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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Jul 03. 2022

그때는 쓰고 지금은 달다

새내기 수사 경찰 - 2화


아메리카노.

처음 언제 어디서 이 검정 물을 먹은 것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물보다 많이 먹기 시작한 게 2016년 처음으로 혼자 자취를 하면서부터 인 건 확실히 기억한다.



경찰 공부를 하며 하루 한 잔씩 꼭 먹던 쓰고 차가운 검정 물은 시험에 떨어진 햇수만큼 플러스가 되어 2020년에 이르러서는 인근 커피점에서 아침, 점심, 저녁, 야간 4잔씩 사이즈 업, 샷 추가까지 해서 꼭 챙겨 먹었다. 취준생에게는 사치인 것만은 확실하다.


밥을 먹을 돈과 커피를 함께 먹을 돈이 부족할 때에는 1초의 망설임이 없이 밥을 포기하고 커피를 마셨다. 취준생에겐 너무도 비싼 커피를 투덜임과 배고픔, 비참함을 더해서 먹었다.


독서실에서 많이 떨어진 커피점을 찾아 얼음 알갱이를 만질 때쯤에는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거나 온몸이 꽁꽁 얼어 있었다. 그래도 그 시원한 물이 내 목을 적실 때에는 이 소박한 사치가 행복했다. 이 사치로 많은 끼니를 건너뛰어야 했다.


문제는 정해진 양만큼 아메리카노를 먹지 못하면 공부 집중이 전혀 되지 않았고, 합격하고 나서도  버릇은 없애지 못해 아침에는 반드시 커피를 먹어야만 힘이난다는 점이다.


 버릇 때문인지. 합격한 교육원에서 1년을 보내는 동안에는, 정말 전국에 수많은 커피점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아메리카노를 맛보았다. 소개팅을 하며 테이스팅  원두만 해도   가지는 되는 듯하다. 그중에서 이름이 기억나는 원두가 하나도 없지만 그저 아메리카노를 맛보는 것만 해도 참으로 달았다.


주변 친구들 말처럼 커피를 사러 다니는 시간만 절약했어도  일찍 붙었을 거라는 분석과, 끼니를 제때 챙겼다면 독서실에서 그렇게 힘없이 누워 있지는 않았을 라는 분석을 추억으로 남긴 채.



[귀하의 경기남부청 발령을 발령지는 OO시입니다 환영합니다.]

 

3월 초. 화려한 임용식을 끝내고 생명수 같은 아메리카노를 들이켤 때는 극도의 긴장감과 불안감이 목을 타고 들어왔다. 바로 이 문자 한 통 때문이었다

종교와 상관없이 사주를 재미로 보곤 했던 나에게는 30대까지 한 곳이 머물지 않는다라는 공통된 사주가 있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고등학교도 다른 도시로 지원하게 되었고, 도시가 아니면 이사를 가는 한이 있더라도 한 군데에서 3년 이상 지내본 적이 없었다.


20살까지는 충남. 30살까지는 서울에서 지내왔건만 첫 발령지는 전혀 모르는 곳에서 시작해보고 싶은 알 수 없는

고집이 생겼다


12월에 희망지에 호기롭게 경기남부청을 적고 도시는 어디로 가게 될지 기대감 속에서 동기들과 이별 주를 참으로 많이도 들이켰다. 새로운 곳에 대한 희망을 품고.


막상 실제 발령이 나고 보니 익숙한 도시를 선택하지 않은 스스로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고 막막함이 가슴을 옥죄어왔다. 난 왜 마지막 선택에서 항상 엉뚱한 세상을 보게 되는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길이었다.


태어나서 관광 이외에 방문한 적 없는 경기도인 데다, 심지어 발령 도시는 이름 말곤 아무것도 모르는 곳이라니.  


아메리카노를 들이키며 웨이브를 통해 아무 생각 없이 봤던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영화가 이제야 이해되는 듯했다.


