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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영과 함께하는 당일치기 힐링여행

웨이브 [박하경 여행기]


여행과 힐링은 대한민국 문화시장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두 가지 소재다. 나영석이 불을 지핀 후 유행이 된 여행 힐링 예능에 더해 도서 분야에서도 여행 에세이가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다만 이런 유행에 편승해 안일하게 두 가지를 결합하는 것만으로 재미를 보고자 작품들도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웨이브가 오랜만에 선보인 오리지널 시리즈 ‘박하경 여행기’는 뻔한 소재를 독창적으로 포장하는 매력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통해 주목받은 이종필 감독과 손미 작가가 다시 만난 이 작품은 여행의 장소보다 사연에 집중한다. 국어교사 박하경은 19세기 말 프랑스에 나타났던 ‘미치광이 여행자’로 불렸던 사람들에 대해 언급한다. 직장, 가정을 버리고 자신도 잊은 채 여행을 떠났던 이들에 대해 미쳐서 떠난 게 아니라 미쳐버릴 거 같아서 여행을 간 것이 아니라며 의문을 제기한다. 본인의 마음이 그렇기 때문이다.     


제목처럼 드라마는 국어교사 박하경이 당일치기로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담아낸다. 해남, 군산, 부산, 속초를 여행하며 작품이 주력하는 건 장소가 아닌 사연이다. 그 사연은 박하경이란 인물과 연관되어 있다. 여행의 원동력 자체가 삶에 지친 박하경이 인생의 쉼표를 찍기 위해 떠나는 것이니 말이다. 8부작 중 4화까지 공개된 각 에피소드의 주제를 보면 1화 힐링, 2화 꿈, 3화 사랑, 4화 세대갈등 등 드라마적인 측면에 중점을 둔다.     


이 드라마를 맛깔나게 만드는 건 박하경의 매력이다. ‘네 멋대로 해라’ ‘아일랜드’ ‘아는 여자’ 등 배우 이나영은 매니아틱한 캐릭터를 찰떡 같이 소화해내며 주목을 받았다. 그녀가 지닌 키치적인 매력은 박하경이 지닌 엉뚱하면서도 독특한 면모를 잘 살려낸다. 왕년의 인기스타를 데려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중이 이나영을 사랑한 이유를 파악해 캐릭터에 담아냈다. 여기에 이종필 감독은 자신이 발견한 이나영의 장점을 조미료로 첨가했다.     


바로 코믹연기다.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비교적 덜 알려진 이나영의 영화 ‘영어완전정복’에서의 연기를 극찬한 바 있다. 이 작품에서 보여준 이나영표 코믹연기가 ‘박하경 여행기’에도 담겨있다. 캐릭터 그 자체가 지닌 엉뚱함을 가공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포장하며 전하는 웃음이 인상적이다. 이나영=박하경이라는 공식을 완벽하게 성립하는데 성공했기에 그녀를 중심으로 한 드라마가 탄력을 얻게 된다.     


그 중심에는 요즘 유행하는 중년 여성서사가 있다. ‘대행사’의 이보영, ‘일타 스캔들’의 전도연, ‘닥터 차정숙’의 엄정화 등 최근 드라마계는 중년 여성이 자신의 일과 사랑, 미래에 대해 솔직하면서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서사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박하경의 여행기는 풍경과 음식, 사진에 집중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힐링을 담아낸다. 애를 써서 명소를 향하지 않고 줄 서서 맛집에서 기다리지 않으며 사진 찍는 것도 싫어한다.  


   

요즘 유행하는 힐링여행 스타일을 담지 않는 대신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삶의 한 순간을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박하경의 독특한 캐릭터성은 예상치 못한 웃음과 전개의 묘미를, 각 회차마다 등장하는 새로운 인물과의 만남은 잔잔하면서도 확실한 감정적인 자극을 보여준다. 자극적인 요소를 모두 제거한 무공해 드라마에 당일치기 여행처럼 매 에피소드가 지닌 끝맛이 깔끔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매 회차 포맷 출연진들의 활약도 돋보인다. 가수 선우정아는 절에서 묵언수행 중인 정아 역으로 예상되었던 배우활용에서 벗어난 매력을 보여준다. 무용을 전공한 한예리는 꿈은 이뤘지만 성공하지 못한 예술가 연주 역으로 하경과 스승-제자 케미를 이룬다. 박인환은 꼰대 할아버지 역으로 세대갈등의 중심에 선다. 박하경과의 치열한 구강액션에 이어 이해와 화합이라는 훈훈한 감동까지 선보인다.     


하이라이트는 로맨스 라인을 이루는 구교환의 창진이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배경으로 마치 영화와 같은 순간을 박하경에게 선물한다. 이나영 못지않게 매니아틱한 캐릭터 연기에 능통한 구교환인 만큼 이상적인 합을 보여준 두 배우다. 장르물이 유행하는 OTT 시장의 특성상 ‘박하경 여행기’가 큰 주목을 받을 확률은 낮다. 다만 여타 힐링물과 차별점을 두면서 자신만의 개성을 확실하게 선보인 만큼 탄탄한 마니아층을 구축한 웰메이드 시리즈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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