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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로 꾹꾹 눌러 쓴 기록
by 재하 Aug 07. 2018

여보, 우리 프랑스 가서 셋째 낳을래요?

첫째 아이를 뱃속에 품고 파리에 출장 간 적이 있다. 출장 당시, 남편과 함께 했는데 (우리 회사 대표가 남편이다.) 숙소 앞이 유치원이어서 저녁마다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한눈에 보아도 엄마는 아닌 것 같은 사람들이 재잘대는 꼬마들을 유모차에 태우거나 손을 잡아 유치원을 빠져나오고 있는 장면이었다.


“귀여운 앙팡들(Enfant : 아이)”
“앙팡? 그거 치즈 이름 아니에요?”
“아니야, 불어로 아이라는 듯이야”
“맙소사, 여태 치즈 브랜드 이름인 줄 알았어요.”
“앙팡들 덕분에 거리가 활기차다, 그렇지?”



업무가 끝나고 저녁을 먹은 뒤, 우리는 10분 거리에 있는 에펠탑으로 산책을 가면서 가족계획을 세웠다. 남편과 나는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이상과 가치가 있다. 우리 부부는 타국에 강제로 빼앗긴 문화재를 찾는 일을 한다.

우리는 이 일이 우리 세대에서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우리가 못해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또 어떻게 싸워서 이겼는지도 후대에 잘 알려줘야 한다. 그 일을 아이들이 꼭 하지는 않더라도 부모가 지키려고 했던 이상과 가치가 무엇인지 물려주고 싶다. 그것을 한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힘들 것 같고 둘이 하기에도 벅찰 것 같아서 아이가 셋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둘이 싸우더라도 하나가 중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아이 셋을 낳기로 결정했다.


첫째를 낳고 친정엄마의 무한 버프를 받을 때만 해도 나는 아이 셋을 금방 낳을 것 같았다. 두 살 터울로 얼른얼른 낳아 키워서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으로 계획표를 짜 놓고 있었다. 둘째를 낳고 나니 힘들었다. 두 배로 힘든 것이 아니라 생활이 스무 배는 힘들어졌다. 아이 한 명이 늘었는데 카드 값은 왜 매달 100만 원 가까이 더 나오는 것인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저 조그마한 아이가 뭘 먹고 뭘 쓴다고 생활비가 이리 많이 늘어난 것인가! 돈뿐만이 아니다. 내 생활이 없어졌다. 뭘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둘째 아이가 돌이 지나고 나서야 숨통이 좀 트였으나 셋째를 낳을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이미 두 달 전에 나는 셋째를 가졌어야 했으나 그 계획은 삭제된 지 오래다.


“스쿠버다이빙이 취미인 두 부부가 일주일 휴가를 내고 취미를 즐기기 위해 이스라엘로 떠났을 때에는 아이의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가 오셨다. (……) 프랑스인들은 어지간해선 특정인에게 과중한 부담을 지우지 않는 규칙을 준수한다. 육아가 공포스러운 일이 되지 않도록 프랑스 사회가 찾아낸 지혜였다. 일방적 희생은 금지되며, 독박 육아는 금물이다.”
목수정(2018),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 생각정원, p.51


그런 지친 상태에서 프랑스 이야기를 읽으니 갑자기 혹했다. 프랑스에서는 일하는 엄마들이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며 한국에서처럼 비난받지 않나보다. 4개월간의 출산휴가가 끝나고 복귀하며 아이를 ‘라 크레쉬(탁아소)’에 맡기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걸보니 말이다. 아이가 6시에 하원한 후 엄마나 아빠가 귀가할 때까지 돌봐주는 숏타임 베이비시터 제도도 잘 정착한 것 같다. 엄마에게 모든 책임과 비난을 짐 지우는 한국 사회와는 다른 것 같아서 나는 당장이라도 프랑스로 떠나고 싶어 졌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 프랑스 가서 셋째 낳을래요?


