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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Sep 09. 2019

#8. 맛있는 건 나중 문제


"요리는 생존기술이다."

어느 책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고, 과연 정확하게 기억하는지도 확신할 수 없지만 칼을 쥐고 도마 앞에 설 때마다 내 머릿속을 맴도는 문장 하나.  


요리를 배우고 있다고 말하면, 자판기 버튼을 누른 것처럼 바로 "요리 좋아하시나 봐요?" "요리 잘하시겠네요?"와 같은 질문이 되돌아온다. "저는 영 요리엔 소질이 없어서..." 얼굴에 빗금을 드리운 수줍음 섞인 고백도 종종 듣는다. 이때 요리는 쉽사리 취미, 혹은 특기의 영역으로 분류된다. 당신이 만약 물에 빠졌는데 수영을 할 줄 모른다면? "수영 배운 적이 없어서..."하고 쭈뼛거리며 맥없이 물에 가라앉아야 할까? 되든 안되든 당장 손과 발을 휘저어서 어떻게든 뭍으로 가려고 할 것이다. 당장 숨을 쉬지 못하면 죽는 것처럼, 제대로 먹지 못하면 사람은 죽는다. 한 인간의 삶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수영과 요리는 분명 동급의 생존기술이지만, 수영과 요리를 같은 선상에 놓기는 좀 애매해 보인다. 여전히 요리는 취미나 특기의 카테고리에 한 발을 걸치고 있는 것만 같다. "요리 못한다고 뭐 큰일이야 나겠어요..."하고 어디선가 볼멘소리도 들려오는 것 같고.



요리는 정말 생존기술일까?


인간의 생존에 즉각적으로 관여하는 것이 바로 먹는 것이고, 요리는 그 먹는 것을 마련하는 행위인데 왜 생존보다는 취미나 특기의 성격을 띨까? '요섹남(요리를 잘하는 섹시한 남자)' '요알못(요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같은 신조어도 같은 연장선이다. 인간이면 남자든 여자든 요리를 해야 한다. 잘하고 못하고는 나중 문제다. 핵심은 요리를 돈 주고 살 수 있다는 것, 대신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수영실력은 돈 주고 살 수 없지만 요리는 굳이 본인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다. 요리는 시간과 돈, 노력, 그리고 실패에 대한 리스크가 따른다. 이 모든 요소를 본인이 직접 짊어질 바엔 그냥 돈만 투자해 예측 가능한 결과물을 손쉽게 얻는 편이 낫다. 요리를 배우고 있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 잘한다는 말은 한 적이 없다 - 는 말을 하면, 으레 내게 되돌아오는 또 한 가지가 있다. 마치 내가 아주 큰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처럼, 상대방은 내게 뭔가 대단한 것을 알려주겠다는 양 확신에 찬 어조로 강하게 말한다. "사 먹는 게 더 싸요!"


내 또래에게 그동안 한 번도 밥을 직접 지어본 일이 없다는 말을 듣곤 깜짝 놀란 적도 있다. 자취 몇 년 차에 접어들지만 밥솥 하나 없는 사람도 있었다. "밥솥이 없다고요?"하고 물으니 "밖에서 사 먹으면 되죠." 하는 대답이 통-하고 경쾌하게 돌아왔다. 매 끼니를 내 손으로 지어먹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상황이 되면 집에서 요리를 하려는 내가 옛날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집에서 한걸음만 나가도 편의점이 너덧개고, 편의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끼니만 해도 상당하다.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배달되지 않는 음식이 없다. 이쯤 되면 요리는 정말 생존기술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요리하면서 생긴 손등의 화상 자국이나 칼에 베인 흉터를 보면 이 의문에 착잡한 마음이 더해진다.



내 요리에는 없고 사찰요리에는 있는 것


요리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굳이 '잘'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장차 식당을 차릴 것도 아니고, 자격증 콜렉터도 아닌데 어느 정도 먹을만하면 그만이다 싶었다. 어릴 때부터 요리책 사모으고 들여다보는 것이 취미라 그런지 밥도 곧잘 했고 국도 곧잘 끓였다. 여유가 생기면 빵과 쿠키도 구웠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 상을 차려주면 밥을 두 그릇씩 비웠고, 레시피 없이 처음 해본 갈비찜도 손님들이 싹 먹어치웠다. 내가 한 음식을 먹고 싶다는 친구의 이야기에 친구네 사무실에 재료를 사들고 찾아가 점심 식사를 차려준 적도 있고, 중국 여행을 하다가 만난 중국인 가족의 요청에 의해 주방에 서서 난생처음 중식도를 들고 떡볶이 비슷한 것을 만들어 대접하기도 했다. 한국인의 기상의 보여주겠다는 이상한 자긍심에 취해, 땀을 뻘뻘 흘리며 최선을 다해 10인분을 만들었다. 나를 가운데 앉혀놓고 레시피를 받아 적겠다며 모여든 중국 아주머니들의 눈빛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동안 내게 요리는 늘 결과였다. '모로 가도 서울면 가면 된다'였다. 서울, 안되면 서울 근처까지 어떻게든 갔다고 믿는다. 요리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으면서, 정신을 차려보니 사찰요리를 배우겠다고 낯선 사람들 틈에 섞여 있었다. 사찰요리에 대단한 비기나 비법이 있었던 것아니다. 그런데 사찰요리에는 '왜'가 있었다. 그 '왜'에 대한 답을 나는 전혀 몰랐기 때문에 자꾸만 갔다. 처음엔 한 달에 한번 가던 것이 한 달에 두 번이 되고, 일주일에 두 번이 되고, 네 번이 되기도 했다.


