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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Sep 18. 2022

No Problem

새내기 수사 경찰 - 7화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군대 갈 결심을 하는데 딱 하루 걸렸다.     


선택은 빨랐으나 후회를 느끼기까지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아니하였다. 입대일이 가까워질수록 심연 속으로 빨려 드는 듯했고 막연한 두려움에 스스로를 갉아먹는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 인도로의 나 홀로 세게 여행을 하기로 하였다. 인도를 선택한 이유는 단지 자다가 읽었던 책이 류시화 시인의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이었던 게 전부였다.


부모님은 안전한 서유럽으로 가라 권하였지만 주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4일짜리 인도 여행을 가는 비행기에 홀로 올랐다.     


도착한 인도는 충격 그 자체였다. 류시화 시인이 표현한 그대로 날것 그대로의 삶이 넘쳐났고, 건물, 도로, 카페 어느 하나 도시 같지가 않았다.


2주 동안 배탈, 두통, 벌레로 온갖 고통은 다 겪었고 배낭객에게 사기를 치려는 이들과 상대하느라 목소리가 쉴 정도였다.       


그래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잊지 못할 경험을 수없이 하였다.



신기하게도 14일 동안 기억에 남는 건 아름다운 아그라의 타지마할이나, 잊지 못할 광경을 보여준 갠지스강보다도 온갖 짜증에 대처하는 그들의 태도였다.


몸이 아파 식당에서건 사이클 락샤(자전거 인력거 같은) 운전 자건 날카롭게 짜증을 내도 그들은 시종일관 웃으면서 ‘노 플라블럼 노 프라브럼’이라면서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여행관련 책들에서 수없이 보던 말을 실제 듣게괴자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차츰 그들의 말투를 따라 하게 되었다.



시속 30km 열차가 2시간이나 늦게 와 놓고 안개 때문에 멈춰버려 당일 일정이 전부 꼬여도, 분명 튼튼할 거라고 빌린 자전거가 기어, 브레이크가 몽땅 고장 났더라도 노 프라블럼이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왔다.    


다만 그러한 긍정적인 태도는 군대를 가고 시험공부를 하며 점차 희미해져 갔고, 그때의 일은 소개팅에 나가 여행 이야기를 할 때 외에는 평상시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저번 주 한 외국인에 대한 사건을 맡기 전까지는.



경제범죄 수사팀에서는 매주 인당 3건 정도의 사건이 배당되는데 배당받는 수사관들은 일단 표지부터 확인한다. 고소장이건 고발장이건 표지에 죄명이 적혀있기에 표지만 훑어보고도 그 주에 대략적인 틀을 머리에 1차로 잡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명과 관계없이 순간 멈칫하는 사건들이 있는데 다름 아닌 바로 피의자 칸에 “외국인”의 이름이 써져있을 때다.     


고소인이 외국인인 경우와 달리 피의자가 외국인일 때에는 전화부터가 고난도이다. 경험해본 바로는 귀화를 고려중인 분들은 한국말을 어느 정도 할 줄 알지만, 중국이건 카자흐스탄이건 말레이시아 건 상관없이 단기 취업비자로 오신 분들은 통역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경우에는 경찰서와 연계된 통역관 분들이 반드시 통역을 해주지 않으면 출석 날짜를 잡는 것도 불가능하여 여간 곤혹스러웠다.

더군다나 통역이 있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둘째치고 통역을 거치면 직접 주고받는 대화랑 같을 수가 없기에 의도와 다른 질문과 답변으로 서로 지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처음 수사과에 와서 외국인을 조사했을 때는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지문채취, 조서 작성 등에 2~3배는 집중해서 처리했었다. 그러나 몇 개의 사건을 거쳐가면서 조사받아야 할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공장이나 식당을 했기 때문에 주말에만 나오겠다거나 퇴근시간 한참 후에 조사를 하다 보니 점차 힘에 부쳤다.          

저번 주에 조사하였던 사건도 그런 일 중 하나였다. 해당 사건은 자동차 관리법 위반이라는 죄명으로 국민신문고로 다른 시민이 제보한 사건이었다.     

