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케 Nov 17. 2024

벌레와 함께한 전원살이 3년

전원주택과 벌레 포비아


벌레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곤충을 비롯하여 기생충과 같은 하등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그들은 인간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공포의 대상이 된다. 어쩌면 인간이 

벌레를 적극적으로 잡고 제거하려는 건, 그들에 대한 오해와 착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도심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전원주택 생활의 가장 큰 장벽은 바로 벌레였다. 

날파리, 모기, 파리, 나방 같은 건 애교 수준이다. 이들은 벌레라 부르기에도 부족하다.

전원살이에서 만나는 벌레들은 차원이 다르다.



애증의 지네와의 첫 만남


텃밭과 꽃을 가꾸며 전원살이의 로망을 하나둘 실현해 가던 어느 날이었다.

벌레에 대한 경험은 거의 없었고, 주변에서 들었던 이야기조차 전무했기에 무방비 상태였다.

그날 밤, 매트리스에서 잠을 자던 중이었다. 등 쪽 옆구리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져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손으로 더듬으며 주위를 살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매트리스를 들어 올리자 길쭉한 벌레 두 마리가 매트리스 뒤에 착 달라붙어있었다.

홈키파를 들어 정신없이 뿌리며 그들과 사투를 벌였다. 꿈틀거리며 한참을 버티다 죽어가는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덜덜 떨었다. 심장은 쿵쾅거렸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사진을 찍어 검색해 보니 그게 바로 지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밤 나는 하얗게 밤을 지새우며 고민했다.


전원 살이가 과연 나와 맞을까.

벌레를 감당할 수 있을까.

다시 도심으로 돌아가야 하나.



전원살이와 지네 포비아


그날 이후 '지네포비아'에 시달리게 되었다.

하수구에서 올라온다는 정보를 보고 집안 곳곳에 하수구 트랩을 설치했다.

싱크대와 세면대는 항상 막아 두었고, 욕실문도 반드시 닫고 다녔다. 집 주변에 가루약을 뿌리고, 

지네가 출몰할 만한 곳곳에 나프탈렌을 놓았다.

어느 날, 욕실 앞에서 잡은 지네를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렸다. 몇 시간 후, 변기 속에 둥둥 떠 있는 지네를  다시 발견했다. 

끓는 물을 몇 차례 붓고, 욕실 문 틈에 박스테이프를 붙인 후 며칠간 욕실을 사용하지 않았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아들과 양평집에서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2층에서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려 뛰어 올라가 보니, 아들의 엄지발가락이 지네에 물려있었다. 전날 밤 벗어 둔 양말 속에 지네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아들의 엄지발가락은 퉁퉁 부었고, 

양평 시내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고 나서야 진정되었다. 그날 이후 지네는 우리 가족에게 공포의 대명사가 되었다.



벌레와 공존


지네는 쌍으로 다닌다는 속설이 있다. 한 마리를 잡으면 비슷한 크기의 다른 지네가 근처에서 발견되곤 했다.

긴 장마가 지루하던 어느 여름, 양평집에 내려왔을 때였다. 욕실 문을 열자마자 지네 한 마리가 보였다. 

홈키파를 뿌려 기절을 시킨 후 바깥으로 던졌다.

몇 시간 후, 욕실 안 세탁기 뒤편에서 죽은 또 다른 지네를 발견했다.

'먼저 잡힌 지네는 죽은 지네 곁을 지키고 있다 내게 잡혔던 것일까?'

순간 지네가 의인화되며 가슴 한편이 짠해졌다.

'왜 지네로 태어나 인간에게 잔인한 죽임을 당해야 했을까?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와 사랑받는 고양이로 태어났다면 좋았을 텐데.'


그 이후로 지네가 눈앞에만 띄지 않기를 바라며, 양평집에 도착하면 욕실 문을 열기 전에 발로 쾅 소리를 내 도망갈 시간을 준다.

한밤중에 욕실을 여는 일도 최대한 삼간다.



벌레와 전원살이의 매력


작은 벌집도 여러 번 제거했다. 처음에는 벌이 집을 짓는 광경에 놀라 어찌할 줄 몰랐지만, 

이제는 작은 벌집 정도는 간단히 처리한다.

처음으로 제거했던 벌집이다.


2층 테라스에서 책을 읽던 어느 날, 벌과 비슷한 생명체가 내 주위를 맴돌았다.

캠핑의자를 살펴보니 뒤쪽에 작은 벌레집이 있었다. 떼어낸 벌레집에서 애벌레 몇 마리가 쏟아졌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들을 어미와 이별시킬 수밖에 없었다.


3년이 흐른 지금, 벌레 한 마리 없는 서울집이 비정상처럼 느껴진다.

벌레와 완벽히 동고동락은 못하지만, 극심했던 공포는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중이다.


벌레에 대한 공포보다 전원살이의 매력이 월등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텃밭을 가꾸고 꽃을 심고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경험은 벌레와의 갈등을 뛰어넘는 

참된 기쁨을 안겨준다.

전원살이는 벌레와의 전쟁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오늘도 나는 시골집에서 자연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작가의 이전글 잡초의 철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