어느 날, 한 스님이 갑자기 "왜 김밥집에서 김 위에 깨를 뿌릴까요?"하고 물었다.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들기름에 야채를 볶으면 굳이 깨를 안 뿌려도 된다는 게 스님의 대답이었다. 대답 치고 시시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물음이었고, 그런 물음은 계속 반복되었다. 호박과 당근 중 어느 것을 먼저 볶을까요? 굵은소금과 가는소금 중 어느 것을 쓸까요? 이럴 때는 조청을 써야 할까요, 물엿을 써야 할까요? 설탕이 꼭 몸에 나쁠까요? 왜 이 요리에는 이러한 재료를 쓰고, 왜 이러한 양념을 곁들여내는지, 대체할 재료는 없는지, 같은 재료로 만들 수 있는 다른 요리법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배우고 들었다. 사찰요리는 어쨌든 서울로 가려는 내게 '왜 서울에 가는지'를 고요히, 그러나 끊임없이 물었다.



모두 백주부가 될 필요는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맛이 있다. 맛의 표본이랄까, 기준점이랄까 하는 것들. 검색창에서 요리 하나만 검색해도 연관검색어에 백종원, 김수미 레시피가 뜬다. 그들이 오랜 시간 쌓아온 노하우를 쉽게 정리해 공유해주니 참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레시피만 따라 하면 간단하고 안전하게 백종원, 김수미 손맛을 비슷하게나마 흉내 낼 수 있다. 평타는 칠 수 있다. 그런데 '왜'가 끼어들 자리가 빠진다. 왜가 빠지면 집중할게 결과밖에 없다. 맛이 없으면 안 되니까, 레시피에서 하라는 대로 했는데 실패할까 봐 초조해진다.


보통, 수업에 참가한 스물 남짓의 사람들을 앞에 두고 스님이 시연을 하는 것으로 강의가 진행된다. 스님이 시연을 하는 중에 어떤 사람이 물었다. "스님처럼 이렇게 하면 맛있겠죠?" 스님이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맛없으면 어때요. 다 내입에 들어가는 건데. 레시피 너무 믿지 마세요. 그냥 마음 편하게 하세요."


나는 요리를 왜 좋아할까. 왜 친구가 놀러 오면 배달하는 대신 직접 불 앞에 서서 칼을 잡고, 굳이 그 더운 여름날 땀을 뚝뚝 흘리며 자전거를 타고 친구네 사무실에 찾아갔을까. 한국 요리를 먹고 싶다는 중국인 가족에게 왜 손사래를 치며 웃는 대신, 눈을 빛내며 "오늘 저녁 기대하세요!"라는 호기로운 말을 했을까. 답은 명료하다. 요리를 하면 마음이 편하다. 늘 그랬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즐겁게 했다. 요리는 온몸을 움직여서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요리를 하는 동안 비로소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몸으로 매 순간을 감각한다. 계절이 뿜어내는 신선한 색채를 보고, 향을 맡고, 피부로 전해지는 재료의 질감과 온도를 느끼면서. 재료의 손질과 저장을 궁리하고, 조리순서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몇 번이나 복기하고, 불 조절에 신경 쓰고, 뚜껑을 열기 전까지 제대로 되었을까 마음 졸이는 이 모든 순간에 나라는 사람이 제대로 살아있음을 비로소 실감했다.


'그냥 마음 편하게 하라'는 스님의 말이 오래 남았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일정한 맛의 결과를 뽑아내려고 하지 말자. 왜 이렇게 하는지 과정을 궁금해하고, 그 과정 자체를 마음 편하게 즐기는 사람이 되자. 요리는 삶을 사는 태도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섣불리 뭔가가 되려고 하지 말고, 남들이 말하는 정형화된 삶을 살려고 애쓰지 말고, 살아가는 날들의 순간순간을 들여다보고 궁금해하면서, 마음 편하게 살자. 어차피 내 삶인데. 내 삶의 하루하루는 다 내가 먹는 건데.


"요리는 생존기술이다" 이 문장을 조금 비틀어본다. "요리는 생존 자체다." 사 먹는 게 더 싸다는 이의 충고는 "남들이 시키는 대로 살면 더 편해요."와 같은 말로 들린다. 각자가 저마다의 레시피로 즐겁게, 마음 편히 요리하고 삶을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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