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호빗을, 선택한 거죠?
" In a hole,
in the ground,
there lived a hobbit ".
- 땅 속 깊은 구멍에 한 호빗이 살았다.
피터 잭슨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았던 <호빗>(The Hobbit) 3부작은 다양한 설정과 대사들을 통해 초대박을 쳤던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한핏줄' 임을 거듭 강조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서 '반지의 제왕' 원작소설보다 18년 전에 이미 먼저 출간되었던 이 '호빗' 원작은 정확히 전후로 연결되는 프리퀄이라 보기에는 좀 애매한 부분이 있죠.
당초 J.R.R. 톨킨이 쓴 '호빗'의 출발 자체가 아이들에게 읽어줄 어린이 동화였습니다. '반지의 제왕'의 방대한 세계관이 구축되기 훨씬 이전의 스토리였죠. 아주 작고 짤막한 모험기예요. 핵심적인 내용들만 추려서 빠르게 진행시킨다면 길어도 2부작이면 충분해 보였고 실제로 제작 초기 기획은 그러했다고 하죠.
그러나 결국 시리즈는 최종적으로 2부작에서 3부작으로 늘려 제작이 되었습니다. 이런 외형적 '스펙'으로만 본다면 프리퀄을 표방했던 이 <호빗> 시리즈 역시도 역대급이었던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결과적으로 큰 차이가 없어 보이긴 했죠.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요. 같은 3부작이래도 두 작품이 각각 축약되어 완성되는 과정은 좀 달랐습니다. 방대한 분량을 영상으로 옮기면서 주요 서사구조는 그대로 보존한 채 늘어지는 곁가지들을 깔끔히 쳐냈던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는 달리 이 <호빗>은 오히려 그 반대의 양상을 보였던 거예요. 단 300페이지짜리 원작을 3부작 대하극으로 만들기 위해서 심플했던 스토리에 더 많은 인물들과 설정들이 덧붙여져야 했던 거죠. 그것들에 대한 배경 설명이 또 계속 더해져야만 했습니다.
네, 큰 이야기를 작게 줄여 담은 게 <반지의 제왕> 영화 시리즈였다면 작은 이야기를 늘리고 부풀려 크게 담아낸 것이 <호빗> 시리즈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고정팬층을 제외한 일반 관객들의 시선에선 사실 좀 지루하기까지 했단 반응이 적지 않았습니다. 골수팬 인 저 역시도 솔직히 딴생각에 빠지거나 심지어 졸음이 밀려왔던 장면들이 적지 않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 문을 나설 땐 영상화 그 자체로 감개무량 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시리즈에 대한 전반적인 중론은 대체로 그러했죠. 별개의 판타지 작품으로 본다면 멋지고 뛰어난 작품이지만 역시 <반지의 제왕> 시리즈엔 못 미친다고.
제각각 제기되었던 다양한 형태의 비판들을 취합해보면 대부분 기술적인 부분이라기보단 이렇게 각색, 각본의 측면으로 취합되고 있었죠. 뭐 따져보면 그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태생적으로 장대한 서사극이었던 '반지의 제왕'과는 다르게 '호빗'은 원래 훨씬 더 작고 단순하고 착한 이야기. 빗대 보자면 너무 잘나고 똑똑한 동생을 둔 덕에 여간해선 부모님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힘든 평범한 형님의 모습, 그렇게도 느껴졌어요. 이 3부작 실사 영화 시리즈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보였죠.
무엇이 나를 타락시키는가
탐욕에 먹혀버린 자
탐욕으로 군림하는 자
자신이 누군지도 망각한 자
" 이 정도의 황금이면
슬픔이나 걱정도 곧 잊히지.
나는
단 하나의 금화 한 닢도
결코 나누지 않겠다 "
<호빗>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 '다섯 군대의 전투'를 TV 채널을 돌리다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전투 장면이 끝난 거의 마지막 결말부였죠. 치명상을 입은 난쟁이 왕자 소린(리처드 아미티지)이 죽어가며 주인공 호빗 빌보(마틴 프리먼)와 얘기를 나누던 장면. 모험을 함께 했던 호빗에게 일국의 왕자로서 그가 남기는 마지막 말은 의외로 소박하고 소소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잘 가게 좀도둑 양반.
이제 자네의 책들, 자네의 안락의자가 있는 그곳으로 돌아가게.
나무를 심고, 그것들이 자라는 걸 지켜보며 그렇게 살기를."
