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
"내가 너무 예민한건가? 그런데, 아까 봤지? 나한테만 엄청 화내는 거."
사장님과 미팅이 끝나고 회의실을 나서는 길, A팀장이 저에게 귓속말로 속삭입니다. 사장님이 요즘 꽂혀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중간 발표를 하는 자리. 총괄 책임자 A는 주말도 없이 몇날 며칠을 준비했어요. 그러나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사장님은 A에게 칭찬은 커녕 질책만 쏟아냈어요.
"아니, 지금 나한테 뭘 말하려고 하는거야? 이게 잘했다고 갖고 온 자료에요? 내가 이런 말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중략)...당신이 책임자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
반면 관찰자로 참관한 B팀장이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자,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어요.
"오, 그거 참 좋은 아이디어네. A팀장, 이 의견 반영해서 다시 만들어 오세요."
그 상황을 지켜보던 A와 다른 참석자들의 얼굴은 점점 똥 씹은 표정이 되었어요. B가 얘기한 건, ChatGPT가 추천했을법한, 말인지 방구인지 모를 내용이었거든요.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채로, 아무말이나 한거였죠.
누가 봐도 A에게만 유독 가혹한 사장님의 잣대.
하지만 애써 선의의 거짓말을 했어요. 상처에 소금까지 뿌릴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럼 너무 쓰라리잖아요.
"에이, 아냐~ 사장님 오늘 저기압이라서 그런거야. 기분 좋을 때 들어갔으면 바로 통과했을텐데 아쉽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제 무의식에서는 애써 묻어두었던 작년의 트라우마가 스멀스멀 올라왔어요. 실은 저도 비슷한 일을 겪었거든요. 당시 우리 부서에 새로 오신 전무님은, 저를 탐탁치 않아 하는 것 같았어요. 제가 이 부서에서 7년간 해왔던 경험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견을 드려도, 꼭 이렇게 답하셨죠.
"그래서요? 그건 예전 얘기잖아요."
반면, 전무님보다 6개월 정도 먼저 입사한 팀장 C가 발언을 하는 경우, 어떤 의견이건 바로 수용하셨어요.
"아, 그렇겠네요. 그럼 C 팀장님이 제안하신대로 가보시죠."
C팀장은 이 업계도 모르고, 고객도 모르고, 우리 회사도 잘 모르는 중고 신입이었음에도 불구하고요. 동료 팀장들이 아무리 C팀장 의견에 다같이 반대해도, 전무님은 늘 C의 손을 들어 주셨어요.
처음 한두번은, 그럴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전무님 방문 앞 자리에 앉아서 대기했다가 화장실까지 쪼르르 같이 가는 C를 보며, 저렇게까지 노력하는데 예뻐 보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했죠. 전무님의 생각에 맞춘 전략도 다시 짜보고, 전무님이 좋아하실만한 것들을 관찰하고 궁리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그 어떤 노력도 별로 소용없더군요. 그가 생각하는 방향성과 효율성의 범주에, 저는 애초부터 빠져 있었던거였어요. 그것도 모르고 저는 참 부단히도 애썼어요.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그의 입맛에 맞게 바꾸어 고쳐 나가려고 했어요. 어떻게든 리더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말에요. 당시에 제가 왜 그렇게 했나 생각해보니, 두 가지였던 것 같아요. 상사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과, 그가 내 팀원들을 좋게 봐주었으면 하는 바램. 당시 전무님은 저를 넘어, 제 팀원의 행동까지 지적하며 싫어했어요. 저는 그 상황 자체가 너무 괴로워, 팀원을 더 잘하게끔 채찍질하고, 일부러 전무님께 팀원을 칭찬하거나 우리 팀이 잘했던 일들을 더 많이 어필했어요. 물론,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요.
사장님께 왕창 깨지고 나온 A에게는, 차마 전하지 못한 말이 있어요.
어떤 상사에게나, 뭘 해도 참 예뻐 보이는 팀원이 있고 뭘 안해도 괜히 미워 보이는 팀원이 있다는 것을요. 겪어보니 그렇더라고요. 저도 팀원들을 공평하게 대하려고 애쓰지만, 그들의 눈에는 아마 아니었을거에요. 그런 상사의 속마음이 가끔 무의식적으로 행동으로 튀어 나와, 팀원들을 괴롭게 하더라고요.
여기에 추가해 A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만약 상사가 나만 미워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면, 자책은 절대 금물이라고. 물론 팀원들이 잘못 행동해 상사가 나무라는 경우도 많지만, 어떨 때는 단순히 상사의 편견과 편애 때문에 이런 결과가 발생하기도 하거든요. 여기에 더해 상사가 감정기복이 심하거나, 인격적으로 별로일 때도 마찬가지고요. 그건 팀원들이 해결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에요.
A도 예전의 저처럼, 어떻게든 사장님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많이 노력했어요. 하지만 결말이 늘 비슷하자,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해야할지 엄청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지켜보니, 책임감이 큰 사람들일수록 자신에게 모든 화살을 돌리는 것 같았어요. 살면서 잘한다는 칭찬을 많이 받아온 사람들일수록, 적극적인 노력으로 자수성가를 한 사람들일 수록 더더욱요. 팀장 자리까지 올라갔다는 건, 어느 정도의 사회적인 인정을 기반으로 한 거잖아요. 저는 처음으로 상사의 미움이라는 걸 경험하고, 많이 좌절했었어요.
법륜스님은 상사와 갈등 문제로 고민하는 직장인에게, 이런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내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건 뭘까요? 나 자신일까요, 직장 상사일까요?"
우리의 번뇌가 생기는 지점은, 내가 고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거라고 말이죠.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지만, 여전히 현생을 살아가는 직장인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말입니다. 아무리 원치 않더라도, 상사 얼굴은 계속 보며 회사 다녀야 되잖아요. 그가 나를 별 이유도 없이 미워하는 것 같은데, 도대체 내가 뭘 어떻게 해야되냔 말이죠.
저도 뭐 뾰족한 수는 없지만, 제 마음을 안정시켰던 경험 하나 공유드려요. 바로, 상사와 나 분리하기. 물리적 분리가 어려우니, 마음만이라도 의도적으로 멀리 하는거에요. 그의 화살을, 나 개인에 대한 화살이 아니라 업무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 들이려 노력했어요. 나와 회사는 동일하지 않다고 스스로 주문을 외웠어요.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자존감은, 회사 밖에서 찾았죠.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 매일 조금씩 시도해보는 취미생활,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기 등등.
지난번 커피챗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은 결론을 반복하게 되네요. 만약 그래도 안된다면? 당장 헤어지시라고요. 여러분은 다른 곳에서 좋은 상사 만나서, 더 잘 되실겁니다! 제가 보장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