보통 자동차나 오토바이의 뒷번호판을 고의로 가리거나 알아보지 못하게 할 경우에 처벌이 되는 법으로, 해당 외국인은 오토바이 뒷번호판에 인형을 달아 식별을 어렵게 하여 다른 시민으로부터 신고가 된 사건이었다.     


번호판을 가리는 행위는 외국인뿐만 아니라 국내인도 심각한 범죄라고 잘 인지하지 못하는 범죄이다. 대부분 조사를 받으러 오면 고작 번호판 가렸다고 ‘1년 이하 징역 혹은 1천만 원 이하 벌금’이라는 설명에 당혹감과 억울함을 표하곤 한다.      


해당 범죄는 이미 번호판을 가린 것이 블랙박스에 다 찍힌 상태로 접수가 되기 때문에 현장 사진을 보고 나면 억울함이 인정으로 바뀌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범죄인지 몰랐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사실대로만 진술하면 대부분 조사가 짧게 끝나는 사건이다.     


그러나 해당 사건의 피의자인 외국인은 첫 전화 때부터 마치 강력범죄로 체포가 된 것처럼 굉장히 상기된 목소리로 “한국말 몰라요. 난 경찰서 안 가요”라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다른 외국인들이 경찰서를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이상으로 공포를 느끼는 경우도 있지만 이번 피의자는 굉장히 고압 적이거 공격적이었다.


“한국말을 몰라도 경찰서 와야 해요. ㅁㅁ씨 아니 여기 온다고 감옥 가는 게 아니에요. 조사를 받아야 한다니까요!”. 나는 한참을 감정을 누른 채로 천천히 같은 말을 반복해주었다.


온갖 단어를 동원하여 설득한 끝에 겨우 출석 날짜를 잡았지만 이미 전화 한 통에 온갖 기운이 다 빠진 느낌이었다. 원하는 대로 날짜를 조정해주고 통역관을 불러주긴 했지만, 한껏 날이선 외국인의 답변에 조사 때는 얼마나 힘들지 가늠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조사당일,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사무실에 나왔건만 사건에 감정이 섞여서는 안 되기에 최대한 다른 사건 서류에 집작 하며 외국인 피의자를 기다렸다.

더군다나 피의자 조사는 반드시 팀원이 동석해야 하는 원칙에 의해 본인 사건도 아닌데 나와준 팀원과 통역관분에 대한 미안함에 뭐라 표현할 수도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서류를 작성하는 내 책상 앞으로 3~4명 정도 되는 덩치가 커다란 한 무리에 사람들이 쭈뼛대며 다가왔다.     


“ooo수사관님.. 만나러 왔는데요”     


내 이름을 언급한 젊은 남자는 굉장히 사색이 된 얼굴로 사무실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불안한 듯 손을 가만있지 못하였다.     


“잠시만요. 혹시 ㅁㅁ씨세여? 저랑 약속한 시간보다 1시간이나 빨리 오셨네요? 옆에 분들은 누구세요.”     


“.... 가족들입니다.”     

다른 사람이 올 거라 예상하지 못하였기에 나는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그들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서로 힘을 보태기 위해 온 듯싶었다.


외국인 피의자는 내가 바쁠 거 같아서 되도록 빨리 온 것이고, 경찰서가 처음이라 가족이 다 함께 온 것이라고 하였다.


단체로 법원에 방청을 온 것도 아니고 번호판을 가린 사건으로 온 가족이 총출동한 처음 보는 광경에 조금 당황스러워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더군다나 가족 중 피의자의 어머니로 보이는 분은 시종일관 잘 부탁한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마치 경찰서에서 무조건 잘못했다고 해야 통한다고 들은 것 같았다.     


절실한 그들의 모습에 한숨을 쉬는 대신 나도 모르게 10년도 전에 들었던 “노 프라블럼”이라는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전혀 걱정 말라며 절차대로 잘해드리겠다고 답한 뒤 통역분이 오는 대로 빠르게 시작해주었다.          