새삼 그 대사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져서 며칠 밤 동안 3부작을 다시 정주행 했습니다. 극장판에 없는 추가 장면들이 들어간 확장판 타이틀이라 연달아보면 거의 아홉 시간짜리 대하드라마에 가깝죠. 이번엔 관점을 달리해 보기로 합니다. 이 3부작을 보면서 <반지의 제왕>을 싹 지워보기로 해요. '반지의 제왕에선...', '반지의 제왕이라면...'이란 생각들을 완전히 비우고 이 <호빗> 시리즈만이 품고 있는 것들에만 집중해보기로 말이에요. 스마우그란 강력한 드래곤에게 왕국을 빼앗긴 난쟁이족 왕자 소린이 자신의 부하 열두 명, 마법사 간달프, 그리고 일행이 된 호빗 빌보와 함께 다시 그 왕국을 되찾는 이야기.
영상화가 되는 과정에서 3부작 시리즈의 전체적인 몸집을 키우기 위해 많은 추가적인 인물들, 이벤트들, 그리고 별도의 사이드 스토리들이 덧입혀졌죠. 싹 걷어내 봅니다. 결국엔 '빼앗긴 것들을 찾으러 가는 이야기' 그것만 남게 되죠. 그러면 그 이야기의 중심축엔 어떤 인물들이 남을까요. 이 여정의 명분이자 구심점인 난쟁이 왕자 소린과 이들을 돕게 된 평범한 존재 호빗 빌보 배긴스가 있어요. 결국 이 <호빗> 3부작은 이 두 캐릭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인 겁니다.
니가 가진 모든 게
모두 다 내 거여야 했어
캐릭터의 포지션으로 봤을 때 이 난쟁이 왕자 소린은... <반지의 제왕>에서의 곤도르 왕 아라곤(비고 모텐슨)과 같은 위치로 비견되어야 했죠. 사심 없고 공명정대하며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불의에 맞서고 약한 존재를 보호하려 애쓰는 그런 범생 캐릭터. 하지만 <호빗> 3부작 내내 이 난쟁이 왕자 소린은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좀 있었습니다.
동족 전체가 떠돌이 신세가 되었지만 어쨌든 이미 다른 정착지에서 기반을 닦은 상황이었으니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먹고사는 것 자체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죠. 그러나 자존심 세고 융통성 없고 고집 센 이 왕자는 지나간 그 과거의 영화와 명예, 부를 잊지 못합니다. 놓지 못해요. 망한 나라의 잊힌 왕자임에도 여전히 '금수저' 의식을 떨쳐 내지 못하죠. 그러니 대의를 위해 모두들 헌신하려 했던 '반지 원정대'와는 달리, 내내 무시하던 호빗 빌보 배긴스의 도움으로 오히려 위기 때마다 스타일 구기기 일쑤였던 거예요. 그 와중에 보여주는 고질적인 피해의식과 오만함, 권위 의식, 무례함과 똥고집은 덤이었죠. 그런 그의 캐릭터가 고결하게만 보였던 '반지 원정대'의 아라곤과 겹쳐 보이다 보니 더더욱 시리즈 전체에 대한 상대적인 비호감으로 연결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 그런 비호감의 난쟁이 왕자 소린이 우여곡절 끝에 잃어버린 왕국과 보물을 되찾았어요. 그럼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답게 모두가 하하호호 영원히 행복했을까요? 이 이야기가 진짜로 흥미로워지는 건 바로 이 시점부터라고 봅니다. 왜 그리 되찾으려 했는지에 대한 물음도 싹 망각해버린 채 난쟁이 왕자 소린은 황금으로 상징되는 '권능' 그 자체에 사로잡혀 저지를 수 있는 모든 '뻘짓'들을 다하고 앉아 있는 거죠. 아주 그냥 밉상짓을 골라해요.
똑같은 것이래도 내가 가지면 정당하고 남이 가지면 욕심이라고 우깁니다. 막상 간절히 구하던 걸 손에 쥐었을 때 자신의 곁에서 헌신하던 이들을 원망하고, 의심하고 쳐내려 들죠. 이런 모습과 이런 상황들이 비단 1930년대에 쓰인 이 어린이용 판타지 동화에서나 볼법한 그런 모습에 불과한가요? 아닌 듯합니다. 그래서 완전무결하게만 그려지는 <반지의 제왕> 속 아라곤이나 레골라스 보다는... 종종 내로남불의 이중적 속성을 드러내기도 하는 이 '불완전한' 난쟁이 드워프족들이 우리 실제의 모습과 좀 더 닮아 보여 애틋함이 일기도 하는 거죠.
