 봤을 때에도 중산층 이상입니다. 이들은 고전적 부르주아들이 만들어낸 산업사회의 강요되는 가치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좋은 삶’에 대한 자신들만의 확고한 철학을 추구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개성, 다양성, 삶의 질,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것이죠. 반면 물질주의적 가치는 신분, 경쟁, 조직력, 노력을 강조해왔습니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가지고 등장한 탈물질주의자들은 예술과 자연에서 물질주의의 대안을 찾는 보헤미안, 자연과 커뮤니티의 가치를 중시하는 히피, 인권과 환경,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보보로 발전했고, 최근에는 힙스터와 노마드가 중심입니다.
힙스터는 소박하고 잘 만들어진 것들을 애정하며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자아도취적 성향도 있습니다. 또 인디음악과 카페를 사랑하고, 채식과 아날로그에 가까운 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힙스터는 히피의 후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마드는 이동성(mobility)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하면서 공유적인 생산과 소비를 실천합니다. 서양,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된 이러한 탈물질주의가 ‘라이프스타일’ 운동이 되어 새로운 한 축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Q) 과거의 가치와 새로운 가치의 충돌은 지금 우리나라 사회에서도 매우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개성적인 삶의 방식일 뿐인 이런 라이스프타일이 사회를 변화시킬 원동력이 될 수 있을까요?
라이프스타일은 우선 정치적 맥락에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구좌파’라고 불리는 정통 좌파는 계급 불평등을 비판하고 재분배를 통해서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하는 부류입니다. ‘기본소득’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재분배의 차원에서 논의되는 이야기들입니다. 반면에 ‘신좌파’는 소수자, 여성, 생태계 등 기성사회와 문화에서 나타나는 권위주의를 타파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라이프스타일 운동은 구좌파도 아니고 신좌파도 아닌 또 하나의 길입니다. 즉, 인간이 가지고 있는 창의성과 주체적인 능력으로 대안적인 독립적 경제단위를 구축하고, 생활 속에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부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기농 공동체인 홍성의 홍동마을이 바로 이러한 라이프스타일 운동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라이프스타일 운동은 좌파적이면서도 재분배를 요구하지 않고 인간의 주체적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파적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 자체로 새로운 대안을 만들고 실천하려는 점에서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거대한 원동력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라이프스타일 운동의 정치적 맥락은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기도 하다. 모종린 교수는 “좌파적이면서도 우파에 가깝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어쩌면 ‘우파적이면서 좌파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분류가 아니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운동이 지금 한국 사회의 극심한 분열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을 ‘장착’한 사람이 기업의 운영자가 된다면, 그들이 추구하는 제3의 길은 경제가 걸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Q) 라이프스타일 운동이 기업문화로 발전하고, 적지 않은 공헌을 한 사례가 있을까요?
가장 쉬운 예는 바로 PC(개인 컴퓨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PC 산업이 히피 문화의 중심지였던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PC는 개인 해방과 탈권력을 추구한 저항적인 히피 문화의 산물이었죠. PC 개척자들은 정부와 대기업이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통해 정보를 독점했기 때문에 개인을 정보 독점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개인 컴퓨터를 개발한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PC와 그것이 발전한 것으로서의 스마트폰은 전 세계의 민주주의와 탈중앙화에도 큰 공헌을 하고 있으며, 각 개인에게 권력에 대항할 수 있을 정도의 파워를 안겨주기도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가장 대표적인 히피 사업가였습니다. 그는 히피문화로부터 습득한 ‘이단아 정신’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바로 스마트폰 탄생의 철학이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은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하려는 노력의 산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르게 생각하라’는 그의 이단아 정신이 없었다면 오늘의 애플도, 또 애플에 대한 소비자들의 충성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만들어낸 독단적인 기업문화 등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역사의 한 시기에 큰 역할을 했던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Q) 한국에도 이런 기업들이 존재할까요?
