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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 강민호 Jan 25. 2020

'신뢰'에 대한 오해와 편견

우리가 신뢰에 대해 쉽게 착각하는 것들


“우리는 자신을 앞으로 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하지만, 다른 사람은 우리를 우리가 이미 한 것으로 판단한다.” 

_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우리가 지금까지 수도 없이, 귀에 못이 박힐 만큼 많이 들어온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신뢰에 대한 확실한 효과와 확고한 믿음입니다. 그 누구도 우리의 삶에서, 그리고 인간관계와 일에 있어 신뢰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신뢰를 받는 사람이 성공한다”, “신뢰하는 브랜드가 사랑받는다”는 등, 지금까지 수많은 역사 속 인물들이 이토록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과 글을 남겼을 리 없습니다.


  신뢰사회에서 신뢰는 성공의 분명한 척도입니다. 사람들에게 얼마나 깊은 신뢰를 획득할 수 있느냐는, 얼마나 더 가치 있는 것들을 성취할 수 있느냐와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그것이 돈이든 명예든 사랑이든 상관없습니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성공이 어떤 형태일지라도 성공이라는 것을 얻고 싶다면, 먼저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신뢰는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없어선 안 되는 것입니다. 브랜드에서도 신뢰는 핵심적인 자산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브랜드는 고객에게 약속을 하고 고객은 브랜드가 기꺼이 약속을 이행할 것이라는 기대를 합니다. 이런 기대가 반복해서 충족되었을 때 브랜드는 고객들에게 신뢰를 얻게 됩니다. 브랜드가 획득한 신뢰는 사람들의 구매의사결정 과정과 시간을 단축시킴으로써 고객의 시간적 비용을 절감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신뢰가 브랜드의 가치를 창출하게 되는 것이죠.


  속도는 시간과 결과를 지배합니다. 속도가 있어야 시간을 압축할 수 있고,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더 많은 실행과 시행착오를 통해 더 나은 성과를 달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더구나 시간과 비용은 공급할 수 있는 절대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비탄력적인 상수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비교적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하는 변수는 속도입니다. 속도라는 변수는 시간과 비용이라는 상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입니다. 그 속도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신뢰인 것이죠. 


  회사의 조직 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뢰는 성과와 속도를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서로 간의 신뢰가 부족한 조직은 한 가지 작은 실행을 하더라도 구성원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과정과 시간에 많은 에너지를 빼앗기고 맙니다. 당연히 속도가 나지 않습니다. 제아무리 페라리 엔진만큼의 역량을 가지고 있다한들, 자전거 브레이크만큼의 신뢰만 존재한다면 페라리 엔진은 결국 자전거 브레이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속도만 낼 수 있게 됩니다. 


  조직 구성원들 간의 신뢰의 척도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을 얼마만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서로에게 관대하고 칭찬하고 의견을 존중하는 문화가 신뢰의 문화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신뢰란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관대하지만 때론 엄격하고, 칭찬하지만 때론 비판하고, 존중하지만 때론 반대하는 사람들, 일에 대해 불편한 이야기를 굳이 배려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로 이루어진 것이 바로 신뢰의 문화입니다. 


  엄격한 원칙, 날카로운 비판이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이 아닌, 오직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선의가 담긴 주장임을 믿고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신뢰입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란 식으로 넘어가는 것은 신뢰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불신을 기반으로 합니다. 회사 내에서 나의 생각과 주장이 다른 사람의 의견과 부딪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반대와 비판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주장과 생각에 대한 것이지, 결코 당신을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생각들의 ‘부딪힘’은 본질적으로 

새로운 생각의 탄생을 위한 ‘마주침’입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서로 간의 다름이 

지금보다 나은 가치를 향하기 위해선 더 많이 

부딪치고 마주쳐야 합니다.


  다른 의견, 다른 관점을 이야기하는 것은 직업인의 의무입니다. 나의 의견과 관점이 다른 생각들과 부딪히는 것이 두려워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은 학교 동아리에서는 미덕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다른 생각의 가치를 급여라는 형태로 청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하는 회사에서는 악덕일 확률이 높습니다. 


 상대의 기분을 걱정하는 마음의 이면에는 내심 미래의 나의 안녕을 걱정하는 자기연민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앞으로 내가 무언가 이야기했을 때도 지금처럼 서로 좋게 넘어갔으면’ 하는 암묵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역량과 신뢰가 부족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을 경우, 그 자리는 좀처럼 불편한 대화가 오가지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눈치를 보며 각자 조심하고 역량과 수준이 들키지 않도록 배려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기 때문에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 일해도 좀처럼 상대방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원칙을 벗어난 범위의 편의를 봐주는 일도 선의와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허용되곤 합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앞으로 원칙을 벗어난 선의와 관용을 제공받을 미래의 수혜자가 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한 명분을 쌓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서로를 배려하는 굉장히 좋은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이런 것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보다는 불신, 또는 도덕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 것에 가깝습니다. 신뢰는 편의와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가변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분명한 원칙과 조건이 부합했을 때 속도와 성과를 가속시켜주는 스위치입니다. 


