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의 낭만과 현실

당신이 꿈꾸는 전원생활, 현실은?

by 리케

전원생활, 꿈같은 행복이었지만 그 뒤에 찾아온 반전은 예상 밖이었다.




이루어진 로망


허니문 기간이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고 지나갔다. 하루하루가 감탄의 연속이었다.

정성껏 심은 알록달록 꽃들이 꽃밭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것을 보았다. 텃밭에서 얻은 상추와 호박, 풋고추 등 수확의 기쁨도 맛보았다. 비닐봉지에 포장된 마트 채소가 아닌, 손수 수확한 소출들로 요리하는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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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을 불러 바비큐 파티를 하고 장작불을 태워 불멍을 했다. 수제 막걸리를 빚어 텃밭의 호박을 따다가 그 자리에서 전을 부쳐 먹었다. 소맥부터 하이볼까지, 등불 아래에서 음악과 함께 밤새도록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턴테이블 위에 송창식의 '비의 나그네'를 올렸다. 빗소리와 음악과 와인은 무릉도원에 있는 듯 감미로웠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인생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재밌는 거다. 서울에서도 양평집 생각이 떠올라 일주일에 서너 번씩 오가며 지냈다. 비교적 시간에 자유로운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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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같은 1년이 지나자, 양평과 서울을 오가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될 것 같아, 고민 끝에 양평 시골집으로 작업실을 옮기기로 결심했다. 택배사를 알아보고 계약을 마치자마자 모든 짐을 싸서, 양평으로 완전히 이주했다.


오전 10시에 2층에서 1층으로 출근을 한다. 일 하다가 지루하면 텃밭에 나가 잡초 몇 개 뽑아주고, 돌을 고른다. 작은 우주처럼 조화롭고 오묘한 꽃밭은 또 어떤가. 꽃들은 신이 주신 선물일까 감탄하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이 가슴 언저리부터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저녁 6시경 업무를 마치고 2층으로 퇴근하면, 안락한 공간이 차분히 나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이 떠질 때까지 아침잠을 자고 새소리에 깨어나는 일상이 행복에 겨워 미칠 지경이었다.


속을 끓이던 내면의 갈등도 서서히 해소가 되었고, 평상심으로 보내는 평온한 날들이 지속됐다. 비로소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정한 자유의 문턱에 들어선 것 같았다. 그렇게 영원히 해피엔딩이었다면 인생사는 오히려 재미없고 심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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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한 뜻밖의 현실


인간은 만족을 모르는 법이고, 욕망은 그 끝이 없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순간들 속에서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천천히 마음을 잠식해 왔다. 과하게 분출됐던 엔도르핀 뒤로 권태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양평에 입주한 지 2년, 작업실을 옮긴 지 1년이 지난 후였다.


슬리퍼를 신고 가볍게 나설 수 있던 제과점과 편의점 맥주, 노점의 붕어빵 같은 도심의 소소한 즐거움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차를 끌고 나가야만 닿을 수 있는 곳들이 점점 불편하게 느껴졌다.


서울에서 모임이 불가능했기에 지인들과 교류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타입이지만, 365일 혼자 보낼 수 없는 노릇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고립된 일상은 결국 외로움을 남겼다. 시골 생활의 단점들이 더 크게 다가오기 시작하며, 도심에 대한 그리움은 눈덩이처럼 굴러갔다. 몇십 년 동안 몸에 익은 생활들을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그 무렵 온라인 사업의 필수요건인 택배에 문제가 발생했다. 양평이 완전한 시골은 아니었지만, 택배는 도심만큼 원활하지 못했다. 익일 배송이 보편화된 시대, 지연된 택배로 컴플레인이 쏟아졌다. 양평집의 행복감도, 쌓여가는 택배 스트레스 앞에서는 무기력해졌다. 서울 생활에 대한 그리움이 익어갈 무렵 택배 문제가 터지니 적당한 명분이 만들어졌다.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작업실의 짐들을 싸서 서울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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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과 시골, 그 사이에서 찾은 균형


시골집을 얻었던 초기처럼 서울과 양평집을 오가는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만약, 양평집으로 작업실을 옮기지 않았다면 양평에 올 때마다 유혹을 느꼈을 것이다. 한번 실천을 해보니 마음에 여한이 없어져서 한편으로는 좋았다. 반대로 도심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골집을 완전히 빼버렸다면 그 역시 후회했을 것이다. 결국은 영원한 로망으로 남아 늘 그리워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이 상황에 '중도'라는 단어가 어울릴지 모르겠다. 내 삶에서는 이 라이프 스타일을 중도라고 표현하고 싶다.

중도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이다. 도시와 시골, 그 경계에서 나만의 길을 찾았다. 주말이면 어떤 스케줄도 잡지 않고 시골집으로 향하고 있으므로 양평집에 대한 배신도 아니다. 여전히 양평집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도착하면 설렘에 심장이 뛰며 마음에 잔잔한 평온이 찾아온다. 도시와 시골의 두 가지 삶 속에서 이 특별한 균형이 나의 진정한 로망이었던 것 같다.


이런 생활을 꿈꾸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축복받은 운 좋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도 동시에 한다. 이 기회를 누릴 수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도전해 보길 적극 권한다.


여러분은 어떤 로망을 꿈꾸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 로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오늘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