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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섭 May 12. 2021

그럼 뭐 할 건데?


종총


 종강총회의 준말이자, 한 학기가 마무리되는 것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과 선후배가 모여 술잔을 드는 날이다. 학교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우리 과는 보통 5월과 11월에 종총을 했다. 1학기 기말시험이 6월, 2학기 기말시험이 12월에 있기 때문이다.


 그날은 2014년 11월, 내가 겪은 두 번째 종총이자 1학년 때의 마지막 종총이었다.


“가!!!”


 저녁 10시, 대학생에게는 한창일 시간. 우리는 학회장의 선창에 따라 일제히 잔을 들고 외쳤다.


“족같이!!”


 ‘저놈의 가족같이는 언제 바뀌나?’ 대학교에 입학한 후 1년 내내 들었던 똑같은 건배사. 그 건배사가 끝나면, 이제부터 개인플레이다. 술 게임을 할 사람은 고성방가를 지르기 바쁘고, 나처럼 옆에 고학번 선배가 앉아 있을 경우에는 진대(진지한 대화)가 이어질 수도 있다.




 “나중에 공무원 공부하러 올라가면, 더 놀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하더라! 너희들도 미친 듯이 놀아! 어차피 공무원 시험은 학점도 안 본다고”


 2021년인 지금도 정확히 기억한다. 내 옆에 앉아있던 09학번 선배는 마지막 학기가 끝나고, 곧 서울 노량진에 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선배가 습관적으로 뱉던 말. 아니, 대부분의 고학번 선배들이 습관적으로 뱉던 말이 있었다.


 “공무원 할 거면 지금 놀아야 돼!”


 누가 이런 말을 최초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진짜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온종일 놀고 술을 퍼마셔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단어이자, 일 년 내내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도 전혀 부끄럽지 않게 스스로를 합리화 시켜주는 도구이며,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선배들의 마지막 유산이었기 때문이다.


 즉, 생각 없이 놀고 싶다는 20대의 니즈를 제대로 충족시켜주는 완벽한 문장이라 생각한다. 거의 치트키나 다름없이 말이다. (물론, 당시에도 나는 공무원을 할 생각은 쥐뿔도 없었지만 놀고 싶어서 그냥 놀았다) 그리고 이 마법의 단어는 수명도 굉장히 길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대학교에 복학을 한 2017년에도 똑같이 우리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전지전능했던 마법의 단어도 발효식품까지는 아니었나 보다. 어느새 유통기한이 다가왔으니까.


 “그건 아니죠. 공부의 기본이 안 되어있는데, 노량진에 올라간다고 갑자기 공무원에 합격하겠어요? 공부하는 습관조차 없는데 어떻게 공부를 합니까?”


 매 학기 학점 4.5를 놓친 적이 없던 동기 J. 그 동기가 군대를 전역한 후, 선배가 남겨준 유산에 대해 전면적으로 반대했다. 공부하는 습관조차 없는 사람이 어떻게 노량진에 가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굉장히 맞는 말이다. 책상에 앉아 있는다고 공부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니까. 실제로 그렇게 놀다가 노량진에 갔던 선배들의 생사 또한 들리지 않는다. 간혹 공무원 합격 소식을 가지고 내려오는 선배가 있긴 하지만, 소수였다.


 그리고 미친 듯이 놀았던 사람 중 하나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사실 나도 선배들의 저 말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J와는 다른 의미로 말이다. “공무원 시험은 학점을 보지 않으니, 그냥 놀아”라는 말은 내가 공무원 준비를 당연히 하게 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었으니까.


 나는 이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공무원만이 유일한 답이라고 말하는 저 어투가 거슬렸기 때문이다. 나는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았는데, 본인들끼리 내 미래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가 아니꼬웠다. 부모님조차 “노량진에 가서 공부하는 게 낫겠지?”라며, 내게 공무원 시험 준비를 강요하곤 했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한 마디로 반발심이었다. ‘내 인생을 당신들 마음대로 정하지 마!’와 같은 중2병 마인드였다고나 할까? 그리고 주제도 모르게 높은 자존감도 하나의 원인이지 싶다.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긴 싫다!’라는 생각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깔끔하게 공무원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공무원을 포기하니 또 다른 문제점에 봉착했다. “그럼 뭐 할 건데?”라는 질문에 반박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가 문과생이라서 그런 듯하다) 2017년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딱히 잘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게 없었기에 더욱 난감했다. 고작해야 “찾고 있다.”“공무원은 나랑 안 맞는 것 같아서.” 정도가 다였으니까.


 내 인생 내가 선택하는 건데 ‘굳이 반박까지 해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남의 제사에 감·배를 넘어 망고말랭이까지 얹어야 직성이 풀리는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명확한 답변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쯧쯧” 소리를 듣게 될 테니까.


 그렇다면, 나는 “그럼 뭐 할 건데?”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을 했을까? 아니, 못했다. 고작해야 “찾고 있다.” “공무원은 나랑 안 맞는 것 같아서” 정도가 다였으니까. 이 정도로 사춘기 소년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을 퇴치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 “공무원 할 겁니다.”라는 말 한마디면, 차후에 길어질 대화도 차단할 수 있었고 불쾌한 시선을 감당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내게 “노량진에서 공부하는 게 낫겠지?”라고 묻는 어머니께도 “어딜 가든 자기 하기 나름이지.”라며 대충 맞장구만 쳤을 정도니까 더 말해 무엇하랴.


 이런 내가 철없어 보이는가? 맞다. 나 철없다. 그런데 어떻게 하랴, 자유롭게 내 인생을 살고 싶은 것을…



 하지만, 지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게 생겼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생겼냐고? 2018년, 세계여행을 가기 위해 대학교를 1년 동안 휴학했을 당시였다. 당시 룸메이트 중 한 명으로부터 “형, 책 좋아하니까 여행 다니면서 글이라도 써보는 게 어때?”라는 말을 들었고, 꽤 괜찮은 제안이라 생각했던 나는 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수능에서 언어 4~5등급을 찍었던 내 수준으로 글이라니…. 재능도 없는 스스로가 우습기에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적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글이 모여서 결국에는 책 한 권을 이루게 되자, 열정이 생기는 게 아닌가. ‘좀 더 잘 쓰고 싶다.’라는 열정 말이다.


 그런 나를 보고 어머니께서는 공무원 생활하면서 글을 쓰면 된다고 하셨지만, 나는 그럴 마음이 죽어도 없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글을 쓰고 싶다.”


 속 타는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나 같은 놈도 있어야 세상이 재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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