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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나다 Sep 29. 2016

오랜만에

- 씀, 2016년 9월 25일 낮

"상원이 결혼한다더라"

살아짐의 갈림길에서 마주한 것은 오랜만에 듣는 그 녀석의 이름이었다.


아직 우리 둘이 여전히 어렸을 때, 우린 과학을 좋아하고 만상에 의구심이 가득한 학생들이었다. 우리 각자가 과학자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다른 길을 생각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겐 모욕과도 같은 일이었다.

한편 이 친구는 교과서를 사랑하는 아이였다. 다들 잘 정리된 하이탑이나 정석 등으로 공부를 하는 중에 혼자서 말 그대로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는 괴짜였다.

"교과서에 한 줄 적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

빈둥대던 어느 토요일 오후의 기숙사에서 친구는 말했다. '또 무슨 소릴 하려는걸까' 싶었지만 아무 대꾸하지않았다.

"우리 보는 교과서에 단순한 사실 한 줄을 넣으려면 한 권 분량되는 논문을 쓰고, 그 몇 배가 되는 내용검증이 돼야하고, 거기에 오랜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진실로 여겨지고, 그보다 몇 십배의 오랜 시간이 지나야 인간이 보편적으로 알아야 할 지식으로 인정받아서 교과서에 실리는거야. 저렇게 한 줄. '압력이 높아지면 거기에 반비례하여 부피가 작아진다.'는 저 한 줄."

나는 그제서야

"오, 짱이다"

하고 건조하게 휴대폰 게임을 할 뿐이었다.

눈동자를 빛내는 그 친구는

"난 교과서에 이름을 실을거야. 그게 내 꿈이야."

라고 말하고 다시 꺼내뒀던 교과서를 들썩였다.


그러고 10여년이 지나 우린 각자 다른 대학으로 멀어졌고, 난 휴학과 전과, 대학원으로 갈림길에서의 선택의 순간에서 도피해오는 인생을 살아왔다. 아니, 인생을 살아왔다기보다는 살아졌다고 표현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그 살아짐의 갈림길에서 마주한 것은 오랜만에 듣는 그 녀석의 이름이었다.


다시금 내가 선택의 갈림길에 서는 순간이 왔고 오랜만에 듣는 그 친구가 10여년 전에 했던 이야기는 지금의 나에게 들려왔고 비로소 나는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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