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연, 만남 (1989)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 상황에 어울리는 음악을 집요하게 선곡하는 버릇이 있는데, 노사연의 <만남>은 오랫동안 내 장례식에 틀고 싶은 곡이었다. 이보다 더 뜨거운 인사가 있을까 싶어서.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장례식 장면에서 베이 시티 롤러스의 곡이 나오듯, 내 장례식에는 노사연의 곡이 나와야 이치에 맞지 않나 싶기도 하고.
요즘은 잘 쓰지 않는 표현이지만, 여하튼 ‘성인가요’의 매력에 눈을 뜬 것은 최근의 일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익숙한 멜로디와 평면적인 사운드에 가려져 있던 성인가요 가사의 아름다움에 연신 감탄하고 있다.
나훈아가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면 나 원 참, 하고 뒷머리를 만지게 되고, 김수희가 말이 없던 그 사람 자꾸만 멀어지는데 하면 으음, 하고 눈가를 만졌다가,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하고 패티김이 노래를 시작하면 그만 두 손 들고 항복하게 되는, 뭐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유독 내 마음을 울리는 것은 노사연의 <만남>이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로 시작하는 그 가사. 내 장례식이 다가와서 그런 것은 아니고, 몇 달 전 아기가 생긴 뒤로 자꾸 그 노래가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재작년 겨울, 아내와 나는 유독 밤 산책을 많이 했다. 일부러 옆 동네까지 가서 붕어빵을 사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집으로 돌아오다가,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면 멈춰서 별자리 앱을 켜고 한참 동안 밤하늘 구경을 했다. 저건 북두칠성이고, 저게 오리온 자리… 소크론 자리가 뭐지? 하는 나날들 중에, 유독 화성이 자주 보였다. 저게 화성이래, 이거 믿을만한 건가? 유료 어플인데 맞지 않을까? 화성이 참 밝은 별이구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기가 생기려고 그랬던 것 같다. 갑자기 선물처럼 찾아온 아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해 보면 분명 전조가 있었고, 우리는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부가 동시에 꽂혀서 매일 듣던 백현진의 곡 제목을 따서 태명은 ‘모과’로 지었다.
그리고 상상한다. 심수봉의 노래처럼 먼 옛날 어느 별에서 사랑을 주기 위해 모과가 우리에게 와 준 것은 아닐까. 모과가 화성 언저리에서 우리를 지켜보다가 음, 저 부부는 야식을 먹으러 저렇게 열심히 걸어 다니는 것을 보니 저 집에 가면 밥 굶지는 않겠군, 해서 와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자녀 계획 하에 아기를 가졌냐고 물으면, 슬쩍 웃으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고 대답하곤 하지만, 사실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은 함께한 시간들이 쌓여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어날 때가 되어 일어난 일이라고.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고, 애초에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던 일이라고.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고.
아, 이제 내 장례식 BGM 선곡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 하겠다. 당일에 음악을 틀어야 할 사람도 생겼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