알고 보니 해당 외국인 분은 한국말을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고 답변하는 데 있어서도 큰 문제가 없었다. 더군다나 전화할 때와는 달리 질문에 대한 통역이 끝날 때마다 죄가 되는지 몰랐지만 죄송하다.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전화받을 때와는 달리 화를 내지도 고성을 지르지도 않으면서도, 다시는 번호판을 가리지 않겠다며 인정하는 모습에 나 역시 최대한 천천히 웃어주면서 조사에 임하였다.     


“한국말도 대부분 잘 알아들으시고 잘못한 것도 다 인정하시면서 첫 통화 때는 왜 그렇게 흥분하셨어요.”     

20분도 지나지 않아 조사가 끝나자 나는 통역관분을 먼저 배웅해드리고 외국인 피의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쑥스러운 듯 조그마하게 말하였다.     


“저야 경찰이 처음이라 무서웠어요. 한국 경찰이 어떤지 난 몰라요 영화로는 막 때리니까..... ”

 한국영화에 나오는 경찰은 현실 하고는 멀지만 이들은 아마도 영화를 통해 경찰의 극단적인 모습만 생각했고 당사자가 된 외국인에게는 숨도 쉬기 어려운 상황 같았다.


키로보나 덩치로 보나 훨씬 큰 청년의 주눅 든 모습에 나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무언가가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는 괜한 걱정을 했다며 청년을 데리고 직접 각족들이 있는 밖으로 배웅해주었다.     


“조사 다 끝났습니다. 오른쪽으로 나가시면 더 빨리나 가실 수 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조심히들 들어가세요”     

초조해하는 가족들에게 다 끝났다며 말해주자 청년은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걱정하고 있던 가족들에게 외국어로 무어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청년의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활짝 웃더니 외국말로 무어라 하면서 연신 인사를 하였다.          


“아내가 노 프라블럼이라고 친절하게 말해주어 고맙답니다. 이번 꺼는 당연하게 처벌을 받고 앞으로는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는 가족 4명이서 다 같이 연신 고마움을 표시하는 게 아닌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내가 억울함 사람에게 무죄를 내려준 판사라 보일 것이라 착각이 들 정도였다.     


외국인 가족을 돌려보내고 조사를 기록한 서류를 정리하며 내가 그 외국인 청년이 었다면 어땠을까 라며 처음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          


경찰관으로서는 화내지 않고 짜증 내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임에도, 조사받는 외국인에 입장에서는 온갖 최악의 상황이 머릿속에 떠오를 수 있겠구나 생각할 수 있었다. 그토록 두렵고 초조한 상황에서 상대 경찰관 입에서 나오는 노 프라블럼은 공포를 상당히 덜어줄 수 있는 ‘언어의 힘’ 일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주말에 나와 짜증 난다는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지고 기운을 차린 상태로 조서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번 주에도 나에게는 두 명의 외국인들이 피의자로 배당이 되었다. 둘 다 한국말을 전혀 할 줄 모르고 심지어 한 명은 해당 언어를 할 줄 아는 통역관도 구하기 어려운 국적이었다. 그러나 청년과 가족들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마워하던 모습 덕분인지 이제는 “한국말할 줄 알아요?”라는 질문에 “몰라요!”라고 해도 한탄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웃으며 “노 프라블럼. 일단 와 일단. come”이라며 한국어와 영어를 자동으로 섞어 외쳐주었다.          



물론 주말에 나와야 하고 시간도 오래 걸릴지도 모르지만 되도록 절차대로 친절하게 조사할 예정이다. 이 마음가짐이 언제 또 사라지고 오답에 짜증 내야 하나?라는 생각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다시 나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 모니터 옆에는 “일단 들어주자.”라는 스티커 옆에 “'노 프라블럼!!”라는 스티커가 하나 더 붙어 날마다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적어도 수사관으로 있는 동안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 외국인에 전화에  연신 고마움을 표시하던 4명의 가족들을 잊지 않고 스티커를 보며 탄식 대신 "'노 프라블럼"라고 외칠 수 있기를 바란다.     



복통과 두통에도 노 프라블럼을 외치던 22살의 인도에서의 나 자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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