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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소방관으로 산다는 것
by 김상현 Jan 06. 2018

[출간 전 연재] 07화/40화 - 주택화재

<앨범>

 날씨도 풀렸겠다 소방서 일을 잠시 잊으려 휴가를 나왔다. 대부분의 휴가가 그렇듯 막상 나오면 할 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TV 앞에 앉아 멍하니 채널을 돌리면서 늦은 아침을 먹는 것으로 휴가를 시작한다. 예능 프로의 출연자들이 미션을 받은 듯 서울 방방곡곡을 누비며 인증샷을 찍고 있다. 밥을 다 먹을 즈음에야 공개된 미션의 정체는 나를 움직였다. 출연자들이 사진을 찍은 곳은 각자의 부모님이 수십 년 전에 사진을 찍은 곳이었다.


 이불을 개 놓고 온 집안을 뒤져 옛 앨범을 찾았다. 설렘을 안고 표지를 넘기자 끼어있던 필름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사진 한쪽 귀퉁이에 박힌 노란 디지털 숫자들을 보니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어색했다. 얼굴은 그대로인데 한껏 앳된 모습의 부모님. 나에게는 어색하고 신기한 사진이지만, 부모님에게는 소중한 사진일 것이다.



 신임교육받을 때가 기억났다. 새내기였던 나에겐 잡일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몇 안되었다. 직원들과 같은 옷을 입지만, 구급차를 타기까지는 보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화재출동 시에는 구급차가 아닌 물탱크차에 따라 타서 소방호스를 펴고 접는 심부름만 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아침 종이 울리면 가장 먼저 일어나 소방서 차고 앞마당을 쓸었다. 한 겨울이었던 터라 아침 7시였음에도 어둑어둑했다. 지난 밤동안 쌓인 눈 덕에 새벽 공기는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정리하고 들어올 즈음 출동벨이 울리자, 어김없이 물탱크차 조수석에 앉아 화재 현장으로 향했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 몸과 달리, 머리는 동트는 붉은 거리를 보며 따뜻해하고 있었다. 부상자 없이 안전하길 바라며 모자를 고쳐 썼다. 핸들을 잡고 있던 선배는 벌써부터 인상을 쓰고 있었다. 새벽부터 누가 또 불장난을 했냐느니, 물탱크차는 안나가도 될 것 같다느니. 매번 그랬듯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는 현장 도착하면 안전에 유의하라며 내게 꾸중 아닌 꾸중을 하셨다. 말은 거칠어도 소방서에서 가장 열심히 움직이시는 사람이다. 기온 탓인지 아니면 아직 덜 마른 탓인지, 장갑이 매우 차갑다. 호스를 연결하며 차디찬 물에 젖을 생각을 하니 한기가 느껴졌다.


 날리는 재와 눈이 서로 엉겨 흩날리는 몽환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선배의 말이 맞았다. 불길이 보일 정도라 신속한 진화가 중요하긴 하지만, 물탱크차까지 올 정도로 큰 불은 아니었다. 차에서 내리니 MT 가서나 맡을 수 있는 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택화재 출동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인명 구조이다. 구조대의 주도 하에 탐색이 시작되었고, 다른 진압요원은 지휘관의 전술에 따랐다. 불이 옮겨 붙지 않게 하기 위해 거실부터 시작해, 불이 시작된 곳으로 추정되는 보일러실까지 순차적으로 공략하는 것 같았다. 천장을 부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펌프차에 파쇄기를 가지러 갔다. 언제 떴는지 모를 해 때문에 눈이 부셨다.


 현장에 돌아와 보니 구조대원이 노인 남성 한 분을 데리고 나왔다. 할아버지는 연발 기침을 해댔다. 코털과 눈썹이 검게 그을린 것을 보니 연기를 많이 흡입한 것 같았다. 미리 준비된 간이 산소통에 연결해 비재호흡 마스크(non-rebreathing mak)를 씌워드렸다. 산소포화도가 아직 정상 범위에 있는 것으로 보아 연기에 노출된 시간 자체는 그리 길지 않았던 것 같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양의 연기를 흡입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폭발 현장이거나 문을 벌컥 연 진압대원이 아닌 이상,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신을 차린 할아버지는 구급대원의 처치에는 관심 없다는 듯 마스크를 벗어던졌다. 활활 타오르는 집으로 뛰어들어가려는 할아버지를 겨우 진정시켰다. 요구조자가 더 있는지 물었으나 아무도 없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사진을 가지고 오라’며 소리치셨다. 이제야 환자의 상태가 이해되었다. 할아버지는 화재현장의 문을 정말 열었던 것이다. 친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주고받던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집에 불 나면 어떤 물건을 가져오고 싶냐?’


 통장을 가져온다는 사람도 있고, 반지를 가져온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마 일기장을 가져올 것 같다. 루브르 박물관에 불이 난다면 어떤 작품을 가지고 나오겠냐는 우문에, 프랑스 작가 베르네는 출구에 가장 가까운 작품을 택하겠다는 현답을 내놓았다. 그만큼 화재현장에 다시 들어가는 행동은 무모하다는 뜻이다. 그것을 직접 행한 환자를 마주하고 있음에 놀라웠다.


 앨범은 화재가 완전히 진압된 후에야 찾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열었던 문 너머의 책장에서 발견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앨범은 녹아서 떼어내기 힘들 정도로 붙어버렸고, 사진 역시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쯤 되니 사진의 정체가 궁금했다. 대체 무슨 사진이길래 목숨을 걸 정도로 소중해하시는지 알고 싶었다. 검게 탄 사진을 보고도 행복해하시는 할아버지에게 양해를 구하고 앨범을 구경했다. 아들뻘로 보이는 남자의 사진이었다. 자식사랑 이길 것 없다는 말이 생각났다. ‘아드님이 참 잘생겼네요’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자 ‘나야’라는 한마디로 답하셨다.

 


 사람들은 저마다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다르다. 누구는 돈을, 누구는 명예를 좇아간다. 그에 따라 살아가는 방향이 달라지고, 살아가는 모습이 달라진다. 반면 누구든지 소중히 여기는 가치도 있다. 젊음이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땐 그랬지 하며 부모님들이 회상하는 과거도, 너무 힘들어 쉬고 싶어 하는 젊은 나의 현재도, 얼른 어른이 되어 편히 숨 쉬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미래도, 모두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다.


 휴가 마지막 날에 스캔한 앨범 사진을 부모님께 전송해드렸다. 요즘엔 이런 것도 되냐며 정말 기뻐하셨다. 이젠 색 바랠 걱정 안 해도 되겠다고 고마워하셨다. 그땐 그 말씀이 형식적인 감사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프로필 사진이 내가 준 사진임을 보면, 젊음이 얼마나 영향력 있는 순간인지 느껴진다. 그리고 지금 그 순간을 지내고 있음을, 지나 보내고 있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2018년 7월, 매거진 '대한민국 소방관으로 산다는 것'이 한 권의 책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성원에 힘입어 작은 이벤트도 준비했습니다. 출간일 날, 추첨을 통해 아래의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5명에게 무료로 책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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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대한민국 소방관으로 산다는 것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만 21세 새내기의 소방서 일기.
(문의 : rlatkdgus50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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