 신뢰는 먼저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데서 시작됩니다. 자신의 취약점을 드러내고, 도움을 요청하고, 가지고 있는 생각을 가감 없이 주장하는 것입니다. 상대와 다른 내 생각을 주장하더라도 그들이 충분히 나의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선행할 것이라는 믿음이 신뢰의 출발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신뢰의 역할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신뢰란 무엇일까요? 지금 주변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어떤 것인가요? 성격이 좋은 사람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가요? 그것도 아니라면 성과를 내는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 걸까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타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자신의 형편이 조금 어려워도 자기보다 좀 더 어려운 사람을 보면 기꺼이 자신의 몫을 내어줍니다. 추운 겨울에 길을 걷다 어느 노숙자를 보고는 자기가 입고 있는 패딩을 벗어주기도 하는 마음씨 따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평소에 하는 행동이나 생각을 들어보면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임이 분명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합니다. 약속시간을 지키는 것을 애초에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스스로 하는 다짐이든 다른 사람에게 지키기로 한 약속이든, 약간의 시간만 지나면 굳은 약속은 금방 깨지고 맙니다.


  또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방금 그 사람과는 반대입니다. 종종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사람입니다. 자기가 손해 보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약속장소를 정해도 꼭 자신이 사는 집 근처로 정하고, 어딜 가도 먼저 계산을 하는 경우를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면을 콕 집어서 나쁘다고 말하기는 애매합니다. 


 그렇지만 따뜻함이나 배려와 같은 단어와는 확실히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하지만 장점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한번 내뱉은 말은 어떻게든 지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그럴 만한 출중한 능력과 악착같은 태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약속을 하거나 다짐을 하지 않지만, 적어도 이 사람이 한 말은 왠지 믿음이 갑니다.


 첫 번째 친구는 마음씨는 좋지만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친구는 약속을 잘 지키고 능력도 뛰어나지만 이기적입니다. 과연 누가 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일까요?




신뢰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성품과 역량, 그리고 결과입니다. 


  성격이 좋다는 것만으로, 역량이 있다는 것만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주 쉽게 성품이 좋은 사람은 신뢰할 만하다고 단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신뢰를 호의적인 감정 정도로 판단하는 것이죠. 물론 성품은 신뢰의 세 가지 요소 중 가장 중요합니다. 성품이 좋지 않다면 나머지 두 요소는 함께하는 사람과 조직을 파멸의 길로 이끌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신뢰가 오직 호감을 주는 인상이나 성격 등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지금처럼 신뢰를 강조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호감을 주는 인상, 따뜻한 성품은 신뢰의 조건 중 하나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신뢰에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평소 성품이 좋은 친구는 믿을 만한 사람이지만, 일을 함께할 때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뢰라는 것은 성품뿐만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역량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랑하고 신뢰하는 가족이라 할지라도 면허증이 없는 사람에게 운전대를 맡길 수는 없습니다. 가족은 그 누구보다 믿을 만한 존재이지만 운전을 맡길 수 있는 신뢰는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문제 외에, 운전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능력의 여부가 남아있습니다. 운전을 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가족이라도 운전의 영역에 있어서는 신뢰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신뢰에는 결과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역량을 바탕으로 쌓아온 결과가 없다면 무엇으로 당신의 역량과 실력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신뢰의 바탕에는 이 사람과 함께하면 어떠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을 만한 자료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의 경험과 결과인 것이죠. 


  아무리 훌륭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신뢰를 얻고자 하는 분야에서 탁월함을 입증하는 경험과 결과가 없다면 신뢰를 얻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 당신의 성품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이 줄 수 있는 수많은 기회 중 하나를 내어주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신뢰가 없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를 내어줄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가족 중 누군가 중요한 수술을 해야 한다면 막연한 믿음과 확고한 신뢰의 차이는 선명해집니다. 어느 누구도 사랑하는 사람이 겪어야 하는 수술을 경험이 없는 의사에게 맡길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직업인으로서의 일도 이 범주를 넘어서지 않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신뢰는 성품, 역량, 결과라는 요소가 충족되었을 때 발현되는 막연한 믿음 이상의 무언가입니다. 


  신뢰를 원한다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신뢰를 원한다면 해당 분야에 대한 역량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입니다. 

  신뢰를 원한다면 결과를 보여주고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신뢰를 완성하는 마지막 세 번째 퍼즐입니다. 


- 강민호




<유튜브에서 만나요.>

https://bit.ly/376DZa9



<출처>

_ 브랜드가 되어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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