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아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다. 차를 마시고 시시콜콜한 수다를 떠는 가벼운 자리였다. 나는 사회성이 다소 떨어지기에 컨디션에 따라 이런 자리조차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가거나 군더더기 없이 세련되게 의견을 제시하는 능력이 없기에 대화 도중 일어날 불미스러운 일들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다. 의식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말이 많아지면 의도한 바와 다르게 아무 말이나 내뱉어버리고 만다. 분명 ‘그 일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그게 옳겠네요’ 라던가, ‘저는 안 그런데요’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저도 그래요’ 하고 말하는 식이다.
그날도 그랬다. 처음에는 분명 고요하고 정갈한 상태였다. 머릿속의 대화 시스템에는 미색의 얇고 고운 천이 덮여 있었고, 따뜻한 공기만이 부드럽게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점차 분위기가 무르익고 발언권이 많아질수록 대화 시스템의 컨트롤 버튼에는 붉은 경고등이 깜빡깜빡거리기 시작했다. 급류 같은 대화의 핑퐁 속에서 나는 공이 오기도 전에 허공에 스윙을 날리는 꼴로 아무 말이나 하기 시작했고, 결국 과열된 시스템은 삐----소리를 내며 멈춰 버렸다. 안전망이었던 미색의 천은 모두 걷히고 말았다.
이게 말이다, 내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아닌 경우에는 시스템 오류가 더 심각하고 빠르게 찾아온다. 그날 이야기의 주제는 ‘자식’이었고 화자는 ‘나’였다. 37년을 살아온 자신의 인생에 대해 얘기하라고 해도 버벅거릴 판에 고작 7년을 함께 한 아이에 대해서 뭘 그리 잘 안다고 떠든단 말인가. 더군다나 나같이 말로 주위에 민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은 자식도 예외가 아니다. 이 이야기가 아이에게 미칠 영향 등 한 마디 한 마디에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하고픈 말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입 안에 머무름과 동시에 혀를 살살 굴려 구석구석 다듬는 작업을 거친 후 내뱉는다는 것, 이건 정말이지 피곤한 작업이다. 다듬기가 내뱉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일어난 참사. 생각은 많으나 정리가 안 되는 사람의 말로.
해가 저물고서야 자리는 끝이 났다. 분위기는 좋았다. 화려한 언변과 말끔한 시선처리로 흡족한 대화를 한 몇몇 사람들의 표정은 참 밝았다. 나는 그저 내 입술 끝의 경련을 누군가가 포착하지 못했길 바라며 서둘러 작별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고철덩어리가 된 로봇처럼 삐그덕 거리며 집으로 돌아와서는 반갑게 인사하는 가족을 뒤로한 채 그대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허무함을 휘감은 몸이 빙글빙글 돌면서 매트리스 속으로 묻히기 시작했다. 그대로 깊게 잠이 들었다. 자는 동안 만신창이가 된 대화 시스템들은 천천히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다음에는 좀 더 부드럽게 돌아가도록 부품 하나하나에 섬세하게 기름칠을 해야겠다. 그리고 구김이 생긴 천을 탁탁 털어 좀 더 빈틈없이 덮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작업은 아마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