“(초등) 학교에서는 전교생에게 매주 한 권씩 새로운 책을 읽게 한다. 독서는 전교생이 학년과 반에 관계없이 해야 하는 공통의 숙제인 셈이다. 전체 학급이 일주일에 한 번은 사서 교사와 도서관에서 수업을 한다.”
목수정(2018),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 생각정원, p.136


나는 남편에게 책에 소개된 내용을 정열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중간고사가 끝난 바로 다음 날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있었는데 시험이 끝난 다음 날이라서 과제도 없었고 문제집을 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때 나는 선물로 받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꺼내놓고 읽고 있었다. 그런데 자율학습 감독 선생님이 오시더니 책 집어넣고 공부하라는 것이 아닌가. 아니. 책을 읽는 것도 공부의 일종 아닌가. 나는 그  선생님의 발언이 서른 살이 넘은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다. 한데 프랑스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 사서 선생님과 수업을 한다니. 이 얼마나 좋은가!



“재밌는 것은 1년을 기다려도 5단을 넘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보다 못한 내가 선생님한테 ‘왜 5단까지만 하나요? 나머진 그냥 집에서 하라는 의미인가요?’라고 물었다 선생님이 펄쩍 뛰며 하시는 말씀. ‘집에서 그걸 왜 하나요? 6단부터 9단까진 3학년에 올라가서 배웁니다. 어떻게 한꺼번에 9단까지 아이들이 외우겠어요!’”
목수정(2018),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 생각정원, p.140-141


프랑스에 가고 싶은 이유는 계속해서 생겼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영어 선생님이 갑자기 인칭대명사를 아이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에 학원을 다니지 않고 학교 공부만 했기 때문에 그것을 배우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답을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바로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한 아이들이었다.

대답하는 아이들이 있으니 자신은 가르쳤다며 인칭대명사에 답하지 못한 아이들은 인칭대명사로 깜지 두 장을 써서 내라는 선생님의 말을 들었다. 허나, 다른 수업이 계속 있었고 깜지를 다 쓰고 가려면 하교시간이 한참 지나도 다 못 쓰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나는 그 날, 깜지를 다 못 쓴 친구들과 집으로 갔다.

다음 날이었다. 깜지를 내지 않았다며 선생님은 나무 막대기로 아이들의 허벅지를 내리쳤다. 체벌로 인해 내 몸에 멍이 생긴 최초의 사건이었다. 나는 그 뒤로 영어에 영자만 보아도 치가 떨린다. 그 날의 충격이 얼마나 컸냐 하면 가수 포미닛의 노래 제목이 “I MY ME MINE"이라는 것을 알고 듣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그 노래를 듣지 않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니 청소년기에 선생님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나는 선행학습한 아이를 칭찬하지않고 친구들에게 방해된다며 월반을 시키는 프랑스 교실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절반 정도의 아이들이 선행학습을 하는 우리 교실은 학교 공부만 하는 아이들에겐 엄청난 방해일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리 배운 것에 대해 빨리 습득했다고 칭찬하는 사회다. 그러니 계속해서 아이들이 사교육으로 빠져드는 것 아닌가.


“우리 파리 출장 갔을 때, 앙팡들 기억나요? 그 활기찼던 거리?”
“응, 기억나. 젊을 때 파리에 갔다 와? 얼른 불어 배워~”
“그게 문제네, 가고 싶은데 내가 불어를 못하네. 푸하하”


어딘가엔 엄마들을 위한 파라다이스가 있다고 생각했 그곳이 프랑스라고 여겨졌다. 거기에 가면 아이들의 생각도 더 잘 자랄 것만 같았다. 그래서 파리파리~ 에펠탑을 외쳤다. 그렇게 외친 지 이틀이 되는 날, SNS에 친구가 올린 글을 보았다. 프랑스의 대학도 그랑제꼴 아래까지만 평준화인데 그랑제꼴 출신들이 정치, 경제, 법조 등을 독점하면서 폐쇄적인 학벌 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아. 저 나라도 위로 올라가면 힘들게 경쟁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에 나의 파리파리 노래는 사라졌다.


 

그래도 부러운 것이 있다. 아이 엄마에게 육아의 과중한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편에게 파리도 위로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서 안 되겠다고 이야기하며 나는 핀란드에 대한 책을 집어 들었다. 어딘가엔 파라다이스가 있다고 여전히 믿으며 지금 내가 겪는 고통을 잊어보고 싶은 행위가 프랑스에서 핀란드로 넘어간 것 같다. 핀란드 책을 읽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그런데 우리, 셋째는 언제 낳죠? 진짜 셋 낳아? 지금이라도 수정해야되는거 아니에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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