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기이한 형태로 남에게 신세를 지는 상황이 그려지곤 한다. 이웃이 밥 짓는 시간에 맞춰 빈 밥그릇을 들고 쳐들어간다거나, 이웃이 출근한 틈을 타 그의 냉장고에 있는 맥주를 몽땅 먹어치우는 식이다. 일본의 문화를 잘 모르긴 하지만 극도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성향이 전반적으로 깔려있다 보니,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억눌린 욕망이 코믹하게 그려지는 걸까나.
일본인에게 신세란, 돈처럼 꾸고 나면 반드시 갚아야 하는 성질의 것일까. <고독한 미식가>에는 주인공에게 전화를 걸어온 이가 어려운 부탁을 하며 "전에 당신이 나에게 신세를 졌으니 이제는 갚을 차례"라고 한다. 같은 성당에 다니던 재일교포가 지난 연말에 인사말로 "신세가 많았습니다"라고 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