까칠한 도시의 중간계의 남자, 소린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각고의 우여곡절 끝에 상관없는 수많은 타인들의 죽음을 방관하면서까지 되찾은 그 황금들과 권좌가 무슨 의미가 있나요. 죄책감을 씻듯이 맞이한 그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서야 그는 굉장히 단순하지만 중요한 사실 하나를 새삼 깨닫고 있는 거죠. 그가 진짜 돌아가야 했던 곳은 그 산더미 같은 황금들이 마치 무덤처럼 쌓인 죽은 왕국의 지하가 아니었어요. 서재의 책들과 조그마한 안락의자, 그리고 정원에 심어진 작은 꽃들... 호빗 빌보 배긴스가 내내 그리워하며 다시 누리고팠던 그 평범한 풍경들의 진짜 의미를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결국 다시 돌이키게 되는 겁니다.
제법이군, 빌보 배긴스
그곳에, 가고 싶다
이 <호빗> 3부작은 난쟁이 왕자 소린에겐 빼앗긴 것들을 되찾는 투쟁의 이야기였겠지만, 평온한 삶을 살아가던 호빗 빌보 배긴스에겐 험난한 바깥세상 모험기였죠. 세상 돌아가는 일들에 별 관심 없이 그저 먹고 자는데 열중하고 살았던 그 호빗이 힘든 역경 속에서의 스스로의 잠재력을 깨닫게 되는 성장기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걸 다 가진 순간에 오히려 불행해지고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죽어버린 소린을 계속 지켜봐 온 이 호빗 빌보에게 이 모험들의 진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말입니다, 이 <호빗>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무언가를 얻고, 빼앗고, 쟁취하고 이룩하는데 궁극적 가치를 두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죠. 모험이나 여정길에서 겪는 모든 사건들은 말 그대로 하나의 '이벤트'들일뿐 결국엔 다시 돌아가야 할 귀중한 그 '무언가'를 깨닫게 되는 이야기였어요. 되찾고 빼앗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은 다 놓아두고 가야 할 곳으로 되돌아가는 이야기.
마지막 순간에서야 난쟁이 왕자 소린은 자기가 돌아가야 할 곳이 그 무덤 같은 왕궁, 보물창고가 아니라 자신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던 '동족'들 그 자체라는 걸 깨달은 겁니다. 비록 높고 빛나는 권좌가 없더라도 자신과 동족들이 자리 잡은 그 어디라도 바로 그곳이 진짜 '왕국'이 될 수 있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말이죠. 그래서 책들과 안락의자, 정원에 심어진 꽃들이 가득한 자신의 흙 속 집, 그것들이 기다리고 있는 고향 마을로 돌아가는 호빗 빌보 배긴스의 설렌 뒷모습이 죽어가던 난쟁이 왕자 소린의 모습과 겹쳐져 묘한 여운을 남겨 주기도 하죠. 세계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하는 중간계 속 수많은 영웅호걸들의 모습들? 그 모습들이 이 시리즈의 핵심이 아니었어요. 오후의 소박한 티타임을 기대하며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는 그 조그마한 호빗의 뒷모습이, 바로 이 방대한 3부작 시리즈의 진짜 엑기스인겁니다.
결국 이야기를 시작시키고, 여정 한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며 또 이 긴 이야기를 역시 마무리 짓는 주체는... 예의 그 '호빗'들이었죠. 먹고 사는 것에 큰 지장이 없다면 더 이상의 재물이나 금전에도 크게 관심이 없이 목가적이며 소소한 삶에 만족하는 곱슬머리 반인족들. 돌아보면 수많은 인간을 마치 제물처럼 갈아 넣던 1차 세계대전의 끔찍한 잔상들을 직접 목도했던 원작자 J.R.R. 톨킨 교수가 그로 인해 느끼게 된 삶의 단순한 가치들을, 이 '호빗'의 모습들로 넌지시 투영시켰던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자, 그렇게 따져보면 어마어마한 러닝타임 때문에 질려버릴 수도 있는 이 두 시리즈들 역시 사실 굉장히 단순하고 심플합니다. 이미 손에 쥐고 있는 헛된 욕심을 멀리 내던져 버리는 이야기가 <반지의 제왕>이었다면 이 <호빗>도 결국엔 같은 맥락인 거예요. 명예니 업적이니 쟁취니 하는 것들에 부질없이 목매달지 말고 평화롭게 보내는 소박한 일상에서 매일 작은 행복들을 찾으라는 이야기.
그러니까 제발 좀...
성별이 달라서, 살고 있는 지역이 다르다고,
혹은 지지하는 정당 색깔이 다르다는 그런 이유들로
머끄댕이 부여잡고
서로 지독히들 '혐오'하며 싸우지들 말잔, 알고보면 그런 얘기이기도 할 테니까요.
* 위 이미지들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며
이미지들의 모든 저작권은 해당 제작사에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