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에는 꿉꿉함을 없앨 겸 가장 좋아하는 윌로우향 우드윅 캔들을 켠다. 청량한 숲 향이 방 안 가득 퍼지고 마치 모닥불 장작 타는 것 같은 소리와 빗소리가 조화를 이루어 안온함을 준다.
수년 전, 한 친구가 공부하느라 고생한다며 크고 무거운 선물을 주었다. 밤늦게 집에 돌아와 선물을 풀자 연보라색 커다란 캔들이 나타났다. 양키 캔들은 써봤지만 뚜껑도, 심지도 나무로 된 우드윅 캔들은 처음이었다. 뽕하고 뚜껑을 열어 심지에 불을 붙였다. 타닥타닥 나무 심지 타는 소리와 라벤더 향이 평온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매일 밤, 공부를 끝내고 돌아와 홀로 있던 집에서 켜는 캔들은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편안한 상태가 되면 음악을 켠다. 비가 올 때마다 꼭 듣는 두 곡이 있다. 비와 어울리는, 아주 직관적인 제목을 가진 Michael Franks의 ‘Tiger in the rain’과 John Mayer의 ‘Covered in rain’이다.
고등학교 시절 장마 속에 기말고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어느 날 느긋하게 신문을 보다가 Michael Franks의 곡들이 소개된 기사를 읽었다. 한창 재즈에 관심을 가졌던 터라 메모를 해두었다가 듣게 되었다. 소개된 곡 중 ‘Tiger in the rain’은 듣자마자 푹 빠져버렸다.
색소폰 소리가 아련하게 연주되는 도입부를 지나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중성적 목소리의 보컬이 읊조리듯 노래한다. 후반부에 들어서는 또로롱 구슬이 굴러가는 것 같은 비브라폰 솔로 연주가 이어지다 페이드아웃 되는데 마치 꿈속을 걷는 것 같이 몽환적인 느낌이 비 오는 날과 참 잘 어울린다.
이어서 John Mayer의 ‘Covered in rain’을 재생한다. 잔잔하게 시작되어 긁는 듯한 John Mayer의 목소리와 함께 끊어질 듯 말 듯 섬세한 터치의 블루지한 기타 연주가 이어진다. 이 부분을 듣고 있으면 저절로 미간에 주름이 잡히고 에어기타를 연주하게 된다. 중반에 들어서서는 조금씩 빨라지다가 격하게 날뛰는 감정을 마구 표출하는 것 같은 열정적인 연주가 계속된다. 잠시 평정을 찾은 것 같다가 다시 절규하는 보컬과 연주는 빗속을 질주하는 것 같은 시원함과 해방감을 갖게 한다.
이 곡은 라이브 앨범에 실린 곡이어서 현장감과 날 것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다. 장장 10여 분에 걸친 긴 곡이나 20년 가까이 같은 곡을 들어도 들을 때마다 새롭고 전혀 질리지가 않는다. 사실 이 곡은 사계절 어느 때 건 생각날 때마다 듣는데 곡이 끝난 후 이어지는 John Mayer의 “It’s been a long summer.”라는 멘트와 곡명 때문인지 장마철에 들으면 더욱 몰입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