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의 정원
챕터 10. 장면을 접은 종이비행기의 디자인 부서
여자는 책이 흥미로운 듯, 계속해서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한편, 이집트 장신구를 걸친 화려한 옷차림의 여자가 체스판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킹 말을 움직이며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금빛으로 장식된 방 안, 체스판 위로 이브의 잉크 한 방울이 떨어졌다. 잉크가 체스 말에 스며들며, 창밖을 응시하는 장교의 서재가 비쳤다. 잉크에는 장교의 서재가 담겨 있었다.
체스를 마친 여자는 방을 나와 어두운 동굴에 들어섰다. 화려한 방과는 대조적인 어둠 속에서, 그녀는 만족스럽지 않은 듯 팔을 들어 동굴 벽의 조명을 향해 제스처를 취하자 조명들이 한순간에 모두 켜지며 동굴을 환하게 밝혔다. 그녀는 벽에 손을 짚고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녀는 빨간 드레스를 입은 크리스틴 이브로 변신했다. 그녀가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넘기자, 흩날리던 머리카락이 다시 검은 드레스를 입은 이브의 것으로 변했다.
이브가 뒤를 돌자, 동굴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물에 젖은 목재 냄새와 함께 서늘한 새벽의 달빛이 서재를 비추고 있었다. 그 서재 안에는 이브의 연인인 남자와 번역가 크리스틴이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인식하지 못한 채, 각자의 책상에 놓인 회전목마에 적힌 자신들의 이름을 읽고 있었다. 회전목마는 손잡이를 돌리면 중앙 기둥에서 구슬이 나오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남자는 가느다란 손가락 끝으로 손잡이를 천천히 만지며, 오랫동안 기다린 연인을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돌렸다. 이내 빛나는 구슬이 달칵하며 나왔다. 크리스틴도 자신의 회전목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돌리지도 않은 손잡이가 저절로 돌아가는 장면을 보고, 손잡이가 끝까지 돌아가 구슬이 나오는 순간 공포에 휩싸였다. 남자 역시 맞은편 책상에서 크리스틴의 회전목마가 돌아가는 것을 눈치챘다.
크리스틴이 구슬을 펼치자, 반짝이는 투명한 은하수가 펼쳐지고, 크리스틴이 서재에서 사라졌다. 투명한 은하수 속에서 높은 동상의 벽에서 크리스틴의 발아래로 남색 우주 도시가 내려다보였다. 그 장면은 번역가의 눈에서 반사되어 크리스틴의 눈동자에 담겼다. 그 순간, 남자의 앞에는 빛나는 삼각형의 형상이 나타났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 삼각형 모양의 빛에 닿았지만, 빛은 곧 깨져 유리 조각처럼 서재 바닥에 떨어졌다.
이브는 크리스틴이 사라진 책상 앞에서 자신의 연인을 바라본다. 남자는 이브를 볼 수 없다. 남자는 그 사실을 옛 저녁에 알아차리고서도 보이지 않는 자신의 연인을 사랑했다. 그렇게 마음먹었다. 이브 역시 유령의 연인을 자처한 이 가엾은 남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브는 남자를 위해 서재에 있는 검은 피아노에 앉아 자주 연주를 하곤 했다. 남자는 피아노의 선율이 머릿속에 들려오면 피아노 앞에 가 앉아 머릿속에 울리는 선율을 악보에 그려내고, 또 자주 연주해 보았다.
남자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이브를 한참 동안 붙잡아 두었지만 곧 멈추게 되는 피아노 연주는 남자가 자주 바다에 빠지는 악몽을 꾸다가 잠에서 깨 울음을 흘리는 것을 바라보며 이브는 떠날 때를 직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