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희정 Oct 29. 2022

누구보다도 비현실적이면서  누구보다도 현실적인 사람

하루 종일 이루어질  없는 

비현실적인 상상을 하면서도 

누구보다도 현실적으로 살고 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지중해 사진을 들여다보며

뜨끈한 모래사장에 깔린 

보드라운 비치타월이 되는 상상을 하면서도

부동산과 재테크 관련 유튜브를 꼬박꼬박 챙겨보고 

바지런히 아이 학군과 최신 사교육을 검색해본다.


에릭 로메르 감독의 영화 '해변의 폴린느' 

'녹색 광선' 보며 진정한 사랑으로 가득  

영롱한 마음을 기꺼이 보듬지만

한편으로는 절대 손해보지 않는 인간관계를 위한 

처세술 관련 책을 밑줄까지 쳐가며 정독하기도 한다


모순이 가득한 삶의 방식.


아무렇게나 살아가던 이십 대의 비현실적인 사람은

환희의 팡파르가 울려 퍼지는 환상 속을 헤매며 

이룰  없는 꿈을 꾸었다. 종종 행복했고 아주 가끔 슬펐지만 자주 배가 고팠다.


배고픔을 잊기 위해 환상 속에서 빠져나온 삼십 대의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 채 현실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바빴지만 바쁘지 않았고 

많아졌지만 많아지지 않았다.

가졌지만 가진 게 없었고 해냈지만 해낸 게 없었다.

종종 배가 불렀지만 자주 마음이 고팠다.  


다시 비현실 속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완전히 들어가진 못했다.

예전처럼 배고플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누구보다도 비현실적이지만 

누구보다도 현실적인 사람이 되었다.  

이전 05화 어떤 날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