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이방인, 한국의 국외 거주자의 모놀로그.
프랑스의 봄방학이라 할 수 있는 Vacances scolaires가 끝나고 다시 프랑스어 수업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2주 동안의 방학이 주어지면 이것저것 계획해 놓은 일들을 70% 이상은 마무리 지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지만
웬걸..
생각했던 일들은 어느 정도 해결을 했는지 가늠이 안될 만큼 더 큰 문제들이 놓여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방학이라 해도 이미 파리에서 사회인으로서 발을 내딛기 시작한 나의 일상에선 일주일에 세 차례, 두 시간씩만 듣는 프랑스어 수업이 살짝 빠져나가 있는 것뿐이었는데 일주일 동안 할애하는 그 여섯 시간이 꽤 큰 비중을 차지했었나 보다. 일상에서 프랑스어 수업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시간적으로나 마음적으로 여유가 있게 느껴졌었다.
이리 말하니 프랑스어 수업이 싫은데 마지못해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도 느껴지네?
아무튼, 봄 방학 기간에도 삶이 멈추어 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움직였는데
봄방학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정말 쳇바퀴 안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처럼..
4월도 이제 한주밖에 남질 않았고 곧 5월이 시작될 텐데 어쩜 이리 시간이 잘 흘러갈까.
시간 도둑이 내 삶의 언저리에 앉아 야금야금 내 인생을 갉아먹고 있는 것 같아 조바심이 생긴다.
정신 차리고 잘 살아야지.
4월에 다양한 일들을 벌였었고, 생각지 못한 일들이 내게 왔었다. 마음적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인해 행복한 게 더 컸었다. 그렇게 힘들어하고 행복해했던 것들을 번복하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앞으로도 멈춤 없이 나아가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4월에는 한주에 한 번씩은 외식을 하고 있다. 마음을 먹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찾아다녔던 게 아닌 요리 하기가 싫어서, 라는 수동적인 움직임으로 채워진 밖에서의 식사.
어떤 날은 일식집에서 주문한 초밥들 속에서 연어를 골라내고 오이나 아보카도만 남아 있는 꼬마 김밥으로 식사를 했었고 또 어떤 날은 우리 둘 중 누구도 요리하기가 싫은 날, 차려입고 나가는 일 마저 귀찮을 때면 찾아가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피자를 먹기도 했었다.
그러다 문득, 어느 날엔 일상에서 잘 해 먹질 않는 멕시칸 음식을 먹으러 갔었다.
우리가 자주 가던 멕시코 레스토랑은 따로 있지만 이날은 파리 6구 '생 제르망 데프레'에 있는 새로운 레스토랑으로.
둘이서 함께 먹을 앙트레 메뉴로 치즈 쿼사디아를 주문했었고.
각자의 메인 요리로 그는 소고기 타코, 나는 치킨 타코로 주문을 했었다.
메인 메뉴로 주문했던 타코 보다 쿼사디아가 부담 없고 담백해서 좋았다.
봄방학 동안은 다른 일들에 정신이 팔려 공부 한자 안 하고 지냈다 해도 다시 시작된 프랑스어 수업을 잘 따라가고 있으니 주말은 평안하게 또 쉬어야지 싶은 생각.
토요일의 점심으로 바질과 토마토, 모차렐라와 말린 허브를 넣은 파스타를 먹을 계획이었지만 정오가 되어갈 무렵에서야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던 나는 오렌지 주스와 함께 브런치를 하자고 그에게 말했었다.
바게트와 크루아상을 그가 사 오고 토마토와 달걀을 풀어 스크램블을 만드는 동안 나는 샐러드를 만들고 테이블 세팅을 했다.
발레 수업이 있는 토요일 오후.
마레 지구에 있는 댄스 스튜디오까지 내 걸음으로 50여분이 걸린다.
집에서 나와 소르본 대학을 지나고, 생루이 섬을 지나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시테섬까지 센강을 바라보며 걷다 보면 어느새 마레 지구에 도착을 한다. 날이 화창한 봄날이라 지난주 토요일에도, 어제도 노트르담 성당 주변에는 거리 예술가들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댄스 스튜디오에 도착을 하면 발레복으로 갈아 입고 1시간 30분 동안 발레를 하는데 신체 라인이 잘 다져진 사람들을 클래스에서 볼 때면 발레에 대한 열정을 더 갖게 된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오전 9시 30분 수업은 늘 놓쳐 버렸는데 이번 주 화요일에는 꼭 수업에 들어가야지.
발레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도 같은 노선으로 걷는다. 댄스 스튜디오를 향하던 시각에 느껴지던 거리 위의 활기는 잠잠해지고 석양빛이 센강 위로 물들어 가는 시간.
봄날의 초저녁 그 시간에 혼자 걸으며, 센강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그리 좋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