한국 기업에서도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보보 성향을 보이는 기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보보’란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을 합성한 것으로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이나 고소득 전문직을 말합니다. 흔히 말하는 ‘강남 좌파’도 바로 여기에 속하는 사람들이죠. 386세대가 주도한 IT산업이 대표적인 보보산업입니다. 네이버, 다음, 카카오, 넥슨 등 한국을 대표하는 IT기업은 일반적으로 진보정당을 지지합니다. 기업문화 측면에서도 기존 대기업과는 달리 환경, 인권, 탈권위주의 등 진보적 가치에 우호적입니다. 미국에서 보보산업으로 분류되는 소셜벤처, 사회적 기업, 임팩트 투자사도 한국에서는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IT기업들이 스스로 전통적 질서에 얽매이며 주류기업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대안’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나가야만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Q) 중요한 점은 이러한 386세대의 기업뿐만 아니라 기존의 대기업, 중소기업의 경영에서도 최근의 라이프스타일 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젊은 세대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기업은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떤 면에서 봤을 때 모든 기업은 ‘라이프스타일 기업’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두 가지 의미입니다. 하나는 최근의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되는 제품, 가치를 생산해야 한다는 점이죠. 물론 현재 상당수의 기업들이 이런 방식으로 홍보를 하고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친환경, 가치소비 등이 그런 것들이겠죠. 그런데 이런 방법들이 좀 더 강화되어야 하고, 중소기업들 역시 이러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가치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두 번째는 기업이 직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완성해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젊은 세대가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것은 ‘일과 삶의 통합’입니다. 일을 통해서 그 자체로 삶의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이라면 ‘워라밸’이라는 것이 오히려 좋은 방향이 아닙니다. 워라밸은 일과 삶을 따로 분리해 기계적인 균형을 맞추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경영자들은 직원 개개인의 성향을 파악해 그들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 속에서 일을 통합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워라밸’을 꿈꾸고, 심지어 정부에서조차도 그것을 권한다. 하지만 모종린 교수는 여기에서 한발짝 더 나간다. ‘일과 삶의 기계적 균형’이 아닌 ‘일과 삶의 통합’이라는 관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쩌면 기업이 가져야 할 가장 앞서가는 인재 양성의 과제가 될 수 있을 듯하다. 개인의 정체성, 사고방식, 생활방식과 그에 가장 적합한 업무를 주어 최선의 창의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 바로 이것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Q) ‘일과 삶의 통합’이라는 부분에 대해 경영자들이 실천할 수 있도록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제까지의 인재상은 한결같았습니다. 성실, 노력, 열정 등이었죠. 물론 창의성이라는 부분이 있지만, 이 역시도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다르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스로 규율과 성실을 중요시하는 부르주아 성향의 인재들에게는 그에 맞는 세무나 법률, 교육 등 경영 지원의 일을 맡길 수 있습니다. 만약 신산업을 추진하려고 한다면 힙스터나 히피 성향을 가진 직원들이 훨씬 그 일을 잘 수행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직원이라면 재택근무가 매우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인재를 한 종류로 규정짓지 말고, 하나의 인재상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최대한 맞는 근무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들에겐 월급을 많이 주고 적게 주는 것보다는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지, 독립적인 자아실현이 가능한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Q) 지금의 성공한 기업인, 경영자들은 부르주아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새로운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부르주아’라는 말에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가 있긴 하지만, 사실 부르주아라는 계층은 그 자체로 귀족에 저항하면서 대안세력으로서의 자신들의 정체성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지나치게 폐쇄적인 문화를 만들기도 합니다. 마치 드라마 〈스카이 캐슬〉처럼 자신들만의 영역을 정해놓고 ‘게이트(gate) 커뮤니티’를 한다는 점입니다. 외국에 나가보면 한국처럼 특정한 ‘단지’를 만들어 외부인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곳은 별로 없습니다. 따라서 전통적 부르주아는 애초에 자신들의 힘이었던 개방성을 되살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도전을 껴안고 그들과 함께 미래를 개척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이프스타일은 우리 사회의 갈등과 흐름을 파악하고, 그 토대 위에서 경영의 새로운 전략을 짤 수 있는 매우 유의미한 통찰의 관점이 될 수 있다. 자본가-노동자, 구세대-신세대, 좌파-우파라는 전통적 대립항으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의 충돌과 그 안에서의 역동적인 변화’라는 또 다른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우리 사회 젊은 세대의 취향과 성향은 매우 디테일해졌고, 때로는 쉽게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이럴 때에는 라이프스타일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보다 유용한 결론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글 이남훈 기자, 사진 김성헌 기자
출처: 기업나라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