임용식 후 발령 시까지 한 달이라는 교육기간 동안 때로는 새로운 장소에 호기심, 두려움 심지어 원망까지 비빔밥처럼 뒤섞여 어떻게 지나는지도 몰랐던 것 같다.

따라서 미리 구해 계약까지 마쳐야 할 거주지를 발령 일주일 전이되어서야 현장에 가보았다.

고향서 1시간이 넘어서야 도착하는 동안 함께 동행한 부모님은 그저 본인이 선택했으니 뭐 어떡하겠어라고만 한마디 하셨다. 30년 인생을 오로지 지 맘 가는 대로 선택하는 아들 앞에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부모님이 그토록 집에 가까운 곳, 아니면 지인이 많은 서울을 쓰라고 따라다니며 부탁 반 질책 반 하셨으니 앞에서 투정도 못 부릴 판이었다


처음 도착한 도시의 느낌은 ‘뜨겁다’였다.

도시는 새롭게 탄생 중이었고, 건물은 이제 막 새롭게 지어지기에 햇빛을 가릴만한 게 거의 없는 곳이었다. 봐 두었던 부동산으로 가는 도중 수많은 공사현장의 뜨거운 흙바람이 폐 속으로 들어온다.  


그 뜨거움 때문인지 몰라도 더 이상 돌아다니는 것이 무의미했다. 나는 처음 정말 하자가 없다면 들어간 부동산에서 처음 소개해 준 집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장님은 곧바로 인근 전셋집으로 함께 이동하였다. 해당 건물은 외관도 잘 꾸며놨고 내부도 넓었으며 무엇보다 내 눈을 한 번에 꽂히게 하는 그곳 1층에는 주인집이 조금이라도 세금 면제를 받기 위해 운영 중인 24시간 무인 커피점이 있었다.


이 어설프고 낯선 곳에서 커피 때문에 몇 억짜리 집을 덜컥 또 선택해버렸다. 이 놈의 커피.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몇 군데 더 돌아보기를 추천하였지만 나는 곧바로 계약서를 써버렸다. 차마 부모님께 커피점 때문이라고는 하지 못하고 입지가 최고라고 좋은 말로 포장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아침 일찍 나가 늦게 들어오는 나에게 돈만 내면 아메리카노를 먹는다는 게 사실 매우 큰 매력요소였다. 그렇게 도착한 지 한 시간도 안되어 2년 이상 지낼 집은 계약되었고 그 길로 고향으로 돌아갔다.


뜨거움이 싫었던 건지 내 선택이 옳았던 것인지, 두려움이 싫었던 건지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앞으로 살 집의 커피점에서 우아하게 뽑은 커피가 더 이상 달지 않았다는 것만 기억에 남았다.


그랬구나 이 커피는 달지 않았구나. 내 청춘이 담겼던 커피는 이 맛이 아니었는데.



일주일 뒤 아침 8시 무인 커피점에서 뽑은 아메리카노는  수사경찰관으로서, 첫 직장인으로서의 긴장감에 매우 썼다.



그러나 막 두 달을 넘긴 지금. 아직도 이 도시을 내 눈에 가슴에 담기에는 익숙지 않고 아버지께 물려받은 오래된 차에 내 몸을 실는 것도 어색하기 짝이 없지만 아침마다 뽑아 먹는 커피는 조금씩 당도가 올라가고 있다.


20대부터 30대에 이르기까지 아메리카노가 없었다면 그 얼음 알갱이 사이로 번지는 커피물의 에너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마 사건을 한 건 두 건 끝맺으며 내 미각에도 설탕이 한, 두 푼씩 들어가서 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어김없이 습관적으로 커피를 뽑아먹는다.  항상 처음에 쓰지만 익숙해지면 달고 자꾸 찾게 되는 아메리카노처럼,  지금은 쓰디쓴 낯선 도시가 익숙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커피를 들이켠다.


이 뜨거운 도시를 시원하게 해 줄 나의 첫 발령지의 아메리카노가 ‘그때는 쓰고 지금은 달다’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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