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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커피챗 - 끝없는 밸런스 게임

똥 맛 카레 vs 카레 맛 똥

by 수풀림

'똥 맛 카레 vs 카레 맛 똥'

이 둘 중에 꼭 하나를 골라야 되는 상황이라면, 여러분은 어떤 쪽을 택하시습니까?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시절, 꼭 밥상에서 이런 질문을 하곤 했어요. 규칙은 단 하나, 무조건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한다는 것. 두 선택지 모두 상상만으로도 끔찍해져, 답을 피해 화장실로 도망가곤 했죠.

그런데 놀라운 건, 직장인의 현생에서도 이런 황당한 질문들을 계속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이에요.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지금부터 소개해드릴 이야기를 읽다 보면, 아마 마지막엔 고개를 끄덕이고 계시지 않을까 싶네요.


옛 직장 동료였던 A의 사례로 시작해볼게요.

무엇보다도 '성장'이라는 가치에 매우 목말라있던 A는, 성장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직을 결심하고 행동에 옮겼어요. 결단력도 있었고, 실행력도 뛰어난 사람이었죠. 첫 직장이던 국내기업을 3-4년 정도 다닌 후, 외국계 회사로 이직했어요. 기존 회사의 규모가 훨씬 크고 탄탄했지만, 이제 막 새롭게 시작한 회사에서 더 많은 것들을 배우며 경험하고 싶었거든요.

다행히 A가 들어간 회사는 실제로 매출도 꾸준히 성장했고, 직원 수도 빠르게 늘어났어요. 매일이 다이내믹했고, 그 속에서 ‘회사와 함께 성장한다’는 짜릿한 감각을 맛볼 수 있었어요. 다양한 업무를 하며 지칠 때도 있었지만, 자신이 주도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꼈어요.


하지만 기업이란 끊임없이 변화하는 곳이죠.

시간이 지나며 규모가 늘어나자, 유연했던 기업문화는 사라지고 대기업의 시스템이 그 자리를 차지했어요. 자율적이고 자유롭던 조직이, 점점 딱딱해지고 원칙 중심으로 바뀌어가기 시작했어요. A는 처음엔 이런 변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했지만, 직원들을 향한 통제가 날로 심해지자 두 번째 이직을 결심했어요.

A가 선택한 기업은, 작은 스타트업이었어요. 직원 수는 한 손에 꼽을 만큼 아직 적었고, 제대로 된 사무실조차 없는 작은 조직이었죠. 하지만 A는 오히려 그 점에 매력을 느꼈어요. 그녀가 중요시하던 '성장'의 기회를 발견했거든요. 전 직장과는 달리, 주도적으로 일을 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고(오히려 칭찬을 받고), 새로운 업무를 배울 수 있고(비록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지만), 잘만 하면 승진의 기회도 빨리 찾아올 것 같았어요(아무도 확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이직 3개월차인 A를 오랜만에 만나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나 미칠 것 같아. 괜히 옮겼어. 다시 나와야 되나?"

A는 대뜸 이렇게 말을 꺼냈어요. 저는 진심으로 그의 이직을 응원하고 축하했던 터라, 일단 심장이 벌컹거렸죠. 하지만 덧붙이는 설명을 들어보니, 그럴만 합디다. 일단 회사에 시스템이란 게 하나도 없고, 그래서 일 처리도 고객응대도 주먹구구식이라네요. 경력직이라 어차피 알아서 일 할 각오로 이직했지만, 아무도 무슨 일을 해야할지 알려주지 않았다 했고요. 젊은 상사는 의욕은 넘치지만 경험은 부족해, 그가 제시하는 방향성이 이상한 적도 많았대요. 또한 이것도 오래된 경력직이라 더 민감하게 느낄 수도 있는 건데, 만약 자신이 성과를 못 내면 내가 곧 쫓겨나거나 회사가 몇 달 안에 망할 수도 있겠다는 경각심이 확 들었대요. 오죽하면 견딜 수 없이 답답해서 뛰쳐 나왔던 전 직장에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었다고 하네요.


단순히 비교하자면 이 문제는 '대기업 vs 스타트업'의 특징이라 치부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직장인에게 주어지는 대부분의 선택지가, 마치 '똥 맛 카레 vs 카레 맛 똥'처럼 쉽게 택하기 어려운 복잡미묘한 게임 같다고 생각해요. 최악의 상사 밑에서 괴로워하다가 용기 내어 옆 부서로 옮겼는데, 막상 가보니 여기는 업무 강도가 살인적이었 경우.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다가 두 자리수 연봉 인상을 하고 간 회사는, 알고 보니 직장인들의 무덤 같은 조직이었던 경우. 워라밸을 챙기려고 안정적인 조직으로 이직했는데, 매출이 계속 떨어져 결국 권고사직을 받은 경우.

비단 이직 사례 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하는 크고 작은 선택들도 마찬가지에요. 하다 못해 오늘 몸이 좀 안 좋은데 회식에 참석해서 상사의 눈 밖에 벗어나지 않는 게 나을지, 집에 가서 내 건강부터 챙겨야 할지 선택하는 것 조차도 밸런스 게임인거죠.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요?

밸런스 게임에 정답이나 오답은 없다는 점이에요. 결국 남는 건 오롯이 '내 선택' 뿐이라는 점. 그 선택을 하기까지는 나만의 고민이 있었을 것이고, 그만한 이유와 맥락도 있었겠죠.

겉으로는 다른 사람들은 완벽한 선택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누구나 이런 선택지 앞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며 결정을 내려요. 다만, 선택 후에 후회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까요. 설령 그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었을지라도, 거기서 얻는 경험과 통찰은 소중한 인생의 자산이 될 거에요. 돌아보면 실패라 여겼던 순간조차 다음 길을 고르는 이정표가 되어주곤 하죠. 선택은 늘 불안과 후회를 동반하지만, 결국 그 속에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요.

직장인의 밸런스 게임은 아마도 회사를 다니는 동안 계속될거에요. 그러니 중요한 건 완벽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 선택을 끝까지 책임지고 살아내는 태도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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