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을 사러 자주 들르는 동네 마트가 있다. 물건이 그리 싱싱하지도, 집과 가깝지도 않지만 마음을 사로잡는 흥미로운 포인트가 존재한다. 구도심 골목 어귀에 위치해있어 고객층은 주로 고령의 어르신들인데, 덕분에 연륜이 녹아있는 위트 있는 대화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연륜이 녹아있는 위트 있는 대화'.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범접할 수 없는 눅진한 어른들의 대화에 환상을 가지고 있는 나는 이것을 위해 기꺼이 그곳으로 날아간다.
그날은 흰머리가 성성하고 바짝 마른 체형에 구하기도 힘들 법한 상아색 잠바를 툭 걸쳐 입은 할아버지와 빠글빠글한 파마머리에 강한 기가 흐르는 얼굴, 세상 요란한 꽃무늬 상의가 찰떡같이 어울리는 할머니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할머니는 마트에 입장할 때부터 굉장히 쿨한 분위기를 풍겼다. 술독에 빠져 살던 골칫덩이 남편은 애저녁에 세상을 떠났고, 자식들은 왠지 공무원으로 훌륭하게 장성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의 뒷짐진 두 손과 꼿꼿함을 넘어서 뒤로 꺾여버릴 듯한 허리, 상당히 파워 넘치는 걸음걸이가 그리 말해주었다. 성미 급한 할머니가 인사도 생략한 채 할아버지에게 말을 건넸다.
- 할머니 : 그 냥반 요즘 안 보여!!!!!!!!!!! 어디 좋은 데 갔어?????????
- 할아버지 : 좋은 데 갔지!!!!!!! 확 죽어브렸어!!!!!
- 할머니 : 왜!!!!!!!!!!!!!!!
- 할아버지 : 아파서!!!!!!!!!!!!!!!
- 할머니 : 으이그.....!!
할머니는 “왜!!!!!!!!!!”라고 고함치듯 물음과 동시에 몸을 홱 돌려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죽음이라는 단어에서 떨어지는 아주 작은 부스러기 한 톨도 묻힐 수 없다는 듯 단호하고 명확한 몸놀림이었다. 할아버지는 그러거나 말거나 무심한 표정으로 매대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느린 제스처로 과일을 하나하나 고르고 있었고, 그렇게 둘은 서로를 제대로 마주할 새도 없이 대화를 마쳤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한동안 근처를 서성였다. 좋은 데 갔다면서 '확' 죽어버렸다라던가, 아파서 죽었다는데 '으이그'라고 어린아이 타박하듯 죽은 이를 나무라는 듯한 모습에 '풋'하고 웃음이 삐져나왔다. 블랙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처음에는 속 시원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차가워지는.
할머니는 마트에 와서 왜 물건은 안사고 스몰 토크만 나누고 가버린 건지 -> 할아버지는 저렇게 안쓰러운 느낌의 잠바를 어디서 산 건지 -> 나이가 들면 죽음을 저리 쿨하게 야기할 수 있는 건지 -> 아니면 자신도 머지않았다는 생각에 차마 말을 잇지 못해 닿자마자 재빨리 토스하는 건지. 바지 주머니 안의 가느다란 실밥을 검지 손가락에 감았다 풀었다 하며 생각의 꼬리를 따라가다 알베르 카뮈의 '결혼.여름'에서 읽었던 죽음에 대한 구절에 다다랐다.
"항상 놀랍다고 여겨지는 사실은, 우리에게는 다른 문제에 대해서라면 언제나 세련된 의견이 분분하면서도 죽음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생각은 매우 빈약하다는 점이다. 죽음은 그저 좋은 것이거나 나쁜 것이고 나는 그것에 대하여 무서워하거나 아니면 어서 죽음이 오라고 부르고 있다는 정도가 고작이다."
그렇다. 온갖 풍파를 겪고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천하무적으로 레벨업 한 그녀 역시 아직 죽음에 대한 세련된 의견은 찾지 못한 것이다. 물건을 사러 마트에 들르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안부를 묻고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순찰을 돌 듯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닐까. 불안감을 잠재울 자기만의 의식의 일환으로. 알베르 까뮈의 말대로 죽음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그저 좋은 것이거나 나쁜 것이고, 그것에 대하여 무서워하거나 아니면 어서 죽음이 오라고 부르고 있다는 정도가 고작인 것 같다. 갑자기 동네 마트에서 알베르 까뮈를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일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