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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숲 Aug 25. 2021

일본 씨, 소변기로 장난치지 마세요!

나의 두 번째 해외여행 이야기3

[지난 이야기]
친구와 나는 6년 전 일본 여행을 갔다. 목적지는 후쿠오카. 배를 타고 도착한 그곳에는 휘황찬란한 외국이 아닌, 우리 동네와 엇비슷한 덜 반가운 분위기가 풍겼다. 하지만 그 풍경은 아주 다른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그곳을 더 알아가고 싶었다.




"아노... 스미마셍!" 나는 아주머니에게 예의 바른 얼굴로 물었다.
"하잇!" 그분이 대답한다.
"000와 도코 데스까?" 번화가가 어디 있는지를 물었다.
"adfhjksdhekusdhukahefkuhaskdfhukewsekfhsdjfhe"
이해할 수 없는 언어 폭우가 쏟아진다. 일본어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아.. 스미마셍, 와타시와 칸코쿠진 데스.(저는 한국인입니다)"
"에에에에 소우데스까?(아 그렇습니까)"



괜찮다는 말에도 자신이 더 괜찮다면서 목적지까지 같이 가주셨다. 왠지 죄송해졌다. 함께 걸으며 우리는 빅뱅, 대성, 욘사마, 근짱(장근석님) 등등 몇 마디의 단어로 즐겁게 소통했다. 저러한 단어를 뱉으면 그분은 "에에에에에"라고 하셨고 우리는 "예스예스예스"라고 했다. 그렇게 그분과 웃고 떠들면서 내 에너지는 급속 충전되었다. 역시 나는 사람사람이다. 마지막까지 안내를 해주시고 그분은 상냥한 미소와 함께 떠났다.



우리는 돈가츠도 먹고 라면도 마시고 맥주도 들이키며 푸짐한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현지 사람들과 함께 대화할 기회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길거리에 사람들에게 더 이상 민폐를 끼치긴 싫었다.



그날 저녁 지하상가를 걷다가 나는 소변을 보고 싶어졌다. 친구는 거기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내 화산은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다행히 간발의 차이로 화장실을 발견했고 나는 머리가 하얘진 채로 좌변기 앞에 섰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무렵 갑자기 "이치, 니, 산! 게임 스타트!!"라는 괴음이 들려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앞에 갤럭시 탭만 한 화면이 있었다. 그 안에서 두 명의 캐릭터가 진지한 표정으로 결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저게 왜 대체 저기 있는거냐고


나는 당황했다. '이건 진짜 뭐지?'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들의 피 튀기는 전투를 보면서 나 역시 진지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편의 체력 게이지가 한여름에 마시는 박카스처럼 쭉쭉 떨어져 가고 있었다. 지쳐가는 건 상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 물줄기의 각도는 점점 낮아져 갔다. '안돼. 조, 조금만 더 힘을 내줘!' 이제는 우리 편 캐릭터를 응원하는 건지 내 방광을 응원하는지 헷갈려졌다. 곧 쪼르르 떨어지는 소리가 멈추고 상대의 마지막 펀치에 내 선수가 나가떨어졌다. 그때 화장실을 나오며 느껴진 알 수 없는 패배감에 기분이 조금 안 좋아진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화장실에 있는 그 게임기는 뜬금없었다.




다음 날 친구와 나는 약속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색 봉고차 한 대가 우리 앞에 섰다. 기사가 나오더니 나와 눈을 마주친다. 우리는 그 안으로 말없이 들어갔다. 밖에 있던 몇몇 사람들도 차에 탑승했다. 곧 음침한 느낌의 그 차가 어색한 도로 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무 분위기가 이상한데?" 나는 친구의 귀에다 대고 작게 속삭였다.

"그러니까. 어디 뭐 팔려가는 거 아냐?"


나는 불안함 때문에 졸렸지만 잠에 들지 않고 창문을 응시했다. 그럼에도 차가 이상한 곳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면 저항할 방법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단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조용했다. 그게 나를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차는 어떤 곳에 멈췄다. 다행이다. 목적지에 안전히 도착했다. 사람들이 차에서 조용히 내렸다. 기사님은 도착 차량은 몇 시와 몇 시에 오니까 여기에 모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곳은 유후인이라는 후쿠오카 외곽에 있는 온천마을이었다. 그런 곳에 오고 나서야 '이게 외국이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역시 낯선 곳을 좋아하나 보다.



영화에서만, 만화에서만 보던 일본 온천에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빨리 옷을 벗고 당당하게 탕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왜 자꾸 힐끔힐끔 쳐다보지?"

"그러게. 부러워하나?"


그런 게 아니었다.


우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하얀색 수건으로 중요 부분을 가리고 있었다. 친구와 나는 금세 쑥스러워져 탈의실로 달려갔다. 몇 분 뒤 우리는 네모난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탕에 돌아와 그 노곤노곤함을 즐겼다. 안쪽탕은 뭔가 한국과 다를 게 없어서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야외 온천탕에서 보냈다. 온천 원숭이는 없었지만 그래도 한 폭의 수묵화의 일부가 된 것처럼 몽롱한 그 분위기를 한껏 느꼈다.



잠시 뒤 우리는 잔뜩 익어서 탕을 나왔다. 다다미가 깔려있는 식당에 앉아 우동과 치킨 가라게를 먹으며 뱃속까지 불렸다. 곧 차량 픽업 시간이 다가왔고 우리는 그 검은 봉고와 함께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갈 때는 정말 오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차였지만 다시 탔을 때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편안했다. 그곳 사람들의 기분도 녹아내렸는지 8인승 차량 안에선 소곤소곤하는 소리들이 모여서  나름의 온기를 이루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밤을 우리는 이자까야에서 보냈다. 온갖 종류의 꼬지와 넘치도록 따라진 따뜻한 사케에 친구와 나는 헤롱헤롱해져 간다.




'여행은 결국 취하는 행위가 아닐까?'


익숙하지 않은 공간 위로 뛰어들어 어떤 문화와, 어떤 음식과 어떤 사람에게 흠뻑 취한다. 누군가는 그 흐트러지는 기분이 싫어서 알코올을 멀리한다. 하지만 나는 애주가인가 보다. 그 알딸딸함이 너무 좋다. 술은 금방 깨지만 여행은 기억 속 사진 속에 계속 남는다. 언제든지 꺼내 마실 수 있다.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그 취기가 불현듯 피어올라 지친 마음을 토닥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나는 아직 추억 속에서 회상하는 여행보단, 이슬이 달달하게 맺힌 생맥주처럼 여행지에서 느끼는 그 설레는 시간 자체가 더 좋다. 아... 이 기나긴 먹구름이 걷히고 다시 한번 낯선 곳에 대자로 누워 하염